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소담 IV
그 옛날 유학 가서 김장을 담다니.....
어린 시절 11월 말이 되면 엄마는 김장을 위해
낯선 아저씨와 같이 조그만 용달차에 배추를 싣고 오셨다.
200 포기를 샀다고 하셨다.
지금은 모두 놀랄 숫자다.
하지만 그 시절은 그 정도는 기본이고 많이 하는 집은 300-400 포기를 담갔다.
먹을 것이 많이 없는 시절이라 겨우내 다양한 김치만 먹었다.
동치미, 총각김치, 김치찌개, 김치만두, 김치밥, 김치 볶은밥....
그 무렵 마가린이 나와 마가린을 넣고 볶으면 더 맛있었다.
배추는 날라 뒷마당으로 가야 해서 우리들은 일렬로 서서 배추를 전달 전달하여 뒷마당으로 보냈다. 참고로 우린 오 남매라 이게 가능했다.
또 오빠들은 땅을 파서 장독을 묻었다.
배추를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밤새 절여두었다가 다음 날 속을 넣었다. 이땐 동네 아줌마들이 도와주어 수월이 끝났다.
그러다 난 독일로 왔다.
난 꼭 김치가 있어야 밥을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남의 나라에서 김치까지 담글 생각은 없었다.
독일에는 한국과 비슷한 배추도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고 어떤 배추는 좀 길고 속이 없어서 한국 배추 하고는 달랐다.
첫해는 간호사 아줌마들이 집 앞에 놓고 간 김치를 고맙게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학생회에서 김장할 사람 배추 주문받는다고 포기수를 적으라고 했다.
난 20 포기를 적었다.
독일 농부한테 5월에 일정양을 주문해서 여름내 키워 밭 때기로 배추를 싣고 왔다. 한국배추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다.
배달이 오던 날은 실험을 조금 일찍 끝내고 배추를 받아와 절이려는데 큰 그릇이 없어 목욕통을 닦았다. 또 소금도 우리 같은 천일염이 없고 조그만 종이 박스에 들어있는 암염이 전부였다. 소금 여러 통이 필요했다.
기숙사 앞의 슈퍼에 갔더니 소금이 동이 나고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더니 다행히 소금이 몇 통 있었는데 주인 이주머니가 "너네 동족이 다 가져갔다. 무슨 일이 있냐?"
야채 절이는데 쓴다 했더니 "야채 한 번에 많이 사면 다 썩는다."
나도 다 아는데.....
그냥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목욕통에 소금물을 풀고 배추를 담갔다.
소금물이 배추보다 짜니 배추는 물을 내보내 소금물과 농도를 맞추려 한다. 그래서 배추는 물을 뺏기고 숨이 죽는다. 이것을 삼투현상이라 한다.
만일 우리의 적혈구를 맹물에 담그면 적혈구세포의 이온농도가 높아 물이 적혈구속으로 들어가 희석한다. 그럼 적혈구는 팽팽하게 부풀다 못 견디면 터진다. 삼투현상이다.
삼투현상 때문에 우리는 눈이나 콧속을 씻을 때 생리식염수를 쓴다. 생리식염수농도가 세포의 농도와 같아 삼투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무조건 짠 소금물로 씻는 것은 안 좋다.
밤새 배추를 절이고 다음 날 속을 만드는데 넣을 게 별로 없었다. 마늘을 넣으면 실험실 독일애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하고 새우젓도 없고 굴도 없고 그래서 이탈리아 사르디니아를 젓갈대신 넣고 그냥 무채에 소금, 고춧가루, 파를 넣고 버무려 넣었다. 김치에 마늘, 생강을 못 넣다니 좀 허전했다.
작은 통에 나누어 담아 처음부터 냉장고에 넣었다.
겨우내 한통씩 꺼내 먹었는데 들어간 재료 대비 너무 맛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김치가 참 신선했다.
배추세포가 다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김치피자도 만들어 먹고, 찌개도 해 먹고, 만두도 했다.
김치와 치즈의 조합이 정말 맛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느 날 혼자 계신 분을 초대해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분이 "김치 본인이 한 거 맞아요? 누가 줬어요? 정말 맛있네요!"
이상한데 맞는 말이었다.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담갔던 기억에 남는 마늘 없는 김장이었다.
독일 배추가 맛있었나.....
처음부터 냉장고에서 익어서 저온 발효라 그런가.....
김치국물에 푹 담가 공기접촉이 없게 해서 그런가....
아~ 갑자기 생각이 났다.
배추를 절인 소금물을 너무 짜지 않게 했다.
그럼 배추의 물이 덜 나온다. 덜 절여진 배추를 사용했다.
대신 속을 살짝 짜게 해서 넣었더니 배추의 물이 빠져나오며 김치국물이 많아져 김치가 그 속에 폭 담겨있었던 것이었다, 싱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