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 내려간 삶: 진주 청년 생활기

커버스토리 속도

by 성균지

수습편집위원 서정인


천만 서울, 35만 진주. 서울이 가속의 공간이라면 지방은 흔히 변화의 속도가 느린, 정지된 공간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여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다양한 리듬을 존중하며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지방 청년들이 있다.


대학에 합격해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는 쉴 수 없는 달리기가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3학년을 앞두고 주위 친구들은 학업과 알바뿐만 아니라 교외 활동과 교내동아리 활동, 인턴과 서포터즈, 각종 공모전에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이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부지런히 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침 출근 버스 안에 이미 가득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점심시간 한 시간 광화문을 돌아다니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나는 도무지 이곳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들 전속력으로 살아가는 도시 속에서 나는 다른 이들처럼 달릴 자신이 없었다. "꼭 성공해서 한강뷰 아파트에서 와인 마실 거야"라는 친구의 농담 섞인 말에도 나도 그러리라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대신, "내려가서 파프리카 농사지어 택배로 보내줄게"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내려갔다’. 휴학을 신청하고 진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물론 휴학 기간 내내 진주에 눌러 살 계획은 아니었다. 몇 달 전 방 계약도 연장한 채였고 마음먹은 영어 공부를 하기에도 서울이 더 나은 환경일 터였다. 사실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라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진주는 내게 ‘일시 정지’의 공간이었다. 진주에서는 언제든 숨 가쁜 경주를 멈추고 초등학생 때부터 변함없는 미용실과 동네 마트, 내가 다닌 중학교와 매일 가던 분식집 사이에 숨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내게 필요한 것은 단지 몇 주간의 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건네받은 “꼭 오세요”라는 모임 초대가 곧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어색하게 인사했던 첫 번째 모임에서 두 번째 모임, 그다음 모임, 또 다른 모임으로 자리를 옮겨갈수록 나는 진주에서 살며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얼굴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진주에 대해서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게, 진주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동네로 생각했던 내게, 새로운 진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날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결국 마주하게 된 건 진주에서의 쉼이 아닌 진주에서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들은 각자 다른 속도를 가진 채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만 쫓으며 각자가 걷고 싶은 속도를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만을 목표로 한 채 자신만의 속도를 시험해 볼 기회를 놓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모임마다, 공간마다 다른 속도로 읽고 쓰고 노래하는 ‘내려간 삶’, 진주의 생활을 인터뷰로 담았다.


동훈서점 “끈끈하게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골목길의 헌책방

서울에서 한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 갔던 독서 모임에서 중요했던 건 누가 그곳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라 독서하고 의견을 나누는 행위 자체였다. 그런데 동훈서점의 글쓰기 모임은 조금 달랐다. 동훈서점은 2대째 내려오고 있는 진주의 헌책방이다. 동훈서점의 사장 서훈 씨의 초대를 받아 서점의 모임 중 하나인 ‘도란도란’에 참석했다. ‘물’이란 주제에 맞춰 미리 써온 자신의 글을 순서대로 낭독했다. 이곳에선 글쓰기나 독서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사람 한명 한명의 표정과 몸짓이었다.


“모임들의 목표는 그냥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거예요.”

서훈 씨는 ‘도란도란’이 준비 없이 와도 괜찮은 곳, 잘하려고 애쓸 필요 없는 모임이 되기를 바랐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뭔가를 배우기 위해 모이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느긋하게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둬요.”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던 서훈 씨는 과거 한 책방에서 진행했던 ‘손바닥 글쓰기’ 모임을 통해 지역에서의 글쓰기 모임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되게 열심히 쓰고 재밌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그때 지역에서의 가능성을 봤죠.”

