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수정>
얼마 전 한 기사를 보았다. 어떤 유명한 DJ 여성이 잡지에 실을 화보를 찍었는데 그 화보에 달린 댓글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한마디로 ‘악플’에 관한 기사였다. DJ 여성의 직업 특성상 향락에 관련된 직업이라서 그런 것인지 해당 화보에 달린 댓글에 마약을 해봤냐거나, 외모를 비하하거나, 소위 쉽고 헤프다는 뉘앙스의 악플이 달렸다는 것이다.
그중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던 <화보 사진에서 노출하는 옷을 입는 이유가 “만져달라는 것” 아니냐>라는 댓글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졌다.
그 댓글을 본 DJ는 "우리는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는 소신을 밝혔더라.
갑자기 고백하자면 20대 초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은 어째서 노출이 많은 옷을 본인의 의지로 골라 입었음에도 애써 가리는 이유는 어째서일까.라고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즉 노출이 많다 보니 행동에 제약이 생겨 불편해지는 것은 이미 스스로 예측했을 것인데, 그토록 힘겹게 가려가면서까지 노출 많은 옷을 입을 필요성이 있었을까.라는 의문과.., 스스로 노출이 많은 옷을 골라 입고 외출한다는 사실은 불특정 타인에게 보여질 가능성까지도 이미 각오하였을 텐데, 어째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저리도 신경 쓰고, 또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람에게도 어떤 죄책감을 씌우는가. <이 부분은 다시 설명하자면, 당시에는 일종의 ‘타인에 의한 시야의 범위 강탈’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만일 내가 무언가를 사기 위해 대기 줄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내 앞에 줄을 선 여성이 짧은 스커트를 입었을 경우, 나는 어째서 시선을 마음대로 아래로 내릴 자유를 잃게 되는가. 어떤 근원으로 인하여 앞에 선 여성의 노출로부터 유발된 죄책감이 내 시선의 자유 권리를 침해하고, 그것은 타당한가.>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내가 명백하게 틀렸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 근원의 설정 오류’에서 비롯된 틀린 질문이다.
그래서 위의 두 가지 내용에 관하여 각각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성장하며 자신의 의지로 의복을 갖춰 입기 시작한 이후부터 우리는 매일 고민한다. 자신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오늘의 자신에게 가장 적절하게 녹아드는 복장은 무엇인지.
옷을 입는다는 행위는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매일 크고 작은 고민이 수반되는 중대한 의식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의복은 한 사람의 신분, 직업, 일정의 연령, 종교, 개인의 성향까지 추론해 볼 수 있는 일종의 이력적 역할까지 혼용되어 왔다.
의복이 가진 의미는 개인의 가치성과 자아를 표면화하여 외부로 반출하는 초월적 통로로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그 의미의 가중치가 흐려졌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중대한 의식적 상징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의복의 상징성 내부에 흐르는 혈관과 혈류로써 ‘미학적 가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의 모든 개인은 태생적으로 가진 육체와, 육체를 바탕으로 아름다울 권리 -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美’를 추구하는 행위는 본능의 충실한 발현이며, 그중 육체의 미를 향한 욕망은 매우 근본적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미학의 극치에 닿아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물, 특별한 동물을 바라볼 때 가지는 미적 감흥과는 달리, 인체의 누드,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곡선에 매우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 자신과 감각적으로 유리된 외부의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미학을 가지기에 앞서, 언제나 우선순위는 감각과 의식으로 연결된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구조를 지닌 타인의 인체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태초에서부터 발현되는 미의 추구 -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의 발로는 동일한 인간이라는 종의 동질성 가운데에서도 외모의 우열적 층위가 나뉘는 주체와 객체의 사이의 관계일 것이며, 불가항력적으로 타고 난 외형의 절대적 불변성은 결코 타인을 넘어설 수 없는 무기력을 낳으며 일종의 ‘르상티망(ressentiment)’적인 원한(질투심)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과거의 많은 기록들을 보면 외모는 언제나 중요시하는 가치였고, 그 외형적 가치가 지닌 힘/권력을 엿볼 수 있다. 서양에서 육체는 신의 의도성, 즉 잘생긴 외모는 신의 참된 복을 받은 자로서 그 자체로 ‘축복의 능력’의 소유였으며, 외모가 빈약한 자는 신의 권능이 그만큼 닿지 못한 자로서 부당한 차별을 받는 일이 잦았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의 외모도 하늘의 뜻을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외모만으로 능력이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고 <동양에서만 대략 사례를 찾아봐도, 유비는 팔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어 범상치 않은 자로 묘사되어 있고, 빌런 동탁의 비호감적으로 묘사된 외형, 방통의 외모가 추하다는 이유로 그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유비. 또한 9척 장신으로 묘사된 관우나 서초패왕 항우, 천하 미녀라는 폐월 초선은 그의 ‘자’대로 달이 그 미모에 부끄러워 스스로 몰락했다는 등> 범상치 않은 외모는 그 자체로 권력과 능력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현 사회에서도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완벽한 미를 가진 육체에 다가서고 싶은 욕망은 다자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천부적으로 가지는 고유한 속성일 것이며, 끝내 해갈될 수 없는 외모의 ‘미학적 열망’의 끝은 닿을 수 없을 ‘미의 이데아’에 향해있다.
