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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Aug 01. 2022

습관적으로 말을 끊는 나 왜 그럴까?

누군가 내 입을 막아주면 좋겠다.

나는 살면서 문득 그냥 내 일상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 그런 생각이 더 고조될 때는 타인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때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합가를 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사람들과 마주치고 부대끼는 상황들이 많은데 나의 어떠한 특성 때문에 그들은 자주 상처받았다고 말한다.


나의 어떠한 특성 그 한 가지는 바로 “말을 끊는 습관”이다.


왜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끊을까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아마도 유력한 이유는 ‘성인 ADHD’ 때문일 것이다. 정신의학과에 가서 검사받고 진단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ADHD에 대한 증상과 자료들을 종합해보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한국에 살았으면 이미 진작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았을 텐데 미국에 살면서 그동안 고민만 하고 어물쩡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럴 기회를 못 가졌다. 한국 가면 조용히 병원에 들러서 진료를 받아볼까 한다.


ADHD는 주의력 결핍 장애라고 하는데 나 또한 주의력이 매우 부족하고 충동성이 높은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항상 무언가를 놓고 다니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지 않으면 누락하는 일들이 자주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항상 좌절할 일들이 생겨서 문제다…


최근에 가장 아찔했던 일화는 부모님과 여동생 포함 가족 다 같이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호수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그 호수는 겨울에 눈이 많이 쌓여서 눈썰매와 스키를 타는 곳으로 유명한 추운 곳인데, 호수 근처 숙소에 도착해서야 나는 깨달았다. 온 가족이 입을 패딩 점퍼들을 넣은 큰 가방을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아침 나는 당당하게 방 문 앞에 패딩들을 넣은 가방을 놓고 이따 차에 실어야지 하고 룰루랄라 했다. 아주 다행히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서 다들 내복과 조끼 등등 가져간 옷들을 총동원해서 껴입고 2박 3일을 무사히 지내고 왔다. 만약 영하로 내려가는 아주 추운 날씨였다면 우리는 부득이 따뜻한 패딩 점퍼들을 렌털 해야 했을 것이다. 여행 내내 나는 나 자신의 부주의함과 도착해서 알게 된 나의 무지함에 놀랐고 가족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천만다행으로 세 살 딸의 패딩은 챙겨갔다…


이렇게 물건을 잊고 놓고 다니는 것은 기본인데, 이 정도는 새로 사면 되거나 대체하면 된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건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함이다.


나의 다른 글들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나의 뇌는 멈추지 않고 풀가동하는 공장처럼 돌아간다. 수면 중에도 멈추지 않아서 자다가 새벽에 깨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여기서 내가 제일 괴로운 점은 공장을 멈추는 스위치는 존재하지 않고 무수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멱살 잡힌 듯이 속절없이 따라가야 하는 점이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ADHD는 유전에 의한 영향이 많다고 한다. 우리 아빠는 내가 보기에 ADHD가 확실하다. 남자들은 원래 멀티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그와는 다른 차원으로 아빠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비슷한 ADHD라면 아빠와 내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빠와 나는 정반대의 특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빠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들은 매우 느리다. 손이 빠르지 않아서 그런 면도 있지만, 식사도 굉장히 느리고 마늘을 까거나 냅킨을 작게 자르는 일에도 하루 종일 걸린다. 대화를 할 때도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30분은 거뜬히 깊이 연구하고 고찰하듯 대화한다.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면서 손이 빠르다.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가는 명령과 아이디어들을 다 쫓아가려면 하루가 바쁘고 집에서도 뛰어다녀야 한다. 시간을 쪼개서 이걸 하고 저걸 하는데 해야 할 일을 항상 못 하고 마무리하게 되는데 하루가 참 짧다고 느낀다.


아빠와 내가 대화를 하게 될 때는 참 곤혹스럽다.


나는 아빠의 근황이나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고, 그는 답하는데 장황하게 서사를 다 설명해주신다.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려고 집중하다가 대답이 길어지면 곧바로 다른 생각으로 빠진다. 다른 생각으로 빠지면 나는 아빠와 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둘이 대화하고 있었어도 나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버리고 방금 떠오른 다른 이야기를 언제 꺼내야 하나 눈치를 보며 이미 대화에서 빠져나온 지 오래다. 내가 아빠와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있을 때는 차라리 낫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고 참게 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같이 대화하고 있을 때는 이미 집중력이 분산이 되어서 다시 그 대화에 돌아가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서 나는 갑자기 지루해지고 공상에 빠진다. 오늘도 나의 의도치 않은 말 끊기로 아빠는 서운해서 삐졌고 바로 사과를 했지만 화를 내고 곧바로 나가버렸다.


