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속도
수습편집위원 오현지, 수습편집위원 한소윤
하루에 먹은 세 끼는 그대로 몸에 남는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뒤였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생활은 단순했다.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학교 자습이 끝나면 학원에 가는 비슷한 하루. 학생이라면 잠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공부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6년 내내 들었다. 매일 숨 가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인스턴트 식품을 습관처럼 먹었다. 일과가 다 끝난 시간에 야식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이 ‘가속노화’ 생활을 했을 것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멈춰서 밥을 먹을 수 없다. 하루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면 손에 잡히는 것은 자극적인 배달 음식이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뿐이다. 사실 상대적으로 저속의 일상을 살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통학을 하다 보니 일주일 중 삼사일은 밖에서 거의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집에 돌아가서, 혹은 알바하러 가기 전에 간단히 밥을 챙겨 먹을 때도 그동안 ‘맛있다’고 여겨온 음식을 곧잘 먹었다. 한번 자리 잡은 가속의 식습관이 관성처럼 계속 남았다. 그렇기에 당장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일과를 수행하기 벅찬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저속’ 버튼을 누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저속노화라는 말을 만났다. 하루에 먹는 세 끼에 대한 가속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그러나 ‘더 빨리 늙지 않기 위해 저속할 것’이라니. 저속노화는 식습관과 같은 생활 환경을 바꾸어 가속화된 노화의 과정을 다시 늦춰보자는 취지로 나온 신생어다. 작년 4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X/트위터에 ‘저속노화’라는 문구를 달아 식단 사진을 올린 뒤로, 저속노화는 MZ세대 혹은 2030에게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틱톡과 유튜브에 대량의 빨간 음식을 입속에 잔뜩 욱여넣는 영상들이 횡행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X/트위터에서는 잡곡밥과 렌틸콩, 두유 같은 슴슴한 음식 인증 사진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희원이 관리자로 직접 운영하는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는 매일 간단하게 맛있는 저속노화 음식 레시피가 공유된다.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 작년 8월 기준 커뮤니티에는 약 22만 6,000명의 회원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맛집의 화려한 메뉴가 아니더라도 커뮤니티에 사람들은 과일과 단호박 등 자신만의 식단을 사진으로 남긴다. 초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 등을 섭취할 때는 ‘가속노화’ 정식을 먹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속노화’는 이제 일종의 밈처럼 자리 잡았다.
저속노화는 언뜻 안티에이징과 동의어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웰에이징(well-aging)이다. 쉽게 말해 자연스러운 늙어감을 인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위한 것이다. 피부도 생체 나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꼭 관련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적 측면에서 노안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걸린 노쇠 기간을 보다 건강하게 건너기 위한 고민에 가깝다. 이른바 영원한 젊음이 아니라, 멋진 노인 되기 프로젝트다. 이전보다 길어진 수명을 어떻게 무사히 살아낼 수 있을까. 노년이 되어도 입원을 반복하거나 요양원 건물을 배회하는 대신, 자립적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늙어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늙음이 담보된 일상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열량·저영양 음식으로 가득하다. 식사 시간을 여가 시간처럼 보고 식대를 지급하지 않아 논란이었던 사건도 허다했고, 학업과 노동, 대중교통 이용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열량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간편식은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더 빠르고 즉각적인 자극을 얻을 수 있는 배달 음식과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가장 손쉬운 스트레스 배출구가 되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이 위험한 습관들은 청년 세대의 익숙한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늙음이 담보된 일상이다. 청년 세대의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급속도로 노화하기 시작했다. 2020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의 이삼십대는 중장년의 병으로 여겨온 성인병을 10~20년 빨리 겪고 있다. 2030 당뇨병 진료 환자는 10년 전에 비해 74% 증가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환자 역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대로 간다면 실제 나이보다 더 늙은 몸으로 더 길어진 노년을 보내게 된다는 경고가 지난 몇 년간 의학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가공식품이 거둔 경이로운 성공은 모든 면에서 드러나는 빠른 속도가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무엇보다 가공식품은 소비자 손에 들어오고 나서도 속도가 두드러진다. 가공식품은 빨리 개봉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빨리 데울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입안에 들어가면 뇌도 빨리 자극한다.
