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계엄령이란 없다.

by 성균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비상계엄은 22시 28분 ‘국가 정상화’와 ‘자유 헌정질서’를 보호한다는 근거로 선포되었다. 44년만의 비상 계엄령은 약 6시간만에 해제되었으나 만일 국회가 가결 절차를 밟지 못했다면 대학가는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까. 계엄법 9조는 계엄사령관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 관할권을 일임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는 순간부터 행정 기관과 사법 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의 지휘와 감독 아래 놓이게 된다.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특별 조치를 내릴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이 전국 확대 포고령 10호로 전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 것처럼, 국회가 가결 절차를 밟지 못했다면 계엄법에 의거해 언제라도 지금의 일상은 뒤집힐 수 있었다. 실제로 12월 3일 밤 11시 포고령 제 1호가 발표된 후 약 6시간 동안 집회, 언론, 표현의 자유는 모두 가로막혔다. 전국 대학에서 촌각을 다투며 발표하는 성명문도, 학생총회의 기자회견도 모두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이 가능한 위법으로 명명된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지난 8월부터 계엄을 논의하였다는 의혹에 괴담이라고 반박해왔다. 그리고 불과 3개월만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 밤 내내 우리는 비상 계엄 1시간 만에 국회로 들어서는 군인과 길거리에서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는 시민들을 목도했다. 국회의 비상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에도 나타나지 않는 대통령을 보았다. 44년만의 비상 계엄령은 약 6시간 만에 해제 되었으나 이는 단순히 하룻밤 사이에 무너진, 혹은 무너질 우발적 사안이 아니다. 본 기사는 12.3 사건에 대한 높은 심각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전국민에게 가해졌을 위협을 단호히 진술한다.





‘충암파’의 군 친정체제 구축

처음 계엄령 의혹이 제기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경호처장으로 근무하던 22년 11월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 경호처장의 권한을 확대하며 논란을 빚었다. 그리고 23년 8월, 그를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며 계엄령에 대한 의혹은 더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충암고 출신인 이상민 전 변호사가 한미 정상회담과 6·1지방선거를 이유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주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바 있다.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박종선 777사령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이어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그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것은 군부의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작년 3월 일명 ‘충암고 라인’의 공관 회동을 꼬집었다. 김 위원은 친정 군부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군의 견제 기능이 무력화되기에 계엄령에 대비하여 이러한 체제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여당과 대통령실 측에서는 야당의 선동과 음모론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12·3 사태 이후 국방부의 발표에 따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번 계엄령을 건의한 것이 밝혀지며 그동안의 끈질긴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계엄 이후 국정원 1차장 출신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국군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가 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계엄 시 부대 이동과 관리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시기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이 방첩사를 방문해 충암고 일부 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시기와 맞물린다며 윤 정부의 계엄이 장기적인 계획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5일에 열린 ‘비상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충암고끼리 모인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올해 초에 국군방첩사령부를 방문해 충암고 출신 3명과 만찬 자리를 하지 않았냐는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충암고 출신은 2명만 있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장악부터 시도한 계엄군

22시 28분, 계엄이 선포되고 2분 후 계엄군은 과천시 선관위 청사로 진입했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22시 30분 계엄군 10명이 청사 내로 투입되었으며[1] 중앙선관위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행동감시, 청사 출입 통제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현안보고에 의해 23시 50분에는 경찰 90여명, 0시 30분에는 계엄군 110여명이 추가로 청사안으로 투입되었음이 확인되었다. [2] 그뿐만 아니라 서울 관악구의 중앙선관위 청사에도 계엄군 47명이 투입되었고 수원 소재 선거 연수원에는 계엄군 130명과 경찰 100명이 진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 즉, 300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가장 먼저 선관위에 배치된 것이다.

방첩사의 투입을 지시했던 김 전 장관은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부정선거’ 의혹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4]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계엄령 선포 이후 선관위에 투입된 계엄군은 곧바로 청사 2층으로 들어가 사전투표와 관련된 ‘통합선거인명부’ 서버를 촬영해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사실상 대통령의 계엄선언 이전부터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을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극우 세력은 22대 총선에 대해 ‘통합선거인명부’ 조작이라는 음모론을 주장해 왔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고 있다. 추가로 언론 통제 권한을 가진 박성훈 보도처장이 계엄령 시행 이후 계룡대에서 서울로 이동하며 언론을 검열하려는 시도도 포착되었다. 이러한 각종 군사 정황들은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령이 아닌 계엄 성공의 이후 시나리오까지 교묘하게 준비했다는 근거로 꼽히고 있다.


