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장손〉, 오정민 감독을 만나다

학내_동문 인터뷰

by 성균지

부편집장 최가경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 익숙한 잔소리와 어색한 웃음, 괜히 한 번 꺼내보는 우스운 추억 이야기들. 빈틈을 아슬아슬하게 채운 소음들이 한 꺼풀 벗겨지고 깨어지고 나면 그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지난 가을 개봉한 오정민 감독의 <장손>은 ‘가족’ 하면 생각나는 무겁고 끈적거리는 찰흙을 죄다 모아 빚어놓은 것 같은 영화다. 제사를 지내러 모인 여름과 장례식의 가을, 그리고 49재를 위해 모인 겨울까지 두부 공장과 고택을 오가며 펼쳐지는 대가족의 희로애락이 세 계절을 거치며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손에는 쥐어지는 것은 저마다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르는 가족 석고상이다. 고였던 물이 빠지면 바닥의 잔해가 드러나는 것처럼 삶의 가장 밑바닥에 단단히 눌어붙은 가족이라는 돌덩이를 영화는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환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 속 대가족은 이 무거운 돌덩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영화 <장손>의 감독 오정민 동문(09학번, 국어국문학과)을 만나보았다.


계절 그리고 가족

영화 <장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장손>은 어떤 영화인가요?

<장손>은 3차원의 조각 같은 영화예요. 제각기 다른 세대 성별 계급들로 구성된 대가족을 들여다보는 영화고, 가족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동시에 충돌시키는 영화죠. 영화 <장손>을 찍으면서 고민했던 건 어떻게 하면 2차원의 회화가 아니라 3차원의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였어요. 조각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조금씩 전부 다르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반응도 되게 다양했어요. 장손의 무게에 집중해서 가부장제 내에서 남성이 겪는 힘듦에 공감하는 반응도 있고 아리 에스터의 공포영화 같다는 유머 섞인 젊은 여성 관객들의 반응도 있었죠. 중년 남성에게는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였고 동시에 중년 여성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핍박받고 살았는지 곱씹게 하는 영화라는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집안의 맏딸 혜숙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동일시해서 보는 그런 모습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장손>이 이렇다고 딱 규정되기보다는 각자 생각이 다양하게 충돌하는 영화, 똑같은 장면을 봤지만 다르게 해석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손>에는 뒷모습이 많이 나와요. 오래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되는 롱숏 장면 역시 적재적소에 있는데요. 영화의 클라이맥스 역시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롱숏, 그리고 뒷모습이 맡습니다. 이러한 뒷모습과 롱숏 장면을 특별히 많이 쓴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업 영화는 점점 CG가 범람하는 세트 위주의 영화로 변해가고 있잖아요. 상업 영화 씬의 이 흐름 속에서 흠모했던 영화들, 클래식한 영화들 그리고 가장 영화적인 영화들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장손>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면 개인의 미시사, 한 가족의 미시사에서 대한민국 현대사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특히 있었죠. 그래서 한 캐릭터가 독립된 인물로서 구체화되는 대신 그 캐릭터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확대되고 확장되는 방식을 택했어요. 영화의 승필, 태근, 해숙, 그리고 성진이 전부 그 세대 전반의 사람들로 확장되려면 구체성을 가진 얼굴이 아니라 인물이 가지는 뒷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물론 감성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상업 영화니까요. 다만 관객과 시선을 동일시시키고 그 뒷모습에 관객 스스로의 모습을 대입시킬 수 있도록 비워두고 싶었어요. 롱숏 또한 어떠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의 환기를 위해 사용했죠. 사람들이 동요된 감정보다는 오히려 좀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성으로 이 영화를 즐겨주기를 바랐습니다.


관객은 집안의 장손이자 고향을 ‘떠난 사람’인 성진의 시점에서 대가족의 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영화 내내 하나의 축 역할을 하는 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성진이라는 인물이 되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요. 집안의 어떤 미래를 책임지고 가족들의 어떤 기대를 받는 인물이지만 어쨌거나 가족과는 떨어져서 유리된 인물이잖아요. 그리고 집안의 사정에 대해서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집안의 문제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죠. 그게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영화라는 건 어쨌거나 굉장히 함축적이어야 하고 시적이어야 하니까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고려해서 성진을 ‘떠난 사람’으로 설정했어요. 단순하게 얘기하면 장손의 로그라인은 ‘성진이 계절마다 세 번 고향집에 방문해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본다’거든요. 세 계절 동안의 수많은 날을 다 담는 것보다는 계절마다 하루이틀을 되게 임팩트 있게 담아내기 위한 선택이었죠.