나의 대화는 꼭 탁구공이 튀는 듯하다. 빠른 템포로 통! 하고 튀어서 상대방에게 도달하는데 상대방이 같은 템포로 공을 쳐주지 않으면 나는 주머니에서 공을 또 꺼내서 또 빠르게 던진다. 문제는 던지면 안 되는 타이밍에 자꾸 공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어긋난 템포로 던지게 될 때 나는 그들의 말을 끊고 무시하는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자주 지적받는다. 예의 없다고 혼난다. 너무 좌절스러운 것은 사과하고 나서 좀 있다가 또 조절이 안 되는 상태에서 또 실수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너는 항상 그래! 그런 습관은 고쳐야지! 왜 또 그러니!”하고 원망하면 나는 내 머리가 미워진다. 나도 매우 슬프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가다듬고 임해 보지만 나는 내 빠르게 통통 튀는 생각들이 참 버겁다. 누군가 내 뇌를 잠시 쉬게 해 주면 참 좋겠다.


오늘은 가족들에게 대화 중에 말을 끊은 실수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조절이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했다. 엄마는 “너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면 가족들은 앞으로도 계속 상처받겠지”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생이 나의 말 끊는 습관에 대해서 지적하길래 나는 약을 먹는 게 좋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탁구공 게임처럼 많은 생각들에 감당이 되지 않던 작년 어느 날은 진지하게 병원 가서 진료받고 약을 먹으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괜찮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날 안심시켰다. 그때는 딱히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릿속에서 슬라이드 쇼를 재생하듯이 밤새 잠을 못 이뤄서 멜라토닌을 먹고 매일 잠을 청했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난 뒤는 조금 완화되어서 멜라토닌을 안 먹어도 잠을 잘 수 있었고 지금은 그럭저럭 잠은 잘 잔다.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그때는 정말 바닥까지 쭉 떨어졌다가 어느새 올라온 느낌이다. 도대체 내 뇌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감당하기 벅찬 시기가 잠깐 있었다.


특히 여동생과 아빠와 긴 대화를 할 때가 제일 힘들다. 그들은 느긋하게 길게 하는 대화를 즐기는데, 나는 대화 중에 금세 지루해져서 몸이 근질근질하는데 버티고 경청하는 노력을 보여야 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불편하고 어렵다. 얼른 도망치고 싶은 나 자신을 꼿꼿이 앉혀놓고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입 꾹 닫고 듣는 모양새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가족들을 상처 주지 않는 노력이다.


정말 희한하게도 남편과의 대화는 참 편안하다.


남편은 탁구공처럼 요리 튀고 조리 튀는 나의 대화 공들을  빠른 템포로 탁 탁 쳐주면서 심지어 나의 작은 볼멘소리 하나하나까지도 경청한다.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 그 빠른 순간순간에 급하게 불쑥 꺼내는 이야기들도 부드럽게 대답한다. 내 남편의 별명은 공감 요정이다. 내가 말을 끊는 습관과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나의 하소연에도 그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정말 그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있을 때 참 편안하다.


남편은 나에 대해 말하기를 친정 가족들 사이에서 ‘돌연변이’ 혹은 ‘미운 오리 새끼’라고 한다. 생각도 가치관도 그리고 대화 방식도 너무나 달라서 종종 나는 이 가족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고 느낀다.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가족들을 대하는 것보다 ‘그들이 원하는 나’로 좀 불편하지만 살아가는 게 그들에게는 좋은 모습일 것이다. 이 합가 생활도 머지않아서 마무리할 때가 올 것이다. 따로 살면 서로에게 조금 더 편안할 것이다.


나의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게 참 죄송하다. 예전에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우리가 널 그렇게 키웠니? 왜 너 자신을 문제 있다고 생각하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의 정신적 어려움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프고 안타까울까 역으로 느껴졌다. 몸에 감기가 들고 낫고 하듯이 내 뇌에도 감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들은 받아들이는 게 많이 힘든가 보다. 내가 원래 엄살이 심하고 겁도 많지만 내가 느끼고 괴로워하는 이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경청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주위에 이런 말 끊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욕하고 돌 던져도 어쩔 수 없지만 조절이 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한 번만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참으로 큰 부끄러움이고 미안함이다.


실수하기 전에 누군가 내 입을 좀 막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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