정치인 및 언론인 긴급 체포조

더불어민주당은 12월 5일 계엄군이 국회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공개하며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의원을 체포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연이어 불거지는 의혹에 국민의 힘 소속 관계자는 “조심스럽지만, 체포조가 투입된 것이 맞다”고 밝혔으며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이에 관련해 묻자 포고령을 위반하는 행위니 체포하려고 하지 않았겠냐고 답한 것이 전해졌다.[5] 그리고 다음 날 6일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신성범 국회 정보위원장과 김병기 의원 등과의 면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계엄령을) 기회로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전화로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또 윤 대통령은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그에 따라 홍 차장이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연락하자 여 사령관은 검거 지원을 요청하며 체포 명단 내 인원들을 방첩사 내 구금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계엄령 선포 다음 날 국회 주변에서는 군용 케이블 타이가 발견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케이블 타이 수갑이 국회의원 체포 용도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6]

뉴스공장 진행자인 방송인 김어준 씨는 본인의 집 앞에 군 체포조가 들어섰으며 체포영장이 준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이유로 자신의 채널 긴급 라이브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그 시각 일부 계엄군이 해당 방송을 실시간 진행중이었던던 겸손 방송국 사옥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7] 실제로 12월 6일 홍장원 차장이 밝힌 체포 대상 명단에는 김어준씨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의원 신분이 아닌 인물 중에는 노총 위원장과 권순일 전 선관위원도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윤 정부 세력에 반대하는, 혹은 계엄에 따르지 않으리라고 예측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계엄군의 체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을 우선 제지한 후 추가로 나타날 계엄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누르려는 시도로 판단될 수 있다. 게다가 주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비롯해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체포하려는 시도가 성공했다면 국회를 포함한 사회의 여러 공론장들이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윤 정부가 계엄령을 발판 삼아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는 전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특수부대와 실탄을 동원한 국회 진입 시도

3일 밤 국회에는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여단과 707특수임무단,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의 군사경찰과 1경비단으로 구성된 685여 명의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경찰은 국회 출입문을 폐쇄했고 국방부는 헬기로 24차례 무장 계엄군을 국회로 진입시켰다. 계엄군은 의원과 보좌진에 의해 정문이 막히자 국회의사당 2층 사무실 유리를 깨고 안으로 난입했다. JTBC <뉴스룸>에 따르면 당시 계엄군들은 “국회의원들을 다 끌어내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국회 장악 당시 실탄이 동원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으나 5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실탄은 지급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또한 동일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JTBC와 인터뷰한 제1공수특전여단 최고지휘관 이상현 여단장은 당시 상부로부터 실탄을 챙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여단장은 우발상황을 대비해 실탄을 차량에 실었으나 군사적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실탄과 공포탄 모두 지급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젊은 세대에겐 처음 느낀 공포를, 기성세대에겐 수십년 전 악몽을 맛보게 하룻밤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곱씹고 되새겼다. 누군가는 단순한 ‘해프닝’이자 쉽게 갈무리되었을 가벼운 시도로 무마하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밤에 맨몸으로 군을 막은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단 2시간만에 국회의원 150명이 국회로 모이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짓밟혔을지 우리는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결코 안일해져서는 안된다.




계엄령 아래 무력해졌던 6시간은 도화선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정치적 무력만을 느꼈던 지난 날 속에서 벗어나 일렁이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 무관심으로 비난받던 젊은 세대 역시 지난 역사를 결코 잊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일어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성명서와 수천 명의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 날이 밝을 때마다 또다른 대자보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저마다의 공론장에 울려퍼지는 외침들은 꽁꽁 얼어붙은 길 위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학내에 쏟아지고 있는 총학생회, 단과대학, 여러 학생 단체와 개인의 성명문과 대자보 역시 마찬가지다.


