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다음은 계란이었다: 자취남의 냉장고 파먹기

by 무토피아

파스타를 만들 수 있게 되고 나서, 나는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나 요리 좀 하는데?'


여자친구도 맛있다고 했고, 3천 원으로 한 끼 해결하는 게 제법 뿌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파스타만 계속 먹을 순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맛있어도 일주일에 세 번 먹으면 질린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다.


파스타 면, 토마토 소스, 올리브유, 그리고... 계란 한 판.


"계란으로 뭘 만들지?"


파스타로 자신감을 얻긴 했지만, 계란은 또 다른 세계였다. 파스타는 면 삶고 소스 부으면 끝인데, 계란은 불 조절 하나 잘못하면 타거나 설익는다. 세븐스프링스에서 웍 돌릴 땐 뷔페용 계란 요리는 안 만들었으니, 이건 완전히 새 영역이었다.


첫 시도는 계란 후라이였다.


올리브유 두르고, 계란 깨서 넣고, 약불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노른자가 익기 전에 흰자가 타기 시작했다. 뒤집으려니 노른자가 터졌다. 결과물은... 뭐랄까, '계란 부침개'에 가까웠다.


"이것도 못 하나..."


좌절할 뻔했는데, 문득 생각했다. 파스타도 처음엔 서툴렀잖아. 편마늘 볶는 것도 몇 번 태웠었고.

그래서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유튜브를 봤다. "계란 후라이 완벽하게 만들기" 같은 영상을 보니, 팬을 충분히 달군 후 계란을 넣고, 물 한 스푼 넣어서 뚜껑 덮으면 된다고 했다. 스팀으로 노른자를 익히는 거였다.


해봤다. 됐다.


노른자는 반숙, 흰자는 완숙. 딱 맛있는 계란 후라이가 완성됐다. 이걸 밥 위에 올리고 간장 몇 방울 떨어뜨리니, 3분 만에 한 끼가 해결됐다. 비용은 500원.


그다음엔 스크램블을 만들어봤다.


계란 두 개, 우유 조금, 소금 약간. 약불에서 천천히 저으면서 익히면 된다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어려웠다. 불이 세면 딱딱해지고, 너무 약하면 안 익는다. 몇 번 실패 끝에 겨우 부드러운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빵에 올려 먹으니 아침 식사로 완벽했다. 비용은 1,000원.


그러면서 깨달았다. 계란으로 할 수 있는 게 진짜 많다는 걸.


계란찜을 만들었다. 계란 두 개, 물, 소금. 전자레인지에 3분이면 끝. 계란볶음밥도 만들었다. 남은 밥, 계란, 김치만 있으면 됐다. 오므라이스도 시도했다. 케첩 라이스 만들고 계란 지단 올리면 끝.


어느 날 유튜브에서 '계란장' 레시피를 발견했다.


진간장, 물엿, 물을 넣고 마늘을 다져서 넣고, 청양고추와 양파를 썰어 넣고, 계란은 반숙으로 삶아서 넣으면 끝이라고 했다. 간단해 보여서 그날 바로 만들어봤다.


그리고 밥을 지었다.


계란장 하나 올려서 한 입 먹는 순간, 알았다. 이게 진짜 밥도둑이구나.


짭조름한 간장 양념이 반숙 노른자와 섞이면서 밥을 감쌌다. 청양고추의 알싸함과 양파의 아삭함이 입안에서 터졌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퍼먹었다.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공기를 비웠다.


"계란으로 이런 것도 되네?"


계란 한 판으로 이렇게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후라이, 스크램블, 계란찜, 볶음밥, 오므라이스, 계란장. 그리고 파스타에도 계란을 넣기 시작했다. 까르보나라처럼 계란 노른자를 소스로 쓰니, 파스타가 한층 더 고급스러워졌다.


칼질도 못하던 내가 파스타를 만들었고, 파스타를 만든 내가 이제 계란으로 냉장고를 파먹는다.


이제야 알았다. 냉장고 파먹기의 핵심은 거창한 레시피가 아니라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걸 아는 것"**이었다.


파스타 면이 있으면 파스타를, 계란이 있으면 계란 요리를, 밥이 남아 있으면 볶음밥을. 배달 앱을 켤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 달 배달비만 40만 원 넘게 썼던 내가, 이제는 식비 20만 원으로 버틴다.


그리고 이제 냉장고를 열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은 뭘 만들어 먹지?"


예전엔 "뭐 시켜 먹지?"였는데.


파스타 다음은 계란이었고, 계란 다음은... 아마 김치찌개가 될 것 같다. 냉장고에 묵은 김치가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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