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 증발해 버린 저널리즘

커버스토리

by 성균지

편집위원 나유정 수습편집위원 김가영




권력에 취약한 언론


2025년 한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작년에 이어 또다시 60위권을 기록했다. 역대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 중 5번째로 낮은 순위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다시 하향세에 돌입한 것이다. 세계언론자유지수는 언론 자율성, 다양한 저널리즘 방식에 대한 수용 수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지지 수준, 경제·사회·정치적 외부 압력 등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 구조는 자유,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공영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를 통해 운영되는데, 방통위원 5명 중 3명은 대통령과 여당이 임명한다. KBS는 사장, 부사장, 감사 등 11명의 이사진을 방통위에서 추천받지만,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반면 MBC는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를 대주주로 둔 공영방송사로, KBS와 달리 방통위가 임명한 방문진 이사진 9명과 감사 1명의 관리·감독, 사장 임면 권한 하에 운영된다. 방통위의 존립 목적은 본래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적절한 규제를 통해 이용자를 보호함으로써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부는 인사 임명이라는 권력을 통해 합법적으로 방송과 언론에 간섭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MBC 민영화를 시도했다. 당시 정부가 정권 비판 보도에 대한 보복 심의, 이사진과 사장의 교체를 단행하자 이에 반발한 MBC 노조가 170일 동안 파업을 이어갔다. 약 10년 후 집권한 윤석열 정부 또한 KBS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통위원들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했고, 야권이 임명한 방문진 인사를 해임했으며 정권에 불리한 보도에 대한 보복성 규제를 단행했다.


언론은 흔히 삼권 분립이라는 세 가지 권력의 축에 준하는 권위와 중요성을 가진다고 하여 ‘제4 권력’이라 비유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이 과연 그 정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수치와 역사가 증명하듯, 우리 언론은 유독 권력에 취약한 모습이 보인다. 대한민국 언론의 지울 수 없는 치부와 그 잔상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과연 대한민국 언론은 어떠한 역사를 거쳐 이곳에 도달했는지, 최근 우리 사회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내란 국면을 거치며 언론은 제4 권력의 임무를 다하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젠 묻고 답해야 할 때이다.



1. 대한민국 언론의 족적: 일제의 선전망부터 자본의 대변인까지


1919년 3월, 조선인들의 격렬한 투쟁에 당황한 일본은 심화하는 식민지 수탈을 미화하고 들끓는 민심과 저항 의식을 식민체제 내로 유도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따라서 일제는 표면적으로 조선인 차별을 줄이고 헌병 경찰제를 폐지하여 보통 경찰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조선어 신문 창간을 허용하는 유화 정책을 도입한다. 이에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었다. 두 신문사는 창간 이후 단순한 언론 기능을 넘어서 관계 진출과 학문의 길이 막혀있던 조선 청년들의 근대 문화예술‧학술‧정치 분야에 유일한 공론장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일제 부역의 역사

그러나 문화통치의 실상이 그러하듯, 이들은 끝끝내 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하였다. 조선・동아는 1930년대에 이르러서부터 본격적으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인들을 일본 식민 전쟁의 희생양으로 내몰고 일본의 노예가 되라 선동하는 데에 주력했다.

1939년 2월 11일, 조선일보 ‘기원절’
“일본 정신은 일본 독특한 국민성, 국민 기질에 의한 것으로서 타의 모방 우(又)는 추월(追越)을 불허하는 바이니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만지(日滿支) 협조 등은 다 서양류의 식민지 사상과 다르다. 학제개혁과 지원병제도의 실시는 그 현현(顯現)의 일례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기원절(紀元節)’, 1939. 2. 11.] (김동현 외 11명, 『조선 동아 100년을 말한다: 조선 동아 100년, 최악 보도 100선』, 자유언론실천재단, 2020, 66쪽)
1939년 4월 29일, 동아일보 ‘봉축천장가절
“금일은 천장의 가절이다. 천황 폐하께옵서 38회의 어탄신일을 맞이하옵시는 날이니··· 황공하옵께도 군・정의 어친재(御親裁)에 신금(宸襟)을 번거롭게 하옵시고 전선의 장병의 노고를 휼(恤)하옵시는 성은에 공구감읍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봉축천장가절(奉祝天長佳節)’, 1939. 4. 29.] (위의 책, 53쪽)



당시 동아일보 김성수 사장은 중일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시국 강연’ 연사로 활동하며 일제의 전시 동원 정책에 적극 협조했다. 또한 그는 일제가 조선인을 총체적으로 전시에 동원하고 억압하기 위해 꾸린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와 총무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 또한 이 단체에서 참사(參事)로 선출되었다. 두 신문 사주는 일제 전쟁 동원에 협조하기 위한 단체를 스스로 조직하기도 하고 발기인(發起人)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40년 두 신문의 폐간은 일제를 향한 저항적 논조로 인한 강행이 아닌 철저한 협의와 보상에 의한 자발 행위에 가까웠다.