(음식 중독, 2장 중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중)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건강한 음식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무작정 실천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액상과당, 탄산음료, 과자, 마라탕, 떡볶이 같은 고열량, 저영양의 간편 음식은 손 닿는 곳에 있다. 반면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설탕과 같은 단순당, 백미와 같은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 단백질을 지양하면서 푸른잎채소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 베리류 등의 섭취를 지향하는 식단은 저속노화 트렌드 이전에도 권고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실천에 옮기기에는 의지의 차원에서도,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한 번 자극적인 맛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몸은 계속해서 똑같은 선택지를 찾게 된다. 충족되지 않고 계속해서 더 강력한 자극을 요구하는 악순환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음식 중독>에서 지적했듯이 더 많은 가공식품을 더 쉽게 선택하게 만든 기업과, 장시간 노동 사이에서 더 빠른 자극만 갈구하도록 만든 가속화된 사회에서, 그동안 개인에게 ‘가속’의 선택지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최근 출시된 편의점 간편 도시락을 비롯해 저당에 초점을 맞춘 제품은 저속노화 트렌드 이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포케나 샐러드 가게를 비롯한 외식 메뉴 중에서도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는 메뉴가 적지 않다. 그러나 1만 원이 넘는 외식을 매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장기적인 지속을 위해서는 결국 대량의 식재료를 미리 사두고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4인 가구 기준으로 굴러가는 살림을 좁은 원룸의 1인 가구가 감내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구석이 많다. 식재료가 다 있어도 요리와 설거지 시간 역시 확보되어야 한다. 시간과 체력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면 저속노화 실천은 먼 세상 이야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온 세상이 가속을 장려하고 추구하는 세태 속에서 식사만 저속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가속의 사회에서 저속노화는 가능한 것일까? 그나마 먹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람들에게, 맛없는 걸 먹으며 오래오래 사느니 맛있게 먹고 일찍 죽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이들에게, 다 같이 저속노화하자는 말은 언뜻 듣기에 공허하고 교과서적인 언술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입문자에게 저속노화는 무작정 시작하기에 어려운 구석도 분명 있어 보인다.
“점심으로 버거킹 가속노화 정식 먹었는데 트위터 저속노화쌤을 생각하면서 감자튀김을 코올슬로로 바꾸고 제로음료 선택했다. 버거 먹기전에 코올슬로 먼저 먹었어. 좀 잘했지.” (https://x.com/spritofzishahu/status/1805082842428477568)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속노화 실천은 다이어트처럼 끈질긴 의지와 고통을 요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제 속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생활 방식이라는 점이다.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늙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흡입하는 것을 멈추고 가속의 일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식습관은 단숨에 바꾸기 어렵다. 그렇기에 정희원 교수는 처음부터 너무 본격적으로 저속노화를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이미 너무 많은 가속노화 음식에 둘러싸여 있는 만큼, 불건강한 음식을 이전보다 ‘덜’ 먹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하는 정도의 시작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초가공식품을 피하고 액체로 된 칼로리 음료를 멀리하는 ‘첫걸음’부터 떼어 보라고 정희원 교수는 말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종종 시간에 쫓겨 밥을 먹고 군것질과 카페인을 달고 다니며 혼자 요리해 세 끼를 챙겨 먹기가 까마득하게 어려운 일로 느껴지는 ‘가속 학기’ 속 대학생은 어떻게 저속노화할 수 있을까? 정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학기가 한창이던 지난 11월, 직접 일주일 동안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해 봤다.
저속노화의 일주일
우선 체험을 위해 밥알을 바꿨다. 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밥과 반찬을 따로 먹지 않더라도 커뮤니티에는 아보카도 참치 덮밥이나 순두부 카레, 낫토 계란밥처럼 밥을 활용한 다양한 저속노화 식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희원 교수가 개발한 ‘한국형 마인드 식사법’에서는 렌틸콩, 귀리와 백미를 4:4:2 비율로 혼합해서 먹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귀리와 백미는 집에 늘 있는 곡물이었기에 렌틸콩이 필요했다. 렌틸콩을 시중에서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세척된 제품이라고 해도 렌틸콩을 소분해서 일일이 삶거나 오븐에 굽는 일은 품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에어프라이기에 구워보니 시간이 단축되기는 했어도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다행히 시중에 나와 있는 저속노화밥 제품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햇반처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했다. 가격대는 평소에 먹던 햇반보다는 2배가량 비싼 3,980원이었다. 자취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오로지 ‘밥’을 위해 식비 지출을 한 적은 없었던 터라 가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맛은 나름 괜찮았다. 잡곡으로만 구성된 제품은 건강과 맛은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옥수수나 페퍼도 들어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달달해 먹기가 수월했다. 집에서 밥을 먹게 될 때도 밥솥에서 밥을 푸는 게 아니라 저속노화밥을 돌려먹을 정도로 손이 갔다. 따뜻한 저속노화밥 위에 루콜라나 양상추 같은 재료를 사서 올려 먹기도 했다. 이렇게 하니 특별히 가스레인지 앞에서 불을 쓰거나 도마에 대고 칼질할 일도 없어서 편리했다.
