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사촌 동생
나는 17년 차 미국에 살고 있는 아줌마인데 16살에 미국에 이민 와서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결혼 그리고 아이 둘의 출산을 경험한 나름대로 젊은 아줌마이다.
아빠는 삼 형제인데 형제들이 다들 근방에 살며 가깝게 왕래하며 지냈다. 조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조부모님 집에서 다 같이 명절을 보내고 자주 만나서 밥을 먹고 여행을 다닌 덕에 나와 사촌 동생들은 가까운 사이로 컸다. 나는 삼 형제 중 큰 형의 첫 자녀였는데 신기하게도 사촌 동생들은 여자가 더 많았고, 자연스럽게 자매들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도 내가 미국에 오기 전의 이야기이다. 나는 16살에 가족들과 미국에 왔고, 모두가 성인이 되어서야 미국 여행 혹은 한국 여행을 하며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한 사촌 여동생이 여러 힘든 상황을 겪으며 그 힘듦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그 노력들 중 하나로 미국에서 한 달 정도 영어를 배우며 지내려고 했다. 당시 내 여동생과 나의 상황에 큰일이 있어 누군가를 초대해서 같이 지낼 심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 큰일을 치르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보니 힘든 상황에 놓인 사촌동생을 외면한 게 참 미안하기도 했다. 부모님께 들으니 그 사촌동생은 많이 서운하고 실망했을 텐데 그래도 잘 추스르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했다. 잘 지내고 있나 연락해 보니 자신의 영어 실력에 절망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좌절을 겪고 있는 사촌 동생에게 글을 적어 보냈다. 그 글을 읽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글을 펼쳐서 자세하게 적어보려 한다.
어학연수라는 콘셉트에 접근하는 청년들의 마음에서 보면, 어학연수 자체가 자신의 이력을 이야기할 때 자랑할만한 자격증 같은 것이다. 어학연수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장기적인 시간을 내야 하고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그 부분을 모두 채우면서 외국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남들에게 자랑거리이다.
그러한 콘셉트에서 어학연수를 떠나면 크게 놀랄 것이다. 영어권 국가를 놓고 보았을 때 영어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반대인 어순부터 시작해서 어원이 각기 다른 짬뽕 언어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일관적인 법칙이 없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 모든 단어들을 무식하게 외워야 한다. 그것들을 외우고 실생활에서 쓰며 익히기에는 몇 달은 너무 짧다.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를 배우고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언어 천재이고 24시간 원어민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다를 수도 있다. 난 슬프게도 전혀 아니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듣고 실제로 경험한 바로 귀가 트이는 시기는 약 2년부터이다. 2년이 지나면서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긴가민가하지만 뉘앙스로 알아듣고 yes 아니면 no 대답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정확히도 알아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억양은 사람마다, 출신지역 혹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말은 알아듣기 수월해도 어떤 다른 사람의 말은 같은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그리고 빠른 말하기 속도와 모든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이해는 매우 힘들다. 그때의 나의 삶을 기억해 보면 “답답함”과 “우울감”이 둘러싸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4년제 대학교를 바로 가지 못하고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일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큰 일식당이었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미국 여성들이어서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가깝게 붙어서 일하고 대화했다. 내 일생을 통틀어서 영어가 제일 많이 성장한 때는 그때였다. 전화 주문을 받아 적으며 못 알아들으면 되묻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힘든 일이라 진땀을 빼고 땅으로 꺼지듯 한숨 쉬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고 금방 늘었다. 손님을 기다리며 그리고 손님들과 대화하며 하는 영어는 나의 어휘와 다양한 표현에 큰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 직접 듣고 말하며 미국인의 억양을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일을 한 것 같은데 그 시기에 폭발적으로 영어가 늘었다.
영어는 짬뽕 언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 그리스어, 영국영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적 특성을 많이 알아두면 감이 잡힌다. 프랑스어가 어원인 영단어를 보면 발음이 정말 프랑스어답다. 스페인어 어원의 영단어도 보면 딱 들어도 스페인어답다. 그런데 이렇게 느끼는 감각도 사실 미국에 오래 살고 많이 듣고 읽으니 감이 잡히는 것이지, 어학연수를 와서 이런 것들은 이론적으로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다. 미국이 백인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미국은 원래 어두운 피부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살던 대륙이다. 그렇게 보면 콜럼버스의 대륙 발견 이후에 이주한 백인들도 이민자들이고, 그 후에 이민온 다양한 인종들의 사람들도 백인들과 다를 것 없는, 간단히 말해 이민자들이 모인 나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나라들의 특징과 문화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좋은 대학에서 공부했고 직장과 승진에도 자신 있었던 나의 사촌동생은 캐나다 어학연수를 하며 자신의 영어 실력을 깨닫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영어라는 그 언어 자체가 가진 다양한 문화와 특징들을 알지 못하면 영어를 아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식 영어는 문화를 배제한 일부분의 영어만을 가르친다. 문법과 읽기 그리고 문제 풀기를 잘 하지만 실제 영어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알아듣는 것부터 힘든데, 영어 듣기 평가에 나오는 그 속도와 억양이 아닐뿐더러 대화 방식이 한국 교과서에 나오는 예문들처럼 매우 한정적이지 않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내 또래 한국인들은 “잘 지냈어 How are you? “ 물어보면 ”I am fine. Thank you. And you?” 이 대답이 바로 나온다. 틀린 표현은 전혀 아니지만, 조금 딱딱하고 기계적인 표현이라 정말 공손하고 기계적인 서비스업에서 들어본 것 빼고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이 일관된 대답 말고도 “I am doing great. Good. I am doing alright. ” 등등 자연스러운 다양한 표현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본다. 미국인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표현을 익혀야 한다.