결국 김성수 사장과 방응모 사장의 친일반민족행위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면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권력의 힘으로 좌절되며 조선·동아와 같은 일제 부역 언론에 대한 숙청마저 실패한다.


독재자를 위한 언론

“5.16으로 불행한 군인을 자처하며 국정의 책임을 한 몸에 지님으로써 운명의 인(人)이 되었읍니다. 그리고 운명의 인(人)으로서 살아온 이 20년을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의 운명의 시대로 만들었읍니다. (중략) 고인의 서거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정이 깊고 착한 백성인가를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었읍니다.”
[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을 보내며’, 1979. 11. 3.](홍주환, 「[조동(朝東) 100년] ⑨ 전두환 찬양과 유착으로 '고속 성장'」, 『뉴스타파』, 2020. 3. 23., https://www.newstapa.org/article/jgo76)
사진3.jpg 1979년 11월 3일 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을 보내며’
1980년 8월 29일 동아일보,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전 대통령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념과 의지의 인물이라고 부른다. (중략)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성품으로는 도덕적인 엄격성을 빼놓을 수 없다. 육사 선후배 사이에서 "앞에 가면 떨리는 무서운 분"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직접 대면하면 부드러운 태도와 화술에 되레 놀란다고 한다."
[동아일보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1980. 8. 29.] (홍주환, 「[영화 '족벌' 포인트] 조선·동아 '누가누가 잘하나' ③ : 전두환 찬양」, 『뉴스타파』, 2021. 1. 4., https://film.newstapa.org/story_chodong100/1E2SspYjrG7Imb)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한반도에는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언론은 같은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과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지면에 제대로 실리지 못했고 모두 “폭도”, “불순분자”, “폭력 세력”으로 치부되었다. 시민들을 대변해 권력을 추궁해야 할 언론이 시민들의 목소리 대신 정권의 일방적인 목소리와 권력자를 향한 아부만을 지면에 담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내부에는 이와 같은 보도 논조에 반대하며 투쟁하던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중앙정보부와 국세청을 동원하여 지면 광고를 막으면서 압력을 가했고, 경영진과 언론사주들이 이에 동조해 당사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은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1980년 10월에 설치한 임시 입법 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위원을 지내기까지 했다. 권력을 비판・견제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언론사 사주가 노골적으로 신군부의 불법적인 국가 장악에 부역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처세술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동안 동아일보의 매출액은 전임 대비 3배 이상, 조선일보는 6배 이상 늘었다. 이때 모아들인 자본은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언론사 기업화’의 탄탄한 토대가 된다.


역사의 잔상

현대 한국 언론은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로 출발했고 오랜 시간 권력과 공생하여 자본과 권위를 쌓아 올렸다. 그들은 이를 통해 부동산을 사들이고 혼맥을 맺어 재벌가들과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러한 언론의 행보는 자체를 저널리즘 실현을 위한 공익 기관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체로 여긴다는 평가를 피해 갈 수 없다. 고로, 저널리즘이 아니라 자본과 이익을 좇는 기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 생태계에서 이들은 친일 청산과 기득권 해체와 같은 사회 개혁을 시도하는 정파에 필연적으로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언론 지형은 권력과 결탁하여 창출한 이윤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직후 거의 모든 언론사는 일심하여 윤석열을 비판했다.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는 내내 대부분의 언론은 계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 위헌적 계엄의 정치적·법적 책임져야 한다 [2024.12.05. 중앙일보 사설]), 대통령 입에서 "패악질" "원흉" "척결"... 극단적 표현 쏟아져 [2024.12.05. 조선일보 헤드라인]) 그러나 국민의힘은 정권 유지와 탄핵 방어를 위해 윤석열을 보호하는 것을 당론으로 삼았다. 이들은 내란 진압을 위한 야당의 진상 규명 요구를 단순한 정쟁에서 비롯된 공격인 양 응수하기 시작했고, 야당을 맥락 없이 공격하면서 프레임 전환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계엄을 비판하던 언론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윤석열을 비호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내는 뉴스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상당수의 언론이 국민의힘의 거짓 선동을 무시하지 못하고 다수 언론사의 보도 기조에 맞추어 그들의 발언을 확산시키는 데에 동조했다.