고대에서부터 수많은 미술가들의 작품들과 그들의 작품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으로써, 미적 육체를 열망하였고, 그 속성을 담지한 실체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으로부터 현현한 존재가 ‘아프로디테’ 일 것이다.
다시 의복으로 돌아와서, 아마도 영원히 육체적 탐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매기는 의복의 위치, 그것은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열망을 가진 '육체의 미학'으로부터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복장의 착용은 자신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하며 초월하는 것이고, 육체와 의복의 결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노출성은 “어떻게 노출해야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미’에 도달될 것인가.”의 끝없는 자신을 향한 욕망이며, 그 과정에서 육체와 의복은 동일한 미학적 합목적성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옷을 입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미의 이데아’에 가닿고자 하는 열망이 담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풀어 말해서 여성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는다는 것은 대단히 개인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에서 ‘미’에 가까워지고 싶은 자유로운 열망이지..
그 여성이 당신에게 “만져달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위에서 나는 <여성의 노출로부터 유발된 죄책감이 내 시선의 자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타당한가>라고 생각했었다는 고백을 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반성한다.
위의 고백의 물음에서의 오류는 결국 죄책감의 원인적 책임은 여성의 노출에 있다는 단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닿아있는 사리에서 죄책감의 근원으로 들어가 보면, 여성의 노출된 신체가 근원적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죄책감은 사회가 구성되는 체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지만, 한편으로는 <원죄>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따라서 여성의 노출로부터 유발된 <죄책감> 이것의 오류를 규명해보기 위해서는 우선 원죄에 속한 부분일지, 아니면 법과 도덕적 구성체계에 속한 개념일지부터 구분해 봐야 나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원죄'를 내가 아는 만큼 정의해보면, 개인으로서는 태어나기 이전 즉,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죄에 해당되며, 사회적으로도 동일한 개념으로 사회의 도덕과 법적 체계가 정립되기도 전에 이미 창조단계에서 규정되어 있는 금지된 행위를 뜻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는가? 하나의 죄책감에는 그에 맞는 도덕적 원리나, 법적 체계에서의 어긋남이 있을 터인데, 다시 말해 죄책감마다 그 발생에 있어 1:1로 대응되는 근원이 있을 것인데 원죄는 그렇지가 않다. 근원지가 없다.
그렇다면 원죄는 행위의 심각성에 대응되는 것일까?
죄책감, 원죄.. 이런 단어 나올 때마다 우리가 흔히 떠오르는 심각하고, 극단적이며 쉬운 예로 ‘살인’을 꼽는다.