‘성진’이라는 축 외에도 영화 <장손>의 또 하나의 중심인 계절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2016년 이미 초고가 나와 있었던 만큼 <장손>은 시나리오 상의 변화도 많은 영화였잖아요. 초고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장손과 계절, 두 중심축으로 모이게 된 것인가요?

원래 저는 인물 영화를 했었고 주로 서사 영화를 했었어요. <장손>을 통해 만들고자 한 것은 제가 했던 영화들의 반발이었죠. 초고 작업 당시에는 조금 더 시적이고 조금 더 풍경 위주의 영화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각 인물마다 성진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처럼 고정점을 주고 다양한 인물에게 고정시점을 부여하고 싶었죠. 그렇게 시적이고 옴니버스적인 구성으로 영화를 찍고자 했을 때의 문제점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예요. 대중적으로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지점도 있었고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굉장히 어렵죠.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를 찍을 공력이 아직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할 수는 없는 작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초고를 쓸 때 정했던 여러 방향성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에 선택과 집중을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 <장손>이라는 영화가 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 영화에 가장 필요한 지점을 찾다 보니 계절이 중심이 되었죠. 그렇게 가족들이 쓰러져가는 모습들을 성진이 계절마다 며칠씩 본다는 형식을 가지고 영화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장손>이라는 영화가 집중한 지점이 또 하나 있다면 윗세대에 대한 이해를 꼽고 싶어요. 애증의 윗세대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됐고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영화 <장손> 역시 그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하셨는데요. 이해의 단계까지 오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결국엔 이해라는 건 ‘되다 안 되다’의 개념이 아니라 ‘하다 안 하다’의 문제 같아요. 마음을 먹느냐 안 먹느냐의 차이인 거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저는 굉장히 윗세대에 대한 반감이 심했고 그들을 이해하기도 싫었어요. 지금은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그 자체로 존중하고 싶어요. 인간적인 성숙이나 어떤 특별한 순간이 이해를 하게 해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제는 이해하고 싶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싶다는 태도가 그렇게 만든 거죠.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과를 인정해야 내가 그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나 또한 공과가 있는 세대와 사람이 될 테고 앞서 말했듯이 모든 인간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다 있잖아요.

물론 무조건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죠. 그렇지만 그들 또한 시대에 휩쓸려온 인물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김진경 시인이 썼던 시집 제목인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요. 그게 영화에 담겼죠. 특히 할아버지 세대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를 한 삶으로 살아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영화 <장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장손>은 유교를 가부장제와 함께 해체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그 거리를 재조정하려는 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요. 영화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들고 싶었던 것도 가장 한국적인 영화, 전통문화를 지키는 공간으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유교와 정면으로 대면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유교를 부셔야 한다’ 혹은 ‘가부장제를 타파해야 한다’ 그런 담론조차 되게 고리타분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고 잘못된 것들은 부셔야 한다는 생각은 변치 않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내세워버리면 굉장히 프로파간다 같은 영화가 될 위험이 있잖아요. 굳이 대자보가 아닌 몇억짜리 영화, 예술 상품을 만들면서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단순한 프로파간다 명제만 말할 필요는 없죠. 이야기로는 부조리를 얘기할 뿐이지 무엇이 조리이냐를 얘기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장손> 역시 마찬가지에요. 유교를 해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는 대신 선택한 것이 유교와 대면하는 영화였어요. 이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가족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 가족에 있는 유교 가부장제와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걸 통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확장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저는 메시지보다는 질문에 던지는 쪽에 가까워요. 시간 흐른다는 정도 혹은 우리는 누군가 죽고 누군가 태어난다 정도를 제외하면,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감히 뭐뭐 해야 한다라고 영화로 말하는 거는 거짓말 같은거죠. 대신에 제가 본 있는 그대로를 영화로 만들려고 해요. 그걸 부순 다음 무엇을 세울지는 관객의 몫이니까요.

