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기억하는 시간

by 셀프소생러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아빠는 봉사활동을 가셨다가 허리를 다치셨습니다.

처음 병원을 다녀오신 날은 온 식구가 놀랐고, 몸져누우신 아빠 모습이 낯설었던 저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아빠는 일주일을 넘게 누워계셨고, 엄마는 아빠가 일어나실 때까지 매일 약재를 사다가 집에서 한약을 달여드렸습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그래서일까요?

아빠는 생각보다 빨리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시름 덜었습니다.


걱정이 사라지자 원래 관심사였던 외모가 신경 쓰였습니다.

꼭 하고 싶은 게 있어 고민고민하다가 한약을 들고 가시던 엄마 앞을 가로막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는 어이없는 듯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저를 밀치고 지나가며 한 마디를 남기셨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리 비켜라. 아빠 약 갖다 드려야 한다."

"아빠 약"이라는 말에 내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 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더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서운함과 허탈함게 떨어진 고개는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몇 번의 기회를 더 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입만 떼면 그 말은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쓸데없는 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춘기의 '정말 중요했던 그 일'은, 그저 서운하고 또 서운한 기억이 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엄마와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오히려 더 놀라시며, "내가 언제 그랬냐"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저야 제 외모가 가장 중요할 때였지만 엄마에게는 아빠의 건강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잊지 못한 기억은 엄마에게는 이미 사라진 기억일 뿐이었습니다.

제 기억은 '나의 기억'일뿐이었고, 제 서운함은 '나의 서운함'일뿐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은 있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만 남아있고, 나에게만 살아있는 시간이었던 거죠.

설령 그것이 서운하거나 슬픈, 또는 아픈 일이었다고 해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중요한 하나를 배웠습니다.

사라진 기억, 그 속에선 이별도, 이해도, 미움과 원망과 사랑도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억이 모두 그렇지 않을까요?

내 기억엔 있지만 상대에게 없을 수 있고, 나에겐 진지한 일이었지만 상대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일들이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 서로의 마음, 서로의 상황이 달랐을 뿐 누구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나에겐 너무 중요했던 일이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마여도, 남편이어도, 아이라고 해도요.

그리고 또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겠다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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