작금의 사회에서 살인은 철저히 금기시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고전주의 시대나, 그 이전의 중세와 고대의 과거에서는 우선 죽음 그 자체가 오늘날처럼 터부시 되는 영역은 아니었다. 전쟁은 잦았고 전염병은 흔했다. 의학 수준도 낮다 보니 사망률은 상대적으로 높았고, 무엇보다 시신의 수습 역시 가정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체를 다루는 경험이나, 장례절차에서부터 지금과 같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철저히 분리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또한 형벌제도에서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신체형'은 인파가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일종의 행사처럼 이루어졌으며, 끔찍한 사형의 집행 과정은 권력의 과시적 필요성에 따라 대중들에게 적나라하게 공연되고, 사체의 일부는 권력의 실현적 표징으로서 공개된 장소에 효수되었다.
개인 대 개인에 가까운 살인에 관한 사례도 찾아보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결투 문화를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고대의 검투사들을 공연장에 세운 사실, 이것의 축소형으로서 중세시대와 미국의 개척시대의 흔한 클리셰인 원한 관계로부터 발생되는 검과 권총의 결투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따라서 역사에서는 죽음과 살인이 현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첨예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 그 자체가 인간의 원죄적인 영역일 것처럼 철저히 일상에서 구분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
얕은 나의 지식으로는 아마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인간의 신체가 공장의 노동적 가치로 매겨지기 시작되면서부터 죽음과 죽임의 관리는 사회의 재원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필요성이 선명해졌을 것이며, 여기에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사망률 저하,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국가 간의 소통방식의 변화에 따른 전쟁의 위기 감소, 개인에게는 전문 장례문화가 발달되면서 죽음이 가정으로부터 깔끔하게 분리되어 철저히 전문가에 의하여 관리됨으로써 지금의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보여진다.
이토록 죽음이 사람들로부터 낯설어지면서 자연스러운 관성에 의해 죽음과 불가분한 살인은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밀려나, 비현실에 가까운 영역에 그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을 것이고, 철저히 이성으로부터 터부시 됨으로써, 언젠가부터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될 '원죄'의 태그를 달아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쯤 예를 더 찾아보면, 이스터 섬과 잉카/마야의 중남미 문화에서의 카니발리즘, 즉 식인 풍습을 말할 수도 있겠다. 대체로 고립된 공간에 존립된 문화나, 극단의 아사 직전의 사회에서 주로 식인 풍습을 볼 수 있는데,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술한 ’ 총 균 쇠’에서 그는, 통가나 이스터 섬을 비롯한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그들이 가진 한정된 자원량의 고갈로 인해 식인 풍습이 발생되기도 한다고 서술했다. 또 전쟁으로 대립하는 타 부족의 용사를 섭취함으로써 그의 힘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의 발현이라는 연구사례도 있다. 이러한 여러 사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결론은 식인 풍습도 해당 사회가 생존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공통체적 수단이며, 여기에는 문화/지리적인 차이를 가질 뿐, 그들에게 ‘원죄론’을 갖다 댈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죄책감의 형태로 드러났던 '시선의 자유 권리의 침해가 여성의 노출로부터 인가?'의 물음은 <원죄론>에서는 긍정할만한 답을 낼 수는 없어 보인다.
가장 극단적 예시였던 살인으로도 원죄의 성향을 구별할 수 없는 데다, '원죄'라는 개념의 존립성 자체가 과연 유효한 것인지부터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향을 전환하여 여성의 노출된 신체가 남성에게 죄책감을 파생할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법과 도덕>의 측면에서 그 하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법과 도덕은 사회가 흐르는 방향, 해당 사회가 당시에 가진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기도 할 것이며, 또한 사회적 권력집단에 의해 조작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배층들은 권력의 전능함을 기반으로 도덕을 법으로 명문화하였고,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를 움직였기 때문에, 이 관점으로부터 사회의 중심이었던 권력자들의 구성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주요했고, 그들이 만들어 낸 법과 도덕 체계는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권력이 주조한 산술적인 체계 속에서 죄책감의 근원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체계 속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발생은 보통 해당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도덕 체계와 그것을 따르는 개인의 결어긋남으로부터 발생되는 감정으로서, 사회의 지배층들에 의하여 문서적으로 명시된 법이나, 사회적으로 묵인된 어떤 규칙(흔히 도덕) 어겼을 때, 그 어겼던 행위에 대하여 한 개인이 반추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매개로 극대화되고 대상화된 '사적 감정'... 이것이 <죄책감> 일 것이다.