영화에 대한 마지막 질문으로 차기작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영화로 사람을 위로하거나 세상을 바꾸는 대신 운명을 마주하는 인간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고 싶다 하셨는데 준비하고 계신 판타지 영화 역시 그러한 진동 포착에 집중한 작품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어쨌거나 큰 이야기보다는 작은 지점들을 담고 싶어요. 거대 담론을 얘기하기보다는 개인의 트라우마나 아니면 다른 어떤 모습이든지 담고 싶죠. 미시사만 잘 다루면 거시사까지 확장될 수 있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다음 작품은 상업 영화 제도권 안에서 만들어질 영화기 때문에 조금 더 상업적이고 또 장르적인 지점이 있겠죠. <장손>에서 거시사를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듯이요. 하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하기 싫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믿고 싶은 걸 쓰는 게 저는 신파라고 생각하거든요. 믿고 싶은 걸 쓰는 대신 사람들이 믿기 싫어하는 것들을 재미있게 보여줘서 웃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자 하는 어떤 짓궂은 욕망도 있는 거죠. 무엇보다 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크게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야기를 적어 내리기 위해

성균관대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영상학과를 복수전공 하셨습니다. 국문학도로서의 시간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저는 주로 천정환 교수님 문학 수업처럼 현대소설 과목 위주로 들었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글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나요. 발제문뿐만 아니라 쪽글도 매주 쓰고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 작가로 사는 지금보다 그때 글을 더 자주 썼던 것 같은데요. 글을 쓰려면 또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그게 좋았어요. 일주일에 기본 한두 편씩은 무조건 글을 읽었으니까요. 비평을 공부하고 싶어서 들었던 황호덕 교수님 수업도 기억에 남아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2학년들은 듣기 힘든 수업이었죠. 그래서 되게 어렵고 그만큼 자극을 많이 받았던 수업이었어요. 특히 문학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금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계속 고민하고 의심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사회를 보는 시선이나 주목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서 많이 배워서 좋았죠. 그래서 조금 나이브하게 문학을 좋아했던 사람에서 조금 더 시니컬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게 국문과에서의 시간이었어요. 조금 이죽거리고 의심하고 시비 거는 그런 시선들은 어쩌면 문학도로서 공부했던 그런 태도들도 담기지 않았을까요. 장손을 보면서 근대문학을 떠올려 주시는 부분에도 저의 이런 무의식이나 태도가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인터뷰에서 <화양연화>의 양조위의 눈빛을 보고 영화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눈빛이 내가 쓸 수 있는 문장 하나보다 더 신비롭다는 생각에 배우들과 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 첫걸음이 연극 동아리였던 건가요?

성균극회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처음 동아리에 가서 배우라는 일, 연기라는 걸 해본다는 사실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저는 영화에 대해 배우게 됐던 계기가 배우였거든요. 배우를 더 알고 싶어서 들어갔던 거죠. 전문적이지는 않아도 연극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끼리 함께 무엇을 만들어 나간다는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예요. 그렇게 거의 다 각자의 길을 가지만 자신의 삶에 어떤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졸업 영화를 찍을 때 주로 인물 영화를 찍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를 막 만들기 시작한 시기에 왜 인물 영화를 주로 찍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영화들에 항상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인물 영화는 캐릭터 중심으로 전개되고 인물의 심리를 주로 다루는데 그게 제 취향이었죠. 그러다 보니 주로 공간이나 배경보다는 인물 중심의 영화를 찍었어요. <장손>을 찍을 때도 그렇게 미디엄 샷 위주의 인물 영화를 찍으며 쌓아온 취향 덕분에 롱샷을 많이 썼음에도 인물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더라고요. 또 하나 <장손>에서 새롭게 집중한 게 있다면 빛입니다. 기존에 만들던 영화가 인물의 연기 중심이었다면 조금 더 공간을 존중하고 빛을 존중하고 시간을 잡는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했던 게 그 전과 달라진 점이죠.

영화 <장손>을 첫 장편으로 만들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에 여섯 번의 도전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장손>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각자의 분기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동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것 같고요. 그런 책임감 있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 그 말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죠. 저 또한 아직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20대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고 읽고 사랑하고 여행을 더 다닐 것 같아요. 되게 많은 경험을 하는 게 도움이 되었죠.

사실 저는 꼭 모두가 창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가 되었든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게 맞아야 하는 거잖아요. 하고 싶다는 마음 말고도 그렇게 할 제반 사항이 다 깔려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만약에 창작이라는 걸 하고 싶다면, 용기 있게 작품을 계속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112호] 이게 바로 우리의 '농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