AD_4nXcUQqqHVJd3E7oErOUGNutfiRp6s2khe4zxOc0x5xInWQlYtWWoTLMY5oaVbforhtbwAMoacOeniFBuLfSTdAReLFpwwNWapBUtIxUXfnmwvdjL4WCNTGBEcw2292js3Fp3ukGS?key=8zhANKy3MaIouvT5NXBK7AkZ 12월 4일 부착된 24.12.4 성균관대학교 제57대 총학생회 연석중앙운영위원회의 성명문


AD_4nXd0Ph48pG-1qib0jwIU5_woOYLDY143m242uoYg3wovZZASIgfelzpfXgDJO6eYSfTrpy1tSqP7pdFKVUe2M28N-NPS71Iw4a6Qirt2l2N4WeRC5NJizFtHWHB6_ut3lI54Kx2B?key=8zhANKy3MaIouvT5NXBK7AkZ

12월 5일 부착된 성균관대 사학과 한국사학회, 성균관대 사회학과 이론사회학회,

성균관대 사회학과 학생 68명 일동, 성균관대 인문사회예술독서회,

성균관대 장애비장애 통합동아리 EQUAL, 성균관대 중앙동아리 사회과학학회 디딤돌의 대자보



12월 5일 부착된 사학과 대학원 대자보


AD_4nXdZTPWDDNHEeo-8B0_umesfU7IKEYwS6_sW8_UitkKBa_izoLNtZHEhcmetDPuMlso9QXb9zgB1ow__gwH9vYKG0SWTMPSxQf3trj6GNeOYSsZeD4HxApyI3zs6_4-vucBK7Rbybg?key=8zhANKy3MaIouvT5NXBK7AkZ 12월 5일 부착된 사학과 원,복수전공생 59인 대자보


AD_4nXdZ8wv5HUvkwsbe7bHpz7h2-UDOmP6IqVmZHgxZlh4bxAQkFT8hLk-f0zZ8dr8K8PmBhYUKDGelmvU448JF8yUHG4rD9EMCK0GQpkhiV5xpek6fVIWg1NifUIQGiarOg3jPHv_Nnw?key=8zhANKy3MaIouvT5NXBK7AkZ 12월 5일 부착된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편집위원회 정정헌 연합 대자보


AD_4nXdW2Lx_JZAGTsAwBsKzqqeFQzWRcHP6e1XJRxSyU3IbcUzeT2ueZjRiajtpouHkYSNa_is4GFZlRu4YdssASfr6LpV9Je_TGEZLMM8FXv1SkZdk7hRiC7UQPUR5ztY-zC-emi7Y8A?key=8zhANKy3MaIouvT5NXBK7AkZ 6일 부착된 성균관대 학우 9인의 대자보


AD_4nXefftTKXQS0u1H2vuytdwfFhErNIxtL_QTjLPYPfqxPNPz1u85nf7gvKeAVyU1prvDdjogm78b2Icy9XpI_ExgpP_gKzhFyzb6wiZST8lowawxK_9hiPpyELO0R10SyLuXSJittWQ?key=8zhANKy3MaIouvT5NXBK7AkZ 유학동양학과 1인의 대자보

지난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걸어온 길을 배우며 우리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신념을 되새겼다. 지금은 그 신념을 기꺼이 실현할 때다. 국회와 국민을 향해 군을 움직이게 한 세력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그들이 다시 이러한 불법 행위를 일으킬 수 없도록 하는 재발 방지 법안까지 함께해야 한다. 합동수사팀에 정직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비극적인 국가 상황 속에서 현 정권의 위헌적 책임을 묻는 움직임에 끝까지 함께할 것을, 적극적인 연대와 참여를 호소한다.












[1] : 유선의, '"계엄사 설치 전 선관위에 '방첩사 IT 병력' 투입"…데이터 노렸나', 2024.12.05, JTBC,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26077

[2] : 김도균, '계엄사령관 배제하고 다른 명령계통, 군형법상 반란', 2024.12.05,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85717

[3] : 기민도, '계엄군, 계엄선포 동시에…선관위 들이닥쳐 당직자 휴대폰 압수', 2024.12.05,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70986.html

[4] : 신재현, 정금민, '야 "계엄군,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선관위 전산실 진입"', 2024.12.06,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206_0002987449

[5] : 신진호, '한동훈 방 잠복해 있던 계엄군 체포조…尹은 ‘포고령 위반했나 보지’', 2024.12.05,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politics/congress/2024/12/05/20241205500230

[6] : 이유진, '국회에서 계엄군 수갑·탄창 추정 물건 발견···야당 “국회의원 체포용”', 2024.12.05,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50821001

[7] : 심우삼, '계엄군 ‘뉴스공장’ 사옥 출입 봉쇄…김어준 “체포조 집 앞으로 와”', 2024.12.04,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70737.html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1호] 더 넓은 사랑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