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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Aug 11. 2022

미국에서 부모님께 효도하기 참 어렵다.

난 그냥 효도를 안 하고 불효자식이 될까 보다.

미국에 이민 온 지 벌써 15년이 되고 나는 내 인생의 반을 미국에서 산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미국에서 산지 20년이 되었으니 인생의 반을 넘게 미국에서 산 셈이다.


나는 미국 생활에 아무 문제없이 적응해 살고 있다. 미국에 와서 느낀 자유로움과 가족 중심의 문화가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편은 나와 비슷할 때 미국에 유학 와서 더 오래 살았지만 대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정서적으로 더 어울리고 편안한 사람이지만 나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고 사는 남편이기에 그도 미국에 거주하며 불편함은 없다. 나와 다르게 가족들이 한국에 있어서 항상 그리움이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그러나 40이 넘어서 미국에 오신 부모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15년을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언어와 문화 장벽에 부딪히는 건 당연하다. 이민은 나이가 들어서 올수록 적응도 받아들임도 쉽지 않다.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한국에 귀국해서 편안히 사시는 모습이 알맞겠다 싶다. 두 분은 은퇴 후 한국에 귀국하실 예정이었지만 엄마의 갑작스러운 건강악화와 치료에 전념하느라고 계획보다 미국에 더 오래 계시는 중이다. 앞으로 2-3년 후에는 한국에 영구 귀국

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빠는 은퇴 후에 일 년을 집에서 쉬고 소일거리로 파트타임 알바를 나가시는데 어쩌다 보니 풀타임에 버금가는 일의 강도를 견디고 계시다. 가족들은 걱정하고 있지만 본인이 만족하며 해보겠다고 하셔서 지켜보는 중이다.


미국에서 힘들게 일하고 자식들을 키우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은 과연 뭘까하고 생각해본다.


한국이라면 어떤 효도를 해드릴 수 있었을까 하고 반대로 질문도 해본다. 이것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한국 떠나온 지 오래되었고 드라마나 예능이 아니면 이제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 들을 기회도 볼 기회도 점점 줄어들었다.


1. 캠핑

엄마는 아직 회복 중이셔서 장거리 여행이 힘들다. 그래서 짤막하게 차로 갔다 오는 가족 캠핑을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 나는 임신 7개월 거의 만삭에 가까운 배로 (둘째라 그런지 배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남편 없이 만 세 살 아이를 데리고 1박 2일 캠핑을 갔다 왔다. 입덧이 끝나고 급격하게 7-8킬로가 늘었는데 이 몸으로 텐트를 들어가서 앉았다 일어섰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부모님이나 이모보다 무조건 엄마를 찾는 딸아이를 챙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캠핑이 끝나고 집에 올 때는 급격한 스트레스에 다신 가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들었다. 처음이어서 멋모르고 가서 자고 왔지만 다음에는 남편과 동행하고 잠은 집에 와서 잘 예정이다.






2. 외식

우리 부모님은 완전 한식 파이다. 미국에 15년 살았어도 다른 나라 음식을 받아들인 건 베트남 쌀국수와 멕시코식 음식뿐이다. 원래 일식과 중식을 안 좋아하셨고, 그중에서도 한국식 중화요리만 선호하신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집은 대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친정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 하나, 나의 사촌 동생 하나 이렇게 평소에 6명이 식사하고 같은 타운 하우스 단지에 사는 여동생이 자주 놀러 와서 7명이 식사하는 경우도 매우 빈번하다. 대가족을 먹일 끼니를 매일 세끼 챙기는 건 어마어마한 노동이다. 친정 엄마는 나의 대충대충 요리 솜씨를 못마땅해하시고 본인이 직접 해야 만족하시는 분이라 그냥 원하는 대로 하시게 두는 편인데, 건강 회복을 우선으로 두고 요양해야 하는 엄마가 매일 그렇게 요리를 힘들게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죄송하다.


