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 여는 글

by 성균지

지난겨울은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편집실에서 막 기획 회의를 마치고 대성로를 내려가던 길에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요. 일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초조함, 분노가 뒤섞여 계엄 해제 소식을 들을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밤이 지나고 나서도 일상은 겨울 내내 이리저리 뒤엉키고 늘어지더라고요. 이상하게 비틀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눈앞에 자라난 광장에 달려 나가기도 하고, 깃발과 응원봉에 둘러싸여 발견한 ‘우리’에 대해 낯선 기쁨과 실망, 분노와 서늘함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었던 우리를 스쳤던 광장의 다양한 장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작년 겨울을 통과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새로운 봄에 발간될 이번 호의 문을 여는 글은 특별기획입니다. 두 편의 글을 통해 12.3 내란 사태와 그 이후의 광장에 대해 다뤘습니다. 첫 번째 글 ‘어설픈 계엄령은 없다’는 계엄이 모의 되고 실행에 옮겨지고 해제가 의결되기까지 네 가지 장면을 기록해 이번 내란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님을 서술했습니다. 특별기획의 두 번째 글인 ‘당신과 광장이 만날 때’는 다섯 명의 대학생을 만나 복잡하고 다양하게 존재했던 광장의 모습과 그 속의 ‘우리’가 감각했던 제각기 다른 연결과 불화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그동안 지나왔던 광장과 그 속에서 조금씩 달라졌을 당신을 떠올리고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12호 커버스토리는 ‘속도’입니다. 속도는 방향을 가집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목적지를 한 번에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속도를 바꾸곤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호에서는 어디론가 내달리고 멈추고 역행하는 일은 예견된 미래를 조금이나마 바꾸는 시도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 해 먼저 입학한 빠른년생들과 각자의 속도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 지방의 삶을 만났습니다. ‘더 빨리’를 외치는 기이한 배송구조와 ‘더 느리게’를 말하는 새로운 식사법을 찬찬히 뜯어보기도 했습니다. 눈앞의 재앙으로 천천히 미끄러지기 위해 기후 위기와의 속도전을 펼치는 첨단기술의 미래도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주변의 속도와 조금씩 맞지 않는 것들이죠. 주변과 다른 속도를 가진 것들은 필연적으로 삐걱거립니다. 조금 더 빨라져야 한다는 압박에 조급해지고, 한편으로는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멈추고 싶었던 당신에게 들려왔던 ‘삐걱거림’을 생각하며 글을 읽어주세요.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마지막은 코너 기사가 맡았습니다. 문화 코너에서는 지금 한강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모두 직시하면서 무너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루터기 아래, 우듬지 위’가 그 애도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생태 위기 코너에서는 위기의 시대에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지구 법학을 쉽게 풀어썼습니다. 끝으로 언론 코너에서는 인문학 활동가 김고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질문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세 코너뿐만 아니라, 성균지 한 권 역시 일상 바로 옆에 자리해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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