그러므로 법과 도덕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면, 과연 죄책감의 발생이 그 순간마다 적절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개인에게 기만적으로 죄책감 발생을 유도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의도치 않게 파생된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심플하게 구분해 보면, 법은 도덕을 기반으로 명문화된 경우도 있으나, 도덕과 관계없이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죄책감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강력한 저지력을 동반한다.
도덕은 법체계와는 달리 강제성이 희박하여 명확히 규정하기 모호한 속성을 가짐으로 인해 설명하기 까다롭지만, 해당 사회가 당시에 통용되는 가치에 준하여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흐름성에 기인하고, 법보다는 상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동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체계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행위와 감정의 통제에 목적을 두는 경향성이 짙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원죄>처럼 영원 불변성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하게 우리 모두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지되고 존재했었다. 즉 우리는 이미 존재된 체계 가운데 태어났다.
그런 점에서 법과 도덕이 만들어지는 근저에는 항상 사람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그 개발자들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궁금한 적 없는가?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적어도 고전주의 시대 이전에 법과 도덕은 사회의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는 현재와 동일하고, 전통/종교와 결합되어 언제나 옳은 말만 해주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권력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거나,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가리기 위한 차단막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법과 도덕이 근원적으로 수호하고자 하는 <질서>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법과 도덕이 그리도 지키려 했던, 지금도 지키려고 하는 사회의 질서란 무엇인가? 모두의 평등이 질서인가? 아니면 카스트 제도처럼 층위적인 체계가 질서인가?
선사시대 이후부터 살펴보면 한 부족의 족장에서부터 지방의 토호.... 근대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통치자가 없던 경우는 정말로 찾기 어렵다. (현재라고 뭐 다를까?) 하나같이 통치자들은 질서를 수호했으며, 질서를 정립해야 통치가 가능했다. 그들의 질서는 언제나 공통적으로 삼각형의 체계로 구성되어, 통치자를 최상위로 두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인원을 넓혀갔고, 이 형태의 유지가 용이하도록 법과 도덕이 개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질서가 유지돼야 집단을 이룰 수 있었고, 집단 유지의 필요성은 타 집단과의 경쟁 과정에서 생존과 너무나 밀접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하여 발명된 법과 도덕은 치열한 시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결국 시대를 이끄는 자들에게 도덕이 지배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시대를 이끄는 자들을 구성하는 집단은 어떠한 공통점을 가졌을지 살펴보면, 딱 한 가지 명확하게 보이는 점이 있다. 바로 남성
이 지점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왜 어째서 선사시대 이후부터 통치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었을까? 이 사실이 너무나도 극명하기 때문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근원적 이유를 찾을 수는 있어 보인다. 크게 보자면 유전/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제약으로부터 유리된 남성의 자율성, 미개한 세상 속 극한의 물리적인 상황에서 신체적인 우월성 등... 수긍될만한 이유는 찾을 수는 있다.
물론 야마타이 국의 히미코, 진나라의 가남풍, 한나라의 여후, 신라의 선덕여왕,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튜더 왕조의 엘리자베스 1세, 당나라의 측천무후.. 등 여성으로서 권력을 누린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나긴 왕조의 역사 전체를 봤을 때 여성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며, 하물며 권력을 잡게 된 경위 조차도 대개 남편인 왕이 어리석었거나, 선대 왕이 일찍 죽어서 즉위한 어린 아들의 섭정을 맡게 되면서거나, 계승할 남성의 대가 끊겨 불가피했었던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남성 편향화가 한없이 장기화되면서 그 권력집단이 만들어내는 남성 편향적 질서가 사회를 뒤덮고, 순환 참조적으로 공고해짐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점은 그들의 통치를 위한 질서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한 예로써 프랑크의 ‘살리카 법’에는 여성의 왕위 계승의 불가함이 명시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는 남성 주도적인 체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도덕은 긴 역사의 시간 동안 남성들에게 그 실효성을 여실히 입증하였고, 이러한 체계 속에서 발생되는 '죄책감'이 정당한가의 물음은 다른 예로써 계속된다.