그래서 내가 가끔 요리를 해서 가족들을 먹이려고 하는데,  내 요리는 정통 한국요리가 아닌 퓨전 요리라던지 한국요리와 결이 달라서인지 특히 부모님이 드시면서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면서 나도 주방에서 위축되고 내가 요리하는 게 불효라고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정말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도 편안하고 가족들도 설거지와 요리 걱정 없도록 내가 주도해서 자주 외식을 하려 노력한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써, 그리고 미국에 좀 오래 살았다 하는 한인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미국 문화가 있는데, “음식이 짜다”라는 것이다. 얼마나 짜냐고 물어본다면 외식하고 나서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되는 정도랄까? 평소에 짜게 먹는 사람이라면 문제없을 것이고 평소에 싱겁게 먹는 사람이라면 바깥 음식이 모두 짜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의식적으로 싱겁게 집밥을 먹는 편이어서 바깥 음식은 항상 짤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특히 외식을 하면 그 음식이 “짠가, 안 짠가”에 초점을 맞추고 드신다. 특별한 날이어서 모시고 어딘가 좋은 레스토랑에 가도 모든 맛 평가는 짠가 안 짠가에서 시작한다. 독립하고 결혼해서 떨어져 살 때는 몰랐는데 같이 살고 같이 외식하기 시작하면서 “짠 음식” 평가에 대한 노이로제가 생겼다. 나는 좀 짜도 먹을만하면 먹자 주의인데 우리 부모님은 음식에 대한 세세한 맛 평가를 다른 사람이 듣든지 말든지 열심히 하신다. 이건 한국에 살 때 식당에서도 하시던 버릇이라 다행히 미국 식당에서는 알아듣는 이가 없어 다행이다.


우리 부부가 외식 밥값을 내거나 동생이 낼 때는 그 “짜다” 맛 평가가 참 사람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별 뜻 없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그 말씀이 꼭 밥을 사드리면서도 안 좋은 것을 드시게 하는 불효를 저지르는 자녀로 만드는 것 같고  모든 미국 식당이 부모님 입맛에는 짠 게 분명한데 왜 아직까지 부정적으로 불평만 하시고 다른 면은 안 보려 하실까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 밥을 사드리는 게 참 싫다.


기분 좋게 같이 먹으려고 식당에 갔어도 첫입 먹자마자 짜다고 불평부터 시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앉아있으면 기분이 참 별로다. 계속 그렇게 살아오셨고 앞으로도 그럴 분들이니까 기대도 안 하지만, 나는 밥은 기분 좋게 먹고 싶다는 주의여서 그런지 항상 “왜 내가 여기 모시고 오자고 했지..” 하고 후회한다. 그냥 남편과 아이와 오붓하게 왔으면 더 좋았겠다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우리 아빠는 본인이 굉장한 미식가이고 다른 사람들은 일명 ‘똥 입’이어서 먹을 줄 모른다라고 외치며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는 분이다. 덜 예민하게 대충 먹고사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오만함까지 갖추셨는데 그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며 살아온 엄마도 참 대단하면서 불쌍하기도 하고 그냥 기성세대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다 그런 건가 싶다.


내가 요리해서 남편을 먹이고 자식을 먹이고 살아보니, 음식에 대해 미식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보다 불평 안 하고 맛있게 웃으며 먹어주는 사람이 백배 낫다. 내가 나이는 어려도 요리, 살림 야무지게 하는 결혼 7년 차이다.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그제는 아빠의 생신 기념으로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서 다 같이 식사했는데 처음에는 맛있다고 잘 구워졌다고 잘 드시던 아빠가 배부르니 “육즙이 안 느껴진다 고기가 별로다”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그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 스테이크 하우스는 가성비가 매우 좋고 가격이 저렴한 곳이었다. 인당 몇백 불 하는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서 사드리면 과연 백 프로 만족하실까?


어제는 동생이 해피아워 반값 할인하는 큰 레스토랑에 데려가서 식사를 샀다. 해피아워 할인은 애피타이저만 되는 것이라서 애피타이저를 중심으로 주문해서 식사했는데 Pub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어서 애피타이저들이 안주 개념으로 짭짤했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짜다 짜다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동생은 계산을 하고도 민망하고 찝찝한 얼굴이었다.


가격이 싸야 하고 맛도 좋아야 하고 또! 절대 짜지 않아야 하고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식당이 없는 게 문제다.

차라리 파인 다이닝을 가면 만족할까? 아니다. 돈 아까워서 벌벌 떠실 부모님이다.


빠른 시일 내로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편안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자식들 가까이 사는 것보다, 부모님이 편한 고국으로 보내드리는 게 자식으로서 제일 큰 효도가 아닐까 싶다.


캠핑장 근처 기차역 - 참 더웠다.
몸이 무거우니 더 못 걷겠어서 벤치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잎 한장 없이 조화처럼 피어있는 핑크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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