2. 여전히 내란 세력의 입이 되는 언론


지난 1월 14일 중앙일보는 <“민주당 점령군 행세 역풍"…여야 지지율차, 계엄 전보다 줄었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의 제목에는 ‘민주당 점령군 행세 역풍’에 인용인 듯 큰따옴표가 쳐져 있지만 사실 ‘점령군’이라는 단어는 기사 본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미 민주당이 정권 잡은 것처럼 하는 말에 황당했다”라고 말했다.”라는 내용과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중도층은 계엄 사태는 엄정히 처벌해야 하지만, 야당도 월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최근 민주당 행보에 반감이 쌓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라는 내용을 단번에 ‘점령군’으로 축약해, 마치 타인의 발언을 인용한 것인 양 가장한 셈이다. 기사에서의 ‘점령군’은 계엄 사태와 연결되어 독자가 마치 민주당과 윤 전 대통령의 행위가 같은 수준의 범법 행위로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이처럼 12.3 내란 사태에도 일부 언론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눈에 띌 정도로 권력에 편승했던 과거의 모습은 없지만, 권력과 자본에 합류하는 방식은 교묘하게 바뀌었다. 12월 3일, 계엄 당일에서 멀어질수록 언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 자체에 대해 비판하는 대신, 그가 ‘반국가 행위’를 행하고 있다고 가리킨 민주당에 책임을 돌리는 데 동조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 계속된 입법 행위를 계엄 명목으로 밝혔는데, 언론은 이를 대변해 주는 정치권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與 "민주당 '입법 쿠데타' 나라 뒤엎겠다는 것…폭주 멈추라[중앙일보]) 민주당 당시 이재명 당대표와 검찰 간의 법정 공방과 윤 전 대통령의 내란을 같은 사법 리스크로 간주하는 기사(김민전 “한남초 청년들 열정에 감동…’백골단’ 내가 명칭, 내가 전할 문제 아냐[아이뉴스])를 발행하는 등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에 의존했다. 사실 확인 없이 발언을 실어 거짓에 권위를 부여하되, 논란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다.


인용에 의존하는 이러한 ‘따옴표 저널리즘’이 바로 오늘날 언론의 ‘중립’이다. 내란이라는 국가의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도 양쪽의 목소리를 같은 농도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윤 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일부 여당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국민의힘이 혼란을 야기한 주체로 민주당을 꼬집으며 책임을 돌리면, 언론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논란을 직접 만들어냈다.


“민주당의 특전사령관 회유 논란 … 의원도 군인도 잘못한 일[매일경제]”
“민주당, 문형배·이미선 퇴임 앞두고 '임기 연장법' 발의 논란[한국경제]”
“민주당 ‘카톡 검열’ 발언 논란…與 “국민 입틀막 정치[동아일보]”
“‘공수처는 민주당 사병집단’…尹 체포과정 위법논란 제기한 與[중앙일보]”
“나경원 ‘이러니 부정선거 의심받아’… 선관위 비난[한겨레]”

“'尹 탄핵 공정성 논란'에…헌재 ‘헌법분쟁 만드는 게 국민 뜻은 아닐 것’[한국경제]”

“전병헌 "민주당, 입법 쿠데타 시작 … 이재명표 계엄"[뉴데일리]"


결국 이 관행은 점점 언론의 본질을 흐리고 언론보도의 책임 회피를 일상화했다. 일부 언론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일부 의원의 말을 통해 논란을 제기한 후 그 파급력은 고려하지 않고 언론으로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일념 아래 언론의 관점이나 내용에 대한 근거 없이 정보를 내보낸다. 또 해당 논란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기계적으로 배치하여 양쪽의 주장 모두 정당하며 그 내용이 주요하게 논의할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처럼 언론은 12.3 계엄을 두고 행정부의 내란에서 야당과 여당 간의 팽팽한 정권 싸움으로 시선을 옮겨 명백한 위법 지시를 ‘중립적으로’ 다루려 노력했다. 유수 언론사의 내부 윤리 교육이나 저널리즘 훈련 과정에서 채택된 <저널리즘 요소>의 저자,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저널리즘의 10가지 기본 원칙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들은 두 개념이 이미 왜곡되어 언론의 치우침이나 편향성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가 모든 사람의 뜻을 전하는 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10년 전, 미국의 건강보험 논쟁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언론은 모든 주장을 들어야 하고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중 일부는 명백히 허위이거나 속임수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한 문화 평론가 닐 게블러의 주장은 여전히 현재를 관통한다.