수능 영어를 잘 풀었고 토플도 잘 봤다는 건 “한국식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다. 진짜 영어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 나와서 자신의 콧대 높던 영어 실력의 한계를 느끼고 겸손해지는 것만으로도 어학연수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열매이다. 자신이 갇힌 우물의 크기를 인지하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작은 우물에서 다른 개구리들과 엎치락뒤치락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미국에 살며 누리는 사회적인 긍정적인 시선과 신뢰는 한국인이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일인데, 그 당시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 한국 가수를 좋아한다는 여동생의 글을 읽고는 풉 하고는 비웃었다. 그 시선이 상처가 되어서 나는 한국 문화를 굳이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한국이 어딘지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살다가, 어느 순간 한류라는 바람이 불어왔다. 음악, 전자제품, 뷰티, 콘텐츠 등을 통해 한국인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한국이 많은 분야들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한국인의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가수들은 칼군무를 추며 완벽한 안무를 보여주고, 얼굴 몸매 피부 등 완벽함을 추구하는 덕분에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인은 발음 경쟁을 한다. 얼마큼 완벽하게 미국인처럼 유창하게 발음하는지가 ‘대화의 질’과 ‘원활한 소통’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유튜브에 올려진 많은 연예인들의 영어 발음을 비교하며 모아놓은 영상들만 봐도 그렇다. 발음을 잘하면 좋다. 확실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에 어린 나이부터 살지 않으면 도달할 수 있는 유창한 발음의 한계가 크다. 그렇다고 발음이 유창하지 않아서 영어를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보면 서로의 발음을 평가하며 시기 질투하고 폄하한다. 그것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력에 집중하는 게 풍부한 대화에 더욱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발음이 유창하게 되지 않는다고 나의 영어는 실력이 늘지 않아”라고 지레 겁먹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발음과 억양은 어릴 때 배우지 않는 이상 완벽해질 수가 없다. 완벽한 발음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때다.
내가 한국땅을 떠날 때만 해도 미세먼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황사라는 것 때문에 아주 가끔 마스크를 써야 할 뿐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한국은 미세먼지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하니 미세먼지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하여 알게 되었다. 숨도 편하고 크게 쉴 수 없게 되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사촌동생에게 이야기했다. 미세먼지 걱정 없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숨 크게 들이마시고 편안하게 쉬라고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너는 얻는 게 크다라고도 말이다.
사실 우리가 처한 형편과 상황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행에 집착한다. 힘들고 고달픈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다른 세계를 체험하고 그 추억을 위로 삼아 다시 고된 일상으로 돌아간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에 여행을 오게 되어서 한국에서 걸치고 다니던 것처럼 똑같이 하고 다니려고 바리바리 명품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을 보니 명품은커녕 너무 편안하게 일상을 사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고, 가져온 명품들을 걸칠 필요성을 못 느껴서 다시 짐가방에 넣었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겉모습에 돈으로 치장을 하고 경쟁하지 않아도 그 모습 그대로 사는 일상을 본 그 사람은 자신의 우물 밖을 나온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미 좁은 우물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야 할까 고민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나중 선택이겠지만, 우리가 세계 여행을 하며 다양한 삶과 문화를 보는 이유는 ”성장하기 위함 “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살던 으리으리하게 컸던 집이 다 크고 나서 보니 손바닥만 한 집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 같이 우리의 시각이 성장한다. 좁게 생각하고 경쟁하며 사는 한국인의 삶은 우리가 크게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이 넓어지면 더 큰 가치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성장하고 남들을 도울 수 있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호화로운 삶을 사는 데에 인생을 걸지 않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 그때가 “진정한 어른”이 되는 때이다. 나만 즐겁고 기분 좋은 순간보다, 다른 이들과 나누며 즐거운 순간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나의 사촌동생은 “진짜 어른”이 곁에 필요하다. 성공하고 돈 잘 쓰고 자기 계발 잘하는 어른이 아니라, 주어진 인생과 시간을 귀하게 쓰고 더 큰 가치들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어른들이 그녀의 곁에서 동행해 주기를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