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 한 해, 두 세대: 빠른년생의 세계

커버스토리 속도

by 성균지

수습 편집위원 나유정, 오현지



자기만의 고유한 궤적을 그려 나가는 게 삶이라지만, 대체로 균질한 경험을 공유하는 시기가 있다. 많은 사람이 ‘학생’이라는 동일 신분으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8살부터는 초등학생, 14살부터는 중학생, 17살부터는 고등학생이라는 ‘정상’ 궤도. 똑같은 열차에 타면서도, 어딘가 어긋난 이들도 있다. 너무 일찍 탔거나 너무 늦게 탄 사람. 새로운 노선으로 환승한 사람. 버스를 타러 아예 역 바깥으로 나간 사람.

2003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빠른년생’이 폐지되었다. 1월이나 2월생이라면 전년도 출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공식적 규정이 사라지면서, 2004년생이 사실상 빠른년생의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올해는 공식적으로 마지막 빠른년생이 대학교 2학년이 되는 해이다. 어느덧 대부분의 빠른년생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였지만 이들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빠른년생’으로서의 이질감은 여전히 분명하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가장 먼저 나이를 묻고 존대 여부를 정리하는 첫 만남의 의례는 아직도 일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이와 학번과 기수로 정해지는 관계 속에서 '빠른년생'은 줄곧 조금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빠른년생들은 존대하고 혹은 존대받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나이, 호칭에 민감했던 과거부터 관계에 예민해진 현재까지 각자의 시기를 거쳐온 그들이 오래도록 품고 있던 이야기의 장을 열어보겠다. 그리고 어쩌면 빠른년생들이 ‘정상’에 의해 브레이크를 당하는 입장이 아닐지 고심해본다. 같은 나이의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빨리 열차에 탑승했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빠른년생’의 사라짐은 좋은 걸까? 우리는 마지막 빠른년생이 대학에 진학한 지금,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간 다른 두 세대의 빠른년생이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여러분은 누구신가요?

안유: 저는 빠른년생이 아닌 04년생 23학번입니다.

닌자: 저는 재수해서 대학 들어온 2004년생 23학번 닌자입니다.어렸을 때부터 2003년생 친구들이랑 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5월생이라서 빠른년생이라기보다는 조기 입학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궤도이탈물: 저는 빠른 05년생이고 재수를 해서 24학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빨리 가고 싶어 해서 일찍 입학하게 되었어요.

굣님: 저는 82년생이고요. 82년생 2월생인데 학교를 7살에 들어갔어요. 저희 어머니의 나름의 조기 입시 전략 같은 거였어요. 나이가 어린데 성적이 좋으면 더 유리하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웃음) 저는 재수는 안 했고, 그래서 제 친구들과 동기들이 저보다 한 살이 많습니다.


어떤 나이로 살고 있나요?

닌자: 재수한 김에, 이제 제 나이 친구들이랑 동기로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냥 2004년생으로 살고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5월, 그러니까 한 해의 중반기에 태어났는데, 2004년 1~2월생 친구들한테 언니 혹은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기가 조금 민망한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학창시절 친구들과 만날 때는 03년생으로 살고, 이후에 사회에서 완전히 새롭게 만나는 지인들과는 04년생으로 만나고 있어요. 다만 성균관대에 제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아서, 지인이 겹치면 곤란한 상황이 종종 생기긴 합니다.

안유: 사실 저랑 닌자도 고등학교에서 같은 동아리였어요. 제가 후배였고 닌자가 선배여서 전화부에도 ‘닌자 선배’라고 적어놨었죠.

닌자: 여기 와서 이제 ‘야’라고 부르라고 말했어요.

굣님: 오. 그게 쉽지 않았을 텐데.

궤도이탈물: 저도 주로 05년생으로 살고 있긴 한데요. 대학에서는 보통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술자리에서 제가 빠른년생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04년생 친구들도 그냥 신나서 ‘야, 그냥 친구 하자’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까 그냥 제가 아예 족보브레이커로 자리 잡아서 두 무리와 다 친구하고, 반말하고 지내고 있어요.

