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맞은 편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노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파트 잔디밭 한 켠에서 채소를 키우시는 할머니는 저희 아이를 그렇게 예뻐해주셨어요. 만날 때 마다 칭찬해주시고, 예쁘다고 웃어주시니 아이도, 저도 늘 반갑게 인사드리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저희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손에 들고 오신 동그란 호박 두 개를 건네시더군요.
"새댁, 호박있어? 마트보다 싸게 줄게"
순간 당황했어요.
호박 두 개를 물끄러미 보다가 '어차피 마트에서 사야하는 거잖아. 지금 사면되지'라는 마음으로 할머니 호박을 샀습니다.
그 후로 야채를 든 할머니는 종종 저희 집을 찾아오셨고, '어차피 살 야채'를 저는 할머니에게서 샀습니다.
그렇게라도 뭔가를 하시려는 모습이 좋았어요.
직접 기르신 채소니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고요.
그런데 사람마음이 늘 좋지 않은 것처럼, 어느날 부터 할머니의 야채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시들고 팔면 안 될 것 같은, 흔히 말하는 떨이 채소를 제게 넘기기 시작하셨습니다.
"남은 거 다 줄게. 오천 원."
검은 봉투에 가득 담긴 야채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좋은 관계는 왜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건지, 마음에 갈등이 일었습니다.
아쉬움도 들었고요.
'처음부터 사지말걸 그랬나?'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 좋은 마음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한 번쯤 친절하지 않아야 할 그 때가 온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친절함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닌데..'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관계보다 나를 지키기로 했어요.
거절에 익숙치 않은 저였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하기로 했습니다. 서로를 위해서요.
며칠 후 할머니는 또 야채를 들고 오셨고 저는 단호했습니다.
"아니요, 집에 많아요."
"집에 많아?"
"네, 많아요. 엊그제 마트갔다 왔어요."
"마트에서 그걸 샀어?"
"네, 샀어요."
당황하시는 할머니를 향해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후~ 제 입장에서는 작은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이후로 두 어번 더 거절을 했고, 친절했던 할머니의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예상했던 결과 앞에 저는 어쩔 수 없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회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어색한 인사만 드렸습니다.
늘 친절하던 할머니가 친절하지 않으면 제일 걱정되는 건 아이였습니다.
그런걸 아주 잘 알아차리거든요.
아이가 뭔가 어색한 느낌을 알아차리면 "기분이 안 좋으신가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어느 순간, 차갑던 관계는 평소와 비슷한 온도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웃으셨고, 저도 반갑게 인사드렸습니다.
더는 야채를 사라고 하지도 않으셨고, 언제든 거절할 제 마음도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요.
그러던 할머니가 오늘 저를 보고 다시 손짓 하셨습니다.
야채를 건네셨습니다.
어제 마트를 다녀와서 충분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늘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댁 아저씨가 준 거, 그게 고마워서 그래. 이건 내 정성이니까 받아~"
"아..."
남편이 뭔가 드렸나봅니다. 그리고 저는 할머니의 정성을 감사히 받았습니다.
선물받은 피로회복제도 나눠드렸고요.
돌아서니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제가 원하는 삶은 이런 삶이었거든요.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는 삶, 안 준다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에 감사하는 삶이요.
돌아보면 저는 따뜻한 내 마음이 외면받고 곡해되는 것이 속상했지 다른 사람에게 더주는 게 싫었던 것 아니었습니다.
나의 친절을 왜곡하고 이용하는 게 싫었던거죠.
내 마음을 닫는 건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미워하고 앙갚음하지 못해 분노했던 시간들도 사실은 마음을 다친 나를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설령 그 방법이 옳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 삶이 삭막해지고 힘들어지고 나서야 그게 결국 나를 위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기꺼이 멀어지고, 따뜻한 내 마음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나를 위한 경계설정도 해가면서요.
그렇게 또 관계를 연습해갑니다.
배워가고 익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