채소에 더해 과일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과일은 최대한 혈당을 올리지 않게 식후보다는 식전에 먹었다. 샤인머스캣이나 파인애플처럼 새콤한 과즙을 좋아했지만, GI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알려진 체리나 블루베리 등 베리류를 구매했다. 과일을 락앤락 통에 넣어 들고 다니기도 했다. 과일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다른 강의실로 이동하는 사이 건물마다 있는 편의점에서 사 먹었던 초콜릿이나 젤리의 훌륭한 대체재가 되어 주었다.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저속’에 가까운 메뉴들은 몇 가지밖에 되지 않았기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이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밥이나 반찬에 더해 한 움큼의 양에 만 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과일 가격은 부담이었고, 일주일간의 체험을 넘어 지속적으로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었다.
외식을 할 때는 커뮤니티를 참고해서 고른 메뉴들인 솥밥이나 생선구이, 샤부샤부, 보쌈 등을 먹었다. 이전까지는 상대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에 맞추어 먹는 편이었다면, 저속노화 식사법을 실천하는 동안에는 위 선택지들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단체 회식 자리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피자나 치킨처럼 고속 노화를 불러오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저속노화’ 개념을 설명하기가 번거로워 다이어트 중이라고 둘러댄 적도 있었다. 이런 제약을 마주한 다음부터는 약속을 잡기보다 무엇을 먹을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혼밥’을 자주 하게 되었다. 특히 일인분 형태로 주문할 수 있는 포케나 샌드위치, 샐러드를 주로 먹었다. 이곳들은 정해진 레시피가 있어 일정 수준의 맛을 보장하는 동시에 곡물밥과 케일 등의 채소에 스테이크, 새우, 계란 등 다양한 토핑들을 추가해 먹을 수 있어 확실히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에 비해 조합들이 다채로웠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합이 있는 만큼 가격대는 만원 중후반대로 제법 비싸서 식비가 허락하는 선에서 먹어야 했다.
저속노화의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매일 먹는 세 끼의 무게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체험기가 끝나고 나서야 지난 일주일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식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밥을 먹을 때면 지금 뭐가 먹고 싶은지, 그동안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느껴왔는지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게 저속노화 음식인지를 하나 더 고려해야 했다. 영양사가 된 것처럼 다음은 뭘 먹을지 내일 약속에서는 뭘 먹을지 이 메뉴는 괜찮은지를 고민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낯선 효능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동안 빠른 자극에만 쏟던 에너지를 밥에 돌리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제 속도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전부터 먹어왔던 식단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많은 음식을 사놓기보다 자신의 입맛을 먼저 파악하기. 저속노화 커뮤니티를 수없이 들어가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처럼 기존의 식사 취향에서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뺄지를 생각해 보니 조금 수월해졌다. 사실 그동안은 그다지 문제라 여기지 않았던 일상의 부분이기도 했다. 짧은 체험기가 남긴 가장 큰 수확은 정확히 어떤 습관이 쌓이고 쌓여서 몸을 더 빠르게 늙게 했는지 자각하고 파악하는 과정 자체였다. 또한 안 먹던 음식을 일주일 내내 먹거나 초콜릿과 액상과당을 갑자기 끊기보다 대체재를 조금씩 찾아 나서며 현실적인 실천의 선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기간의 실천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체험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1인 단위의 살림을 해봤다.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일주일 동안 먹을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했다. 바쁜 날에는 부모님께 도시락 준비를 부탁하기도 했고 가족과 다 함께 먹는 식사로 한 끼를 해결한 적도 많았지만, 체험기를 하는 내내 기준이 되었던 것은 1인 가구의 살림이었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다음 끼니를 생각해서 장을 보는 일, 외식을 생각하다가도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재료의 유통기한을 생각하는 일에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정신없는 시험기간이었으면 일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주일 동안 저속노화 식단에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통학하면서 먹는 점심 외에는 거의 본가에서 밥을 먹었기에 부담 없이 저속노화 식단에 적응하기 위해 햇반부터 과일, 포케와 외식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예산의 장벽에 크게 부딪힌 적은 없었다. 외식을 하며 먹었던 저속노화 식사 역시 기숙사에 살거나 자취를 했더라면 부담이 되는 선택지였다. 만원 중반대의 식사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일주일에 21만원, 한 달에 84만원이 든다. 8,000원대의 식사를 밖에서 먹으려면 가장 단순한 구성으로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을 수밖에 없다.
가속의 일상에서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막막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꽤 많은 충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루의 속도를 줄일 수 없다면 마음껏 속도를 줄이며 부딪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저속노화라는 멋진 노인 되기 프로젝트가 누구에게나 가능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줄어들며 충격을 상쇄해 줄 완충재가 필요하다. 편의점 매대에 있는 저당 도시락이나 쉽고 저렴한 저속노화 레시피가 공유되는 커뮤니티, 1인 가구의 살림 노동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처럼 든든한 완충재가 주변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 같이 저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