또 다른 명징한 예시로써 동서양의 여성이 받는 교육 수준의 공통적 한계성 - 서양의 근대를 다루는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여성의 대학교 진학 제한, 여성들이 교육받는 과목은 가정적인 여성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목 위주로 가르쳤고, 여성 또한 그러한 교육의 제한성을 당연시 여겼으며, 동양 역시 여성의 교육에 관한 불평등적 한계가 서양에 절대 뒤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여기에서 이제 종교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종교의 선지자들은 남성들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크리스트교를 보자, 문득 십계명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는가?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응? 어째서 '배우자'가 아니라 '아내'지? '남편을 탐하지 말라'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사실 남편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종교의 지도자는 남성이었을 것이고, 당연히 십계명도 남성에게 읽힘을 상정하고 기록되었을 테니까. 물론 이러한 종교적 차별은 비단 크리스트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도덕과 종교는 매우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종교의 교리를 보면 도덕의 계보를 추적할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던 종교의 대부분은 남성 중심적이었고,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종교는 도덕을 말하고, 수많은 도덕은 현실을 가렸으며, 달콤하고 이상적인 언어로 억압과 남루한 현실을 가리며 사람들을 순치시킴으로써 '질서'를 유지했다.
종교에 의해, 사회의 법과 도덕에 의해 스스로 복종하고 남루한 현실을 인정하도록 눈을 가린 ’회유의 도덕’을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나쁜 도덕/노예의 도덕으로 규정하였고, 이러한 도덕을 생산하는 가톨릭을 근본적 원흉으로 보았다.
그리고 종교가 창조한 관념의 질서 속 최상위에는 언제나 남성들이 서 있었고, 그와 동시에 현실의 물리적 질서를 지배하는 왕들도 남성들이었다.
이렇게 오랜세월 유지됐던 질서의 세상에서 '죄책감'은 가치 중립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
이제 다시 최초의 물음 해보면, <여성의 노출로부터 유발된 죄책감..?> ‘죄책감’은 어디에서 왔고, 근원은 어디인가? 여성의 노출된 다리인가, 사회의 구조인가? 사회의 구조는 누구로부터 설계되었는가? 그리고 오늘날 ’노출된 다리’를 보며 드는 죄책감은 여성이 아니라, 주로 남성이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남성의 노출된 다리를 보며 여성이 죄책감을 갖는 사례는 얼마나 있었던가?
또한 남성의 노출된 다리를 여성이 보는 것과, 그 반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성의 노출하는 것에 대한 근원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남성에 대한 유혹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 말은 가장 위에서 언급했던 기사의 헤드라인과 맞닿아 있다. <여성 DJ의 화보 사진에서 노출하는 옷을 입는 이유는 여성 스스로 ‘만져달라’는 방증이라던..>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없는 세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들 말대로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진화 단계에서 생명체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한다. 즉 생존을 전제로 행동을 결정하고 모든 생명활동은 후세를 남기기 위함에 집약되어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이나 도킨스 모두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칭하기도 하며 유전자의 이기성에 대해 서술했지만, 그는 그의 기나긴 이야기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유전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을 만큼 유전자로부터 떨어져 있고 독립적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우리가 피임법을 사용하는 것도 DNA에 대한 작은 반역이다. 우리가 큰 규모의 반역 역시 꾀하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과거에는 기능적으로 존재하였지만, 현재는 기능을 상실/퇴화하여 흔적만 남은 기관이다. 인간에게는 대표적으로 꼬리뼈라 할 수 있다.
기사의 내용처럼 노출의 이유를 진화심리학을 들며 ‘만져달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말하는, 즉 현세의 인간에게서 꼬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없는 세상’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하고 말하는 무지한 비현실주의자들이며, 그들이 진화심리학 빌려 말하는 그 주장 역시 결국 허구라 할 수 있다.
허구의 증거는 그들과 우리가 공존하는 현재 이 세상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그 이론이 맞다면 현 세상은 지금의 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비이성으로 가득한, 오로지 짝을 찾고 번식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동물의 왕국’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어린아이와, 성인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 바보들이다.
문득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