서훈 씨가 처음 만든 모임은 ‘술시’다.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 ‘술 시’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읽는 모임이다. 그러나 모임의 주인공은 역시 시가 아니다. 시에 대한 탐구보다는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초점을 둔다. 진주에는 동훈서점 말고도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서점들이 있다. 모임마다 목적과 분위기가 다른데, 동훈서점의 모임은 더 잘 쓰거나 잘 읽기 위해서, 혹은 책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거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서훈 씨는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평소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 서훈 씨의 성격도 영향을 주었다. “준비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가 안 됐으면 좋겠고, 조급해지지 않는 모임을 꿈꿨어요. 그래야만 제 스스로 오래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글을 잘 쓰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누기 위한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서훈 씨의 말처럼 도란도란에서는 각자 글을 읽은 후 의견이나 평가보다는 대화를 나눈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글을 읽고 나서는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수 때문에 고생했다는 글 뒤에는 집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각자 글을 읽는 방식에 따라 한자 한자 공간에 울려 퍼지는 서로의 말소리는 종이에 쓰인 글자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진주 같은 지역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책 모임 한 시간 전쯤 동훈서점에 가면 오늘 참여하시냐며 어서 글을 올리라고 독촉하는 서훈 씨를 만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끌어가며 매달 모임을 이어가는 동훈서점에는 도란도란 말고도 진주의 사람들이 모이는 다양한 모임들이 이뤄지고 있다. “진주에는 대체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동훈서점과 결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오라고 하는 것 같아요.” 현재 동훈서점에서는 무려 4개의 글쓰기 및 책 모임과 우쿨렐레 모임 등 다양한 외부 모임이 열리고 있다. 그냥 책방만 했을 때는 좁기만 했던 주변인들이 이제는 훌쩍 늘어났다.“사람들은 진주가 지방이니까 이런 커뮤니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주는 좁으니까, 시골이니까 뭐가 없을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모를 뿐이에요.” 서훈 씨는 예전에 비해선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모임이 더 빨리 알려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서훈 씨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와요. 하지만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맞는 분위기를 제공해야 하죠.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를 고려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곳은 진주에서는 블루오션 같은 곳이에요.”라며 동훈서점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향후 10년, 20년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주에서 모임과 만남의 장소를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좁게 느껴지는 진주 안에서도 먼 곳들이 있어요”

진주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모임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주의 문화적 스펙트럼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도시가 아니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서훈 씨는 “글쎄요”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모임 기획의 초반에 서훈 씨가 원했던 것은 더 세분화된, ‘매니악’한 모임이었다. 마주 앉아 롤플레잉을 하는 RPG, TRPG 장르의 게임을 하는 모임이라든지, 소설을 쓰는 모임이더라도 연애 소설 창작 모임, 추리 소설 창작 모임처럼 다양한 소수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꿈꿨다. 그러나 진주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서울엔 수요가 많고 사람이 많으니까 무언가 이상한 거나 새로운 걸 시도해 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머릿수가 찼을 텐데, 이곳에선 좀 더 대중적으로 가는 수밖에 없긴 한 것 같아요.” 또 서훈 씨는 매니악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내성적인 사람들’이 모임에 잘 나올 수 없는 점이 아쉽다고 이야기한다. 마이너한 문화적 취향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대도시보다 진주는 취향의 ‘익명’ 가능성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한편 진주라는 지역은 좁지만 넓은 곳이기도 하다. “진주 안에서도 먼 곳들이 있어요. 충무공동 혁신도시 같은 곳에서는 여기까지 못 와요. 서울에서는 오히려 여기까지 올 수 있는데, 진주 안에서 심리적인 거리가 큰 거죠. 우리가 그렇게 넓지는 않은 거예요.” 진주 안에는 구도심인 중안동, 대안동 등과, 신도시개발사업 혹은 혁신도시사업으로 개발된 외각의 초전동, 충무공동 등이 있다. 진주 내에 구획된 여러 지역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짧은데도, 심리적 거리감이 크게 작용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동네를 넘어 다니는 것이 당연한데, 진주에서는 같은 거리를 두고도 이동 자체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서훈 씨는 진주 안에서 각 지역이 하나의 독립적인 커뮤니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끈끈하게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 지역이라서 가능했던 일들도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편하게 초청할 수 있는 것이다. 서훈 씨는 지역 뮤지션들과 협업 사례를 이야기하며, “서점에서 공연 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그런데 지역 뮤지션들과의 관계가 쌓이면서 라이브 이벤트를 열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결국 진주에서의 문화적 스펙트럼은 대도시처럼 광범위하고 다채롭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고 관계가 깊게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조금 더 끈끈하게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손님으로 왔다가 모임을 참여해서 그 사람이 또 자기 지인을 데리고 온다든지. 아니면 모임으로 참여했다가 손님이 돼서 이제 책을 사러 온다든지. 누구나 한 번씩은 거쳐 갈 수 있는 기점이 되고 서로를 알음알음 알게 되는 면모가 큰 것 같네요.”

실제로 도란도란에 참석한 이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진주 이곳저곳에서 마주칠 때마다 매번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한 모임에서 만난 이를 다른 모임에서 만나고, 서로를 소개하면서 겹겹이 아는 사이가 모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 중심에 동훈서점이 있었다.