굣님: 전 한동안 ‘학번’ 기준으로 살았어요. 어딜 가든 00학번이라고 절 소개하고. ‘나이’로는 소개를 잘 안 했어요. 그런데 이제 40세가 넘어가니까, 슬슬 ‘나이’를 찾아가죠. 굳이 뭐 하러 (복잡하게 따지나)… 이제는 사실 (학번에 비해) 내 나이가 많지 않다는 걸 강조하려고 하는 거죠. 나이가 들면 바뀌더라고요.


우리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궤도 이탈물: 저는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요. 제가 학교에 일찍 들어가니까 키 번호가 1번인 거예요.

입학식 때 대열에 딱 섰는데 (키가 너무 작으니까) 아빠께서는 저를 보자마자 입학 취소해야 한다고 하시고, 엄마께서는 아이가 너무 학교에 가고 싶어 하니까 보내자고 말리시고… 그래서 두 분이서 엄청 싸우셨어요.

아빠가 학교 다닐 때는 키가 작으면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놀림을 당했으니까, 혹시나 제가 키 때문에 놀림받을까봐 걱정하신 것 같아요.

굣님: 맞아요. 생각보다 나이만큼 신체도 꽤나 중요해요. 사실 아이들은 키가 작다고 나이도 적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근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외양이 우선 보이니까.. 이 부분을 많이 걱정하셨을 법하네요.

궤도이탈물: 그때 처음 ‘띠’라는 걸 배웠어요. 그 띠에 대해서 다 같이 얘기할 때, 저 혼자만 닭 띠인 거예요. 스물 몇 명 중에 나만 다르다면서 ‘야 이제부터 오빠라고 불러’ , ‘그러니까 언니라고 불러’ 이렇게 놀리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닌자: 사실 저는 엄청 어릴 때는 띠가 나이별로 나누어져 있는 줄 몰랐어요. 전부 양띠인데 나만 원숭이띠니까 그냥 ‘나 특별한가 봐’라고 생각했죠. (웃음) 근데 초등학교 때는 특히 나이 한 살, 한 살이 너무 크게 다가오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저도 (궤도이탈물님께서) 말씀해주신 상황들이 상처였어요. 덕분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이를 숨기는 스킬을 익혔죠.

굣님: 두 분 얘기 들으니까 저도 잊고 있던 옛날 기억들이 나네요. 비슷했던 것 같아요.

전 그냥 상대방한테 같은 띠라고 대답했어요. 아니면…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고. (웃음)


사회에 나가서..

굣님: 대학생 이전에는 나이가 달라도 티가 안 나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자기 학년을 따라가는 거잖아요. 어차피 주민등록증은 고등학교 3학년때, 혹은 그 이후에 나오는거니까. 근데 대학생부터는 아니더라고요. 제가 대학 시절에 사회부장을 한 적이 있거든요. (사회부장을 하면 나이가 자동으로 공개되어서) 겉모습은 듬직하지만 제 실제 나이가 더 어리다고 하니까 몇몇 후배들은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나 봐요.

닌자: 아, 오히려 전 (나이를 낮추니까) 어려 보이고 싶어 한다고 오해받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굣님: 저희 때는 ‘어려보이고 싶어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거죠. 그냥 어떤 학번으로 속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강했던 것 같아요.

닌자: 저희는 학번주의가 많이 사라진 세대인 것 같아요. 원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영향을 많이 끼치지 않았나요?

궤도이탈물: 저는 N수생들이 많아진 것도 (학번주의가 사라진 것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세대에서는 학번보다 생년을 물어보는 게 더 일반적이잖아요. 저희 오빠도 메디컬 쪽을 다니고 있는데 그 분야는 30대 분들도 종종 입학하시는데, 그 중에도 빠른년생이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나이를 구분하거나 호칭을 정하는 데에 연생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아요.

굣님: 저 때도 어떻게든 동기들이랑 빨리 친밀해져야 하니까 호칭을 서둘러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래서 서로 몇 학번이냐고 물어보는 게 첫 인사나 다름없었죠.

안유: 갑자기 든 질문인데요. 다른 나라는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나라는 호칭이 있어서 일단 이 사람을 어떻게 부를지부터 정해야 하잖아요.

