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 되는 일은 일이 아닌가요?
나는 만 세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영재처럼 글을 읽고 쓰고 수학을 벌써 익혀 셈을 하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스스로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틈날 때마다 공부책을 열심히 푼다. 이미 두꺼운 책 한 권과 얇은 책 여러 권을 다 끝냈다…
나도 남편도 아이에게 전혀 공부에 대한 압박을 하지 않는 편이고, 매일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정도만 잘 따라가면 충분하다고 믿기에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고 조를 때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특한 그저 그 정도이다.
나는 친정 부모님과 살고 있는데 특히 친정 엄마가 자꾸 세 살 손녀에게 의사가 되라고 세뇌한다. 할머니 입장에서 학습에 의지를 보이는 어린 손녀가 의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지만 아직 한참 어린아이에게 왜 의사가 되라고 부추기는지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친정 엄마는 우리 집안에는 의사나 간호사가 없다면서 영양가 없는 것들만 하고 산다고 말했다.
순간 멍해져서 내가 뭘 들은 건가 싶었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루었고, 내 동생은 회계학을 전공하고 정부 기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영양가 없는 것들을 한다고 말을 들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자식으로 장사해?”라고 물었는데 친정 아빠는 “당연하지”라고 했고 동생까지 동조해서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 네 가족 중에 (엄마, 아빠, 나, 동생) 나 빼고 세 사람은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고 있는 모양이다.
왜 이런 존중 없는 대화가 오고 가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어 나는 말을 잃고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게 부모님에게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전형적인 한국 기성세대 부모들처럼 자식이 “사”짜 직업을 가져서 돈 많이 벌고 자랑스러운 게 다 인 것일까? 제발 내가 오해한 것이기를 바란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갑자기 비자가 바뀌어서 유학생 신분이 되었는데 부모님은 말 그대로 빚을 내가며 내 대학 학비를 대주셨다. 그때도 부모님은 적어놓을 테니 갚아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것은 책임감 있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었겠지만, 무조건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 나에게는 학비를 대주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마음의 부담이었고 이후에도 얼른 갚고 도망치고 싶은 족쇄가 되어 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로 다달이 갚으라고 요구하셨고, 내가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매달 일정 금액을 송금하는 것으로 갚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공교롭게도 직장에서 레이오프가 되어서 나의 수입은 없어졌다.
나는 첫 아이를 낳고 난 이후로 전업주부와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정규직으로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기에 고정 수입이 없다. 부모님이 투자한 만큼 회수가 안되어서 그런지 나는 가족들에게 틈날 때마다 원망을 듣는다.
차용증을 쓰고 빌린 것도 아니고, 나는 나대로 억울하다.
학자금 보조를 받을 수 없는 신분이어서 부득이하게 부모님으로부터 학비 보조를 받았고, 자취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정말 여러 가지 모욕을 견뎌가며 식당 알바를 했다. 자취방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다 벌어서 충당했고, 졸업할 때까지 한 학기당 수업을 6개씩 무리하게 수강하면서도 학점도 최상위로 유지했다. 상도 여러 개, 장학금도 여러 개를 받고 졸업하고 나서 짧은 기간이지만 여러 작은 회사들과 큰 회사들에서 열심히 일했기에 나는 꽤 좋은 이력들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둘째 아이의 출산이 얼마 안 남았기에 회사에 취직해 일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포트폴리오만 재작업하면 취직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취업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는데 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남편 외에 가족들은 나보고 비싼 돈 들여 대학은 왜 나왔냐고 막말을 자주 한다. 나의 재능과 능력이 너무나 아깝다고, 그것들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 안 되는 짓만 하고 산다고 한다.
사실 나는 현재 어떤 여성 의류 브랜드에 고용되어서 재택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일을 하고 있고, 일감이 많지 않아서 많이 벌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당 꽤 많이 받으며 일하고 있는 상태이다. 나는 경력이 단절된 주부도 아닐뿐더러 그 일 말고도 한국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판매 주문도 간간이 들어오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나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열심히 살며 성과를 조금씩 내며 전진하고 있는데 왜 가족들은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자식을 낳았지만 내 부모가 요구하는 것처럼 내 아이가 나의 노후대책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아이가 행복하게 일을 하며 웃으며 살기를 원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여러 면으로 돈이 들어가겠지만 그것도 우리 부부의 선택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결과일 것이다. 그 돈을 회수하려고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싶지 않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각종 악기들을 배우게 하고 사교육을 열심히 시켰는데,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내가 했던 한 가지 생각은 “왜 우리 엄마는 필요 없는 것들에 돈을 낭비할까… 나는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데 엄마한테 참 미안하다”였다.
왜 나는 피아노, 플루트, 첼로 세 가지 악기를 배워야 했을까?
교회 오케스트라에 억지로 등록되어서 몇 년 하고 난 후에는 악기들에 질려서 지금은 전혀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든다. 악기를 행복하게 연주하면서 사는 삶이 부럽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여지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왜 엄마는 나를 고액의 선행 학원에 보냈었을까? 공부를 싫어했던 나는 그 학원을 다니느라 큰 스트레스였고 엄마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돈 낭비라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다녔다.
그러면서도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은 영양가 없다면서 단번에 묵살하셨다.
엄마의 욕망대로 꼭두각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이제는 30대이고 엄마이자 아내이고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인데 아직까지 엄마의 마음에 안 든다고 막말을 내뱉는 모습을 보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자식을 가지고 장사한다는 무서운 이야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나는 현재 나만의 색깔로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그게 비록 돈을 좇는 인생은 아닐지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병든 마음에서 나오는 막말과 비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를 더 사랑하고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내 자식은 건강한 마음으로 키울 수 있다.
가끔은 독이 되는 인간관계들이 있다.
나에게는 가끔 가족이 독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감사함을 빌미로 나를 조종하려 하고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부모님을 오해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해가 아니라 진실이라면 너무나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