반주 “다들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 마시고 쓰는 모임

반주라는 이름 아래에 매달, ‘무용한 놀이’, ‘풀코스’, ‘마시고 씁니다’ 세 가지의 모임이 열린다. 커피를 마시거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먹거나, 책방에서 술을 먹으면서 글을 쓰는 모임들이다. 반주 모임을 운영하는 모임장 현경 씨의 초대를 받아. 반주 모임 중 ‘마시고 씁니다’에 참여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그런 모임이었으면 좋겠어요.”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 늦은 저녁 반주 모임이 열린다는 책방으로 향했다. 안쪽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각자 글을 쓰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나눠마시고, 다들 조용히 자신의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무언가를 끄적인다. 휴대전화로 쓰는 게 더 잘 써진다며 타자를 치는 사람, 아이패드로 글을 쓰는 사람, 이 모임을 위해 예쁜 노트와 샤프를 구매한 사람, 그냥 공책에 쓰는 사람들. 가끔 다른 이야기로 수다를 나누다가도 현경 씨가 “다 쓰셨나요?” 물으면 금세 다시 조용해져 글을 쓰곤 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잘 모르고 들어가 아무것도 안 가져온 나는, 옆 사람의 공책을 뜯어 종이 한 장, 앞사람의 필통에서 볼펜 한 자루를 빌렸다. 일필휘지로 종이에 와르르 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얼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펜을 빠르게 움직여 글을 써 내리는 모습은 대체 각자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내심 기대하게 했다. 모두 글을 다 쓰고 나니 돌아가며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각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내밀한 글쓰기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걸 느꼈어요.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사실 들여다보면은 그게 진짜 못 할 말이어서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생기는 오해 때문에 쉽게 말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면 점점 숨 막히거든요.”

같은 술을 마시며 같은 자리에 있지만 제각각 다른 내용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하는 고민부터, 어릴 적 포장마차에서 마셨던 과일소주가 생각난다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 알아들을 수 없는 글도 있었다. 나는 막 이사를 했던 참이라 집이 없는 설움에 관한 글을 썼다. 일필휘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적어 내려진 글은 자신의 연애 사업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였다. 무슨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하고 이런 글을 써도 되나 걱정했지만, 어떤 분위기의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하던 것과는 달리 정해진 글의 형식이란 건 없었다. 소설에서부터 일기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아무런 이야기들을 쓰고 읽었다.


“많은 구멍과 헐렁헐렁, 그리고 오래오래를 지향합니다.”

반주의 SNS에 쓰여있는 소개말이다. 모임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현경 씨는 적어둔 것이 있다며 이 글귀를 찾아 읽어주었다. 반주 모임이 어떤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현경 씨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많은 구멍들을 허락하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자의 속도와 바이브를 표현할 수 없는 게 이상해요. 뭔가 하나의 기준에 맞추어 그것을 넘어가면 죽을 것만 같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상한 취급 하곤 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 ‘다들 숨 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현경 씨가 구현하고 싶은 이상향의 관계 같은 모임이라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날 세우지 않고 헐렁헐렁하게, 조금 더 늘어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어떤 모양과 내용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모임장에 따라 나도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누워보았다. 누구도 평가받지 않으리라는 반주 모임은 이렇게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임이 되어 주고 있다.



스테이지 우산굉장히 ‘올드’하지요. 그런데 이젠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나쁘지 않아요.” - 지역 음악인들의 라이브 펍

번잡한 대학가 골목 안, 공연 포스터가 가득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푸른 빛의 조명이 빈 의자를 비추고 있는 스테이지 우산이 있다. 자기 노래,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라는 스테이지 우산에선, “어서 오세요!” 외치는 준우 씨를 만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만남! 예기치 못한 음악, 뮤지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그런 우산이면 좋겠어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일어나 조명이 비치는 의자에 앉는다. 그리곤 노래를 시작한다. 한번 시작된 노래는 우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래를 부를 때까지 이어졌다. 몇몇 곡을 낯설지만 즐겁게 듣던 중, “아무렇지 않지 못하는 일에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 만든 곡이에요.” 소개가 들려왔다. 노래가 시작되자 친구가 나에게 슬쩍 다가와 “마지막에 ‘아무렇지 않게’라고 따라 부르면 돼요.”라고 귀띔해 줬다. 곡의 막바지,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는데 우산의 모든 손님이 큰 소리로 “아무렇지 않게”라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엔 소심하게 듣고 있다가 이내 함께 따라 불렀다.