한편, 지난 4월 92개 언론시민단체가 함께 꾸린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민주주의 복원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대선 보도 원칙, 세부 준칙을 제안한다는 취지로 2025 대선 취재 보도 원칙을 발표했다. 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은 ‘저널리즘 세탁’을 막기 위한 원칙으로 헌정 질서를 파괴한 세력의 후보자에 대해 동등성의 원칙을 거부하며 후보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극우 담론, 음모론, 혐오 및 차별 발언을 재현하거나 확대해 2차 가해를 저지르지 않아야 하며 지난 내란 사태의 충격을 잊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환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도 한층 섬세한 보도 방침을 제안했다. ① 비판적 시각에 기반한 팩트체크 보도, ② 적절한 헤드라인의 기준, ③ 내외부의 간섭 및 압력에 대한 대응 등이 그 내용이다. 이 중에서 적절한 헤드라인의 기준, 즉 본문 전체가 아닌 제목이나 자막만을 보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헤드라인에도 어떤 주장의 근거 유무를 밝혀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의 따옴표 저널리즘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난 6월에 치러진 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시금 인용 대결이 시작되었다. 언론사별로 팩트체크팀을 꾸려 TV 토론 속 대선 후보의 발언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언론이 폭력적인 주장이나 근거 없는 논란에 불을 붙였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성폭력적 발언은 많은 매체에서 영상이 묵음 처리되거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지양했음에도 몇 언론사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러 차례 그대로 노출하였다. 또 이들은 지면 기사에도 가해 도구를 기사 헤드라인에 띄워 혐오를 재생산하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언론의 외형을 띤 채널이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이러한 기성 언론의 행보는 독자들이 ‘언론’이라는 집단의 기준을 판단하는데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저널리즘


대한민국 언론은 이들의 특수한 역사 속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 한 정치적 맥락과 완전히 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공정성을 추구하는 방법은 현재 언론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이 답은 바로 능동적인 ‘담론의 중재화’에 있다. 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정책위원은 앞서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하며 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끄는 ‘중재’처럼 어떤 주장을 그대로 보도할 게 아니라 그런 주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비판하고 중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 대한민국의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은 ‘따옴표 저널리즘’과 같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인의 말을 선별·분석·해설하는 데 있다. ‘언론의 객관성’이라는 단어는 중립과 공정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언론의 중립에 대한 강박은 저널리즘의 본령을 저버리고 특정 정파를 의도적으로 공격하려 하는 언론에 의해 악용되기 쉬우며, 오히려 언론이 민주주의 붕괴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즉, 객관과 중립은 철저히 진실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한국 언론들은 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계적 중립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도가 편향되어 있다는 사회적 비난은 피한다. 하지만 기계적 중립 보도는 누가 잘못을 했고,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가름을 해주지 못한다. 기계적인 중립 보도는 우리 언론들이 너무 소극적임을 보여준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따져 잘잘못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적극적인 보도 방식이 필요하다.” (동서대 이완수 교수 인터뷰 중)


아무리 저명한 저널리스트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치적 입장을 표현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것 또한 정당하지 않다. 언제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진실성이다. 독자는 언론이 다루는 정보가 얼마나 투명한지 온전한지를 점검해야 한다. 언론은 엄밀하고 철저한 취재 결과로 특정 결론에 도달했다면,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편, 기자는 시민을 대신해 권력에 “날카롭고, 공격적이고,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용감”(이완수 교수 인터뷰 인용)하게 질문을 던지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이완수 교수는 한국 기자들도 이제 권력에 대해 제대로 질문하고,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것이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며, 질문이 없으면 저널리즘도 없고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매체 시대로 들어서면서 다양한 신형 언론의 등장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일은 더 이상 기성 언론의 온전한 몫이 아니게 되었다. 비교적 자유롭고 독립적인 형식의 언론을 향해 뉴스 소비자들의 수요가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성 언론은 압도적인 규모와 취재 인력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뉴스에 대한 불신을 뉴스 내용의 질 향상으로 보완함으로써 언론의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


진정한 저널리즘의 실현을 위해선, 우선 우리 사회 공동체는 돈과 권력을 좇는 언론을 더 이상 용인하면 안 된다.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은 과거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이러한 어록을 남겼다. “무슨 희생을 해서라도 언론매체는 그냥 살아 있어야 됩니다.”. 저널리즘을 희생해서라도 언론매체는 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 당시 언론은 존재 유지를 위해 불의한 체제에 대해 비판하지 않으며 앞잡이 노릇을 했고, 저항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좌경 세력’으로 몰아가며 비난했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과거사 청산 작업을 재개하여 저널리즘은 절대 이해(利害)와 공존할 수 없다는 교훈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 어렵게 지켜낸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더 공고히 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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