에이스가 되면 떠났던 선수들

by 무토피아

앙리가 떠나고, 애슐리 콜이 떠나고, 흘렙이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건 '역사'였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선배 팬들의 아픔. 하지만 16년을 응원하며 깨달았다. 이건 역사가 아니라 아스날의 숙명이었다.


파브레가스, 2011년


입문기에서 이야기했던 그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16살에 아스날에 와서 주장 완장까지 찬 선수였다. 경기장을 누비는 그의 패스 하나하나가 예술이었고, 나는 그가 아스날의 미래라고 믿었다.


10/11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던 바르셀로나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그 경기에서의 파브레가스는 대단했다. 도움이나 골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공격의 시작점으로서 찔러주는 패스 하나하나가 훌륭했다. 리그 경기에서도 그가 찔러주는 롱패스는 공격수들에게 택배처럼 정확하게 배달됐다. 그 이후 아스날을 거쳐간 그 어떤 플레이메이커도 그 정도 수준의 축구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참 애증의 선수다.


바르사 유소년 출신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8년을 아스날에서 보낸 선수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떠날 줄은 몰랐다. 가장 아팠던 건 그가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웃는 모습이었다. 아스날에서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반 페르시, 2012년


파브레가스가 떠나고 1년 후, 이번엔 반 페르시였다. 부상으로 고생하던 선수가 마침내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내고, 30골 9도움을 기록하고, 주장이 되고... 그리고 떠났다.


11/12 시즌 초반, 아스날은 맨유에게 8-2로 참패하는 등 치욕적인 시작을 보냈다. 하지만 반 페르시는 달랐다. 토트넘전에서 터뜨린 미친 중거리 동점골, 리버풀전 2-1 승리에서 찾아온 두 번의 기회를 모두 골로 전환시키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가 미운 것과 별개로, 최근 시즌 최전방 톱이 제주스나 하베르츠나 요케레스가 아닌 반 페르시였다면 아마 적어도 2번은 우승했을 것이다. 11/12 시즌의 그의 활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었다.


그런 선수가 맨유로 떠났다.


경쟁팀도 아니고 하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는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유로 가라고 했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아스날 팬들은 그를 '반통수'라고 불렀다. 시즌 절반을 부상으로 날려 '시즌반페르시'라는 오명까지 있던 선수가, 제대로 뛴 딱 한 시즌 후 배신한 것이다.


퍼거슨의 마지막 우승 퍼즐이 되어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아스날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트로피를. 그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나는 축구를 왜 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스리, 2011년


파브레가스와 같은 해 여름, 나스리도 떠났다. 맨체스터 시티로. 세 명 중에서는 가장 조용히 떠났지만, 그래서 더 서운했다. 화려한 드리블과 골이 아니라, 묵묵히 팀을 위해 뛰던 선수였는데.


맨시티에서 우승 반지를 끼고, 아스날전에서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했다. "이게 우승하는 팀이다"라는 듯이. 그때 알았다. 이들에게 아스날은 '거쳐간 팀'이었다는 걸.


그럼에도


에이스가 자라면 떠난다. 이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아스날의 공식이었다. 벵거 감독은 "아름다운 축구"를 고집했고,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우승 경쟁력을 포기했고, 선수들은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났다.


애슐리 콜은 주급 문제로 첼시로 이적해 첼시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수많은 리그, 컵대회 우승을 견인했다. 앙리,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주요 에이스들은 모두 아스날에서의 우승에 목말라 떠나버렸다.


16년을 응원하면서 이별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또' 떠나는구나, 라는 체념이 더 쓰라렸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아스날을 응원한다. 이제는 아르테타가 감독이 되었고, 떠나지 않는 선수들을 키우고 있다. 사카, 살리바, 라이스... 이들은 에이스가 됐음에도 아직 남아있다. 심지어 재계약까지 해줬다.


아스날은 3번 연속 준우승을 했다. 우승은 못 했다. 하지만 사카와 살리바와 라이스는 팀에 남았다. 우승을 못하지만 우승에 지속적으로 도전하면서 에이스를 지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재계약은 아스날에게 크나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우승을 못하면 결국 이들도 떠날까 봐. 아스날이 여전히 '거쳐가는 클럽'이 될까 봐. 16년을 버텨온 팬으로서 바라는 건 하나다. 더 이상 우승을 못해서 떠나는 클럽이 아닌, 우승을 하기 위해 오는 클럽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스날이 그런 클럽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응원할 것이다. 그게 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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