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예민함을 인식하고 있나요?
예민함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나의 예민함에 대해 더 깊고 자세히 파악하게 되고 또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고찰의 과정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쓴다.
정신적 그리고 감각적 예민함은 몸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민함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고 느낀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조금의 자극에도 큰 괴로움을 겪는 일상이 어떻게 적응이 될까 싶은데 그렇지 않은 일상을 겪어보지를 않았기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하게 된다.
나는 유독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다. 바쁜 공장의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끊임없이 파도처럼 생각들이 밀려든다. 예를 들면 한 가지 단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서 마인드맵 혹은 모세혈관처럼 사방으로 퍼지듯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한 가지 생각을 한 다음에 다른 발전된 생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수십 개의 생각이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르고 과부하가 걸린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전자책을 대여해서 읽었다. 나같이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인데 네이버 책 설명란에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성경’처럼 반복해서 읽은 바로 그 책!”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나 도대체 병명은 무엇일까 한참 괴로워할 때 알게 돼서 많은 위로를 받은 책이다. 저자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나름의 진단을 내리고 완화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저자가 제시한 완화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 딱히 쓸모가 없었으나 나의 고달픔과 이해받지 못할 나만의 문제들을 내 자신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고 관심 가져주고 또한 나 말고도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더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책이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서 힘든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고 책까지 쓰는 심리치료사여도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겠다는 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의 병 같다.
그 책의 설명처럼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생각이 참 많다. 그것이 비록 쓸데없는 생각들일지라도 떨쳐낼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와 나의 머리를 가득 채운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힘든지 몇 가지 소개를 해보려 한다. 예민한 사람들도 각기 다른 감각 레벨과 받아들이고 소화해내는 정도가 다르기에 나의 이야기들은 다소 과하거나 별거 아닌 소소한 이야기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 청각과 쉬지 않고 일하는 뇌의 컬래버레이션
나는 노래를 들을 때도 굉장히 선택적으로 선별해서 들어야 한다. 멜로디는 날 힘들게 하지 않지만 가사가 큰 문제다. 가사가 귀를 통해 뇌에 들어오면 그 가사를 분석하고 기억하고 잡아두는 공장이 일을 분주하게 시작한다.
느리고 짧은 가사들은 훨씬 낫지만 특히 힙합의 경우 그 빠른 가사들이 내 머릿속에서 자리 잡고 생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기에 나에게 힙합 음악은 피해야 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다. 내가 어떠한 이유로 힙합 음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힙합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가사들을 들을 때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추억여행을 떠난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옛 일들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과거에 대한 후회, 아쉬움 그리고 감정적으로 동요되어서 기분이 좋았다가도 음악을 듣고 나면 마음이 축 쳐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예전에 느꼈던 어떠한 설렘으로 가라앉아있던 나의 마음이 극단적인 기쁨의 상태에 돌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곡들이 아니면 경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다.
- 하나의 자극에 대한 과한 불안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많은 일들은 결과적으로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떠한 자극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가 어렵다. 그냥 적당한 걱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눈덩이처럼 불어난 걱정들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과한 불안함으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함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걱정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민함이 높은 나는 여러 방면으로 약하다. 방금 탈피해서 여린 속살로 세상에 나온 곤충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의 나는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그분 “하나님”을 의지한다. 나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나의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해결해주세요. 저는 걱정에서 떠나서 좀 쉴게요.” 기도한다. 그러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하고 걱정이 줄어든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는 걱정인형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인형에게 터놓고 걱정을 대리해서 시키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걱정을 대신해준다면 이건 너무나도 획기적이고 고마운 아이디어이다.
- 예민함은 몸을 망가뜨린다.
나의 만 세 살 딸아이는 기저귀를 떼는 배변훈련을 시작할 무렵부터 변비가 생겼다. 소변은 너무나 수월하게 변기에 하기 시작했는데 대변은 꾹 참고 아예 배출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대변을 잘 보아왔던 아이여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른들이 알아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유독 과일을 좋아해서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식이섬유의 양은 충분히 섭취했고, 유산균이 들어있는 영양제, 물 많이 마시기 등등 다 했지만 꽤 오랫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시간이 몇 개월 흐르고 난 뒤 우리는 변비가 시작된 시기가 배변훈련을 시작한 시기였고,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정신적인 압박과 스트레스가 변비를 불러왔구나 하고 깨달았다.
낯선 변기와 그 변기에 앉아서 힘을 줘야 하는 그 사실이 아이에게는 참 어려웠고 그 어려움은 장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소아과 주치의의 말대로 변을 무르게 하는 약을 우유에 매일 섞여 먹이고 변을 보는 경험이 아프지 않고 즐겁다고 느끼게끔 노력했다. 아이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되면서 약 섭취는 그만두었다. 꼭 변기에 하지 않아도 자주 그리고 요즘은 매일 대변을 배출한다. 아이도 변비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신이 매일 그래도 대변을 본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 변을 보는 경험이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었고 자신이 변기에 가서 힘주는 노력을 한다. 기저귀에 하기도 하고 변기에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저 변비가 완화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무엇이 중한가~~
(여담으로 요즘 우리 딸은 하루에 망고를 최소 하나씩은 먹는다. 샴페인 망고는 애플망고랑 식감이 다르게 젤리 같고 새콤하면서 매우 달다. 식이섬유를 과다하게 섭취하는 듯하지만 변을 볼 때 아주 만족스러워서 최근에는 계속 박스채로 사서 먹이는 중이다.)
아주 어린아이도 불안과 두려움에 이렇듯 반응한다.
변비는 나의 평생 숙제로써 매일 대변을 보는 사람들이 세상 최고로 부러울 때가 많다. 지금은 더구나 둘째를 품은 중기 임산부로 장운동이 느려져서 변비가 없던 임산부들도 변비가 생기는 때이다. 유산균도 요거트도, 변비약도, 샐러드, 야채, 과일 등등도 정신적 예민함과 스트레스에는 전혀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인생으로 경험해왔다. 변비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나의 예민함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연구하고 테스트해보면서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나만의 완화 방법에 대해서 조금 적어보려 한다. 예민해서 일상생활이 괴로운 프로 예민러들에게 그저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나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