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무탈한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고되고 힘든 날이 반복되면 아무 일 없는 날이 행복인 날이었으니까요.
생각은 참 신기하게 작동하더라고요.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니 무탈함은 행복이라는 도식이라도 생긴 것처럼 어느 날부터는 그저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문득 정말 무탈했던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기억 끝에 하나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무탈한 거. 그게 정말 좋은 걸까?'
어린 시절 저는 정말 무탈한 아이였습니다.
크게 아픈 적도, 다친 적도 없었고, 그 흔한 친구 문제로 흔들린 적도 없었습니다.
못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물론, 작은 사소함, 다툼, 어려움은 있었지만, 상처로 남거나 심각했다고 기억되는 일은 없거든요.
반면에 저희 형제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마다 불편한 게 하나씩은 있었어요.
다쳐서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거나 자주 아파서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식으로, 늘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기억 중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기억은 혼자 열심히 했던 순간입니다.
스스로 하기 위해 애썼던 순간들, 알아서 하려고 고민하고, 노력했던 시간들요.
가만히 기억을 살펴보면, 분명 사랑도 받았고, 좋은 추억도 많았는데, 혼자였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 시절 저에게는 혼자라는 느낌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든 웬만큼 해내고, 손 안 가던 그 시절의 저는 사실, 그만큼을 하기 위해 속으로 애쓴 아이였습니다.
맞아요, 무탈하다는 건 남모르게 애쓰고 있다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의 무탈함이 노력으로 얻은 무탈함이었던 것처럼요.
그건 저를 외롭게 하는 무탈함이었고, 외로움으로 내 행복의 기억을 덮어버린 무탈함이었습니다.
오늘 별일 없이 괜찮으셨나요?
정말 괜찮으셨죠?
그랬다면 당신의 무탈함은 쉼을 위한 무탈함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다 괜찮은데 왜 그런지 외롭다면,
정말 그렇다면, 어쩌면 당신도 저처럼 괜찮으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러시다면, 지금 이순간만이라도 너무 괜찮으려고 애쓰는 걸 멈춰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라고 말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축축해진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테니까요.
정말 괜찮아서 괜찮은,
그런 나,
그런 당신,
그런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