닌자: 그쵸. 그래서 전 오히려 대학 와서 호칭 문제가 조금 해소됐어요. 고등학교와 다르게 대학은 일단 존댓말이 기본이니까! 이제 초면인 사이에선 누구누구 님,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문제가 크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빠른년생 제도가 가지는 능력이 있다면,

닌자: 이 제도가 사라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해요. 이제 모든 사람이 무조건 태어난 지 햇수로 8년째일 때 초등학교를 입학해야 되고, 14세가 되는 해에 중학교를 입학해야 된다는 규범이 고착화되는 건 아닐까요? 사실은 저처럼 어쩌다 보니 5월생인데도 빨리 입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몸이 안 좋아서 치료를 받다 보니 1~2년 정도 입학이 늦어진 사람도 있을 수도 있잖아요. 빠른년생이 사라지면 그런 동일한 나이에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이 너무 굳어져서 다른 궤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우려돼요. 예전에는 ‘난 빠른년생이야’ 라고 나 자신을 스스로 명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언어가 없어지니까 결국 더 많이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고요. 한편으로는 폐지가 오히려 ‘빠른년생’ 같은 딱지 없이 자유롭게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될 수도 있겠죠. 동전의 양면인 것 같아요.

굣님: 저는 원래 (닌자님과) 생각이 좀 달랐어요. 근데 닌자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의견도 와닿네요. 사실 전 빠른년생 제도가 없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나이를 복잡하게 다루는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느끼는 어려움이 존재하잖아요. 우리가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앞으로 이 제도로 겪게 될 난항이 더 있을 수도 있어요. 개인의 측면에 보면 다들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느라 얼마나 땀을 흘렸겠어요. 그런데 더 넓은 차원에서, 지금 현대 사회는 오히려 빠른년생이 사람들 간의 ‘스파크’, 그러니까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다른 점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갈등이나 어긋남을 맞닥뜨리고, 이를 통해 서로의 고착화된 생각을 바꿔주는 관계가 되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는 오히려 요즘 세상에는 이러한 제도가 사람들끼리 스파크를 튀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궤도이탈물: 저도 동감해요. 좀 더 다양성을 많이 경험해 볼수록 다른 곳, 예를 들어 해외에 나갔을 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나이랑 섞여 살았었어” , “너랑도 친구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사회의 길을 이탈했다.

닌자: 빠른년생은 어딜 가든 빨라서 좋겠다는 말을 듣잖아요. 저도 거기에 자부심을 가져왔고. 그런데 재수할 때 이 ‘빠름’을 잃어버렸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빠름이 내 유일한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유지하고 싶더라고요. 이 상대적으로 어린 상태, 빠른 상태를 지켜야 한다는 조급함에 좀 눌려 있었어요. 자꾸 어릴 때 빨리 뭔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에 처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압박은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깨지고 있지만요.

궤도 이탈물: 전 재수할 때 맨날 일기장에 내가 궤도 이탈물이 된 것 같다고 썼어요. 다들 대학을 가는데 나만 뚝 떨어진 느낌. 다들 각자 정해진 길을 정해진 속도로 따라가는데 나는 빠른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재수를 하니까 제가 저의 원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05년생이고, 빠른인데, 혹시 3수까지 하면 족보든 나이든 완전 꼬여버리니까요.

안유: 그러게요. 특히 요즘의 시대에는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고 있잖아요. ‘갓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한편, 쉼을 위한 휴학이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죠. 그러니까 전 빠른년생이 아니어도 여기에서 진짜 내 속도는 뭘까 의문도 들고 내 위치가 더 어정쩡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굣님: 어? 근데 오히려 전 그 말을 들으니까 좀 반가운데요. 예를 들면, 저는 동년배들하고 있을 때 가끔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각자 삶을 사는 속도가 다른데 자꾸 함께 똑같이 맞추려고 하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다행히 빠르게 살고 싶은 친구는 빠르게 살고 느리게 살고 싶은 친구는 느리게 살고 포용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이전보다 한층 자유로워진 거잖아요.

닌자: 이제 빠른년생이 사라지면서 굳이 1~2월생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학교에 빨리 입학하거나 늦게 입학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어졌지만, 한편으론 그 덕분에 이젠 나를 틀 안에 규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결국, 사회에서 빠른년생보다 폭넓은 나이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삶의 다양한 속도를 더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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