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집착 그 사이 어딘가…
나는 만 세 살 딸이 하나 있는데 아이에게 얼마 전 무심코 물어본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딸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
딸이 대답했다.
“엄마”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빠로 바꿔서 질문했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딸이 대답했다.
“로지” (자신의 이름)
그러자 아이는 누구를 제일 사랑한다고 할까 싶어서 다시 질문했다.
“로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딸이 대답했다.
“엄마 아빠”
딸아이는 엄마인 내가 엄마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인지하고 있었고, 반면에 아빠는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밤마다 아이와 둘이 침대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애정표현을 하며 재우는데 항상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가 “엄마는 세상에서 우리 딸을 제일 사랑해”였다. 매일 밤마다 이야기하고 표현해서 나는 아이가 자동으로 엄마는 자기를 제일 사랑한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무뚝뚝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엄마한테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이기에 아이에게 충분히 말해주고 싶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같은 반응이었다. 아이도 다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 맞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엄마가 되기 이전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나는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봐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은 다르다는 말이 진리인 건지, 나만이 우선이었던 나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아이는 어느새 1순위가 되어 있었다. 반전은 나 자신이 0순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가 1순위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이고 나의 모성애를 증명하는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예뻐 보이는 내 아이는 비로소 내 일부가 된 것이다. 아이가 크고 독립을 할 때가 되면 내 몸의 일부를 내 손으로 떼어내듯 아프지만 떼어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발 뒤에서 바라봐줘야 될 것이다.
오늘은 같이 살고 있는 친정 엄마로부터 원망을 들었다. 엄마는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감정이 격해져서 내가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는 엄마의 분기별 잔소리 레퍼토리인데 조언이 아닌 다짜고짜 역정을 내는 엄마에게 문제없이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더 화가 나셨다.
나는 엄마의 마음에 차는 딸이 아니다. 살면서 마음 아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살았고 보여드렸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보여드릴 수 없는 부분 한 가지는 “완벽한 현모양처”이다.
엄마의 살아온 삶을 보면 엄마가 왜 딸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서 몸이 부서지게 헌신하는 “엄마”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국과 반찬을 따뜻하게 만들어서 남편과 학교 가는 자녀들을 먹이고, 외식하기보다 집밥을 더 먹이려 끊임없이 노력하셨다. 힘들게 바깥에 나가 일을 하시면서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식사만큼은 무조건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살아오셨다. 엄마의 자란 환경이 워낙 가난했고 그래서 충분히 못 먹고 자라셨기 때문에 자녀들은 굶기지 않으려고 정말 애쓰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희생을 통해 건강하게 먹고 자랐다.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다는 말을 수백 번 해도 모자라다.
그러나 나는 엄마처럼 같은 강도로 희생하며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기에 나란 사람은 너무나 부족하다. 특히 한국인은 한식이라고 외치시며, 한식으로 밥상을 차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비난하시기에 그저 웃고 만다. 내 인생의 절반인 15년을 미국에서 살아왔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보고 접해온 나로서는 꼭 한식을 무조건 고집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한식 재료는 한인마켓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는 번거로움과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부모님과 합가 하기 전까지는 한식이라고 해도 한 그릇 요리들과 쉽고 간단한 외국요리들을 많이 해 먹고살았다.
한식이 아니면 가족들을 부실하게 챙겨 먹이는 것이라고 이미 정의 내리고 비난하는 모습이 아마도 세대차이, 문화차이겠거니 하고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거리가 가끔 느껴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독립이란 건 무엇일까? 진정 가능한 것일까?
내가 대학교에 가면서 집을 떠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서 살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정신적으로 생각보다 빨리 독립했던 것 같다. 그때는 부모님과 같이 안 사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부모님이 기다리다 전화하실 때까지 나는 전화 한번 안 하고 안부 한번 안 묻는 그런 매정한 딸이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가족에 대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오죽하면 남편이 친정 부모님께 연락 좀 드리라고 알람처럼 옆에서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의 입장에서처럼 쉽게 분리된다는 게 불가능하겠구나 싶다.
올해 나는 결혼 8년 차에 들어서는데 아직까지도 딸이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만 반복했다. 엄마는 ”그래! 알아서 잘 살아! 너 알아서 산다고 하니까 뭐라고 하니! 알아서 살아! “라고 하셨다.
엄마 마음 편해지시라고 “네”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내 나름의 ’ 나는 당신이 아니에요. 독립된 사람으로서 나를 존중해주세요’라는 나의 조용한 외침을 엄마가 받아들이시고 편해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여성상이 될 자질도 마음도 많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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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면 가족들은 “네 남편이랑 아이는 불쌍해서 어쩌냐”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곤 하는데, 왜 그게 그렇게 불쌍한 일인지 모르겠다.
남편은 묻지 않아도 평소에 입버릇처럼 “우리는 입맛 취향도 너무 비슷하고 잘 맞아. 간단하게 먹고 힘들 때는 자주 외식하는 것도 나는 좋아. 우리는 먹는 걸로 문제 있었던 적이 없던 것 같아. 너무 잘 맞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남편의 또 다른 속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우리는 딱히 문제가 없는 듯하다.
색다른 나라의 음식들을 시도하고 새로 오픈한 식당에서 먹어보고 추억을 만드는 걸 즐기는 우리 부부는 참 잘 맞는데 왜 가족들은 자꾸 그런 오해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도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서 내가 해주는 식사들도 곧잘 먹고 (오랜 시간 축적된 다이어트 지식들로 인해) 몸에 좋은 필수 영양소는 당연히 채워지게끔 챙겨서 식사를 만든다.
하도 우리 부부가 사이가 좋아서 친정엄마는 나에게 한번 “쇼윈도 부부 아니냐”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셨으니 이쯤 되면 도대체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부부 사이가 안 좋고, 아이가 잘 못 큰다면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자질을 탓해도 할 말 없겠지만 지금 우리 세 식구는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현재 만삭에 가까운 배의 임산부에 세 살 딸아이 쫓아다니며 몇 첩 반상으로 식사 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좀 모자라면 모자란 데로 게으르면 게으른 데로 살아도 괜찮다고 엄마께 보여드리고 싶다. 완벽한 아내가 아니어도 남편과 충분히 사랑하는 신뢰 관계가 가능하고,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아이가 안정되고 사랑이 많은 아이로 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