“우산에서 처음 악기를 잡았어요. 그게 첫걸음이었죠.”

버스킹과 카페 공연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2010년대, 진주에서도 카페 공연과 버스킹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공연들을 진주에서도 드디어 볼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정말 신이 났었어요.” 준우 씨는 그 문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모든 진주 시내 인디 카페 공연과 버스킹 공연들을 찾아다녔다는 준우 씨는 그 당시 진주에서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 매일 구경 오는 사람, 매일 집에 태워주는 사람으로 통했다.

스테이지 우산은 준우 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과 첫 인연을 맺은 장소이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했는데, 우산에서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너무 허접한 실력이었지만, 그게 첫걸음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음악 여정은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제 준우 씨는 매년 하나씩 8개의 싱글을 발매한 8년 차 밴드 ‘안준우프로젝트’의 보컬이다.

스테이지 우산을 이어받은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진주의 음악 문화를 공간에 녹여냈다. 우산은 기존의 라이브 카페라는 정체성을 넘어 진주에서 ‘독립된 음악’을 하는 사람들, 즉 자기 노래와 이야기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관객 수가 많은 것이 꼭 중요한 일인가?”

첫 음원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나왔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고 준우 씨는 회상한다. 그때만 해도 밴드로서 라이브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후 밴드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도 준우 씨에게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일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부산에서도 불러주고 거제에서도 불러주고 대구에서도 불러주는, 이제 영남권에서는 나름 인디 밴드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위치가 되었는데 왜 아직도 진주에서 음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나 생각해 봤어요. 관객이 서울만큼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천만 서울과 35만 진주. 음악인의 숫자뿐만 아니라 관객 수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진주에서 열린 공연의 관객 수가 50명이 아닌 5명이더라도 인구수에 비례해 생각했을 때 결코 적은 수의 관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고민에 준우 씨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관객이 5명이더라도 그들이 기분 좋게 떠났다면 그 공연은 의미가 있는 것일 텐데 왜 나는 50명 앞에서 하고 싶어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내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더라고요. 나중엔 이런 질문도 했어요. ‘관객 수가 많은 것이 꼭 중요한 일인가?’”

많은 관객들, 그리고 그 앞에서 멋있어 보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준우 씨의 진정성 속에 있었다. “적더라도 계속해서 불러주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음악을 하며 즐거워하는 과정과 그들을 위해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을 해보자.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 번도 자작곡을 발표하지 못했던 사람이 여기서 처음 음원을 내고 무대에 서요."

스테이지 우산에는 그냥 손님으로 방문했다가, 한 곡 해보라는 말에 이끌려 노래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방 안에서 만든 노래가 스테이지 우산을 거치며 음원이 되고 무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준우 씨는 이런 과정을 함께하며 같이 성장한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김도형 씨 같은 경우엔 처음에는 관객으로 왔어요. 기타도 못 치고 노래도 못 한다고 했죠. 그런데 한 곡 해보라고 하니까 생각보다 잘해서, 조금씩 끌어내다 보니 ‘여성의 재창조’라는 싱글 앨범도 발표하게 됐어요.” 스테이지 우산의 SNS에는 스테이지 우산을 거쳐 간 사람들의 앨범 발매 홍보 글이 가득하다.

우산에는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 다양한 관심사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가끔씩은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협업하게 되기도 한다. 준우 씨가 관객들부터 프로 음악인까지 두루 가깝게 지내며 무대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서로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음악을 전공하고 업으로 하는 분들은 사실 우리와는 결이 달라요. 우리는 돈보다 재미와 의미에 가치를 두는 편이잖아요. 사실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인데 공연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걸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 주고 협업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테이지 우산은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을 넘어, 지역 음악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모든 음악인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대와 연결의 기회다.

"혼자 노래하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지방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부산이나 대구 정도를 빼고는 사실상 수도권, 서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요. 같이 음악 이야기를 하고, 공연하고,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요. 우산이 조금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스테이지 우산은 진주라는 좁은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유대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이다.

스테이지 우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멋들어지고 예쁘게 잘 꾸며진 부류의 것들은 아니다. 대부분 통기타 하나와 자기 목소리로만 노래한다. 준우 씨의 표현에 따르면 굉장히 ‘올드’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준우 씨는 말한다. 올드하지만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내는 스테이지 우산에서 사람들은 다른 손님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며, 예기치 못한 사람과 음악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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