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편집위원 오현지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기형도, 「안개」中
계엄 이전부터 계엄을 겪던 사람들이 있다. 사람 하나, 용주골 성노동자. 사람 둘, SPC 공장 노동자. 사람 셋, 쿠팡 배달 노동자. 사람 넷, 니토덴코 옵티칼 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이주 청년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으로 사람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미처 호명하지 못한 수많은 약자들. 단상 위에 선 시민이 규탄하던 ‘계엄’은 분명 윤석열이 12월 3일에 저지른 내란 행위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수많은 죽음을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닌 “사소한 사건”으로 속여온, 그러나 사실 모든 슬픔의 발원인 기형도 시 속의 ‘안개’–사회·구조적 억압에 대한 것이다. 혐오와 억압으로 삭막하게 변해가는 도시는 이들의 눈물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고 지나치게 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차별금지법 요구가 몇십 년간 이어져 왔음에도 사회는 듣지 않았고, 출근 시간에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거나 퀴어퍼레이드로 명동 일대를 꽉 채워 목소리를 키우면 ‘과격시위’니 ‘불법’이니 하며 왜곡하기 바빴다.
25년 4월 4일, 윤석열이 탄핵되었다. 12.3 계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나면 한국의 ‘내란’과 ‘계엄’은 끝난 걸까? 2025년 6월 10일, 탄핵이 선고되고 정권이 바뀌며 비상행동은 해산했지만, 이들이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듯 사회대개혁이 완수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차별받지 않는 사회, 시민이 주인인 사회,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이뤄내자는 광장의 구호는 탄핵 이후 어물쩍 흐릿해진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는 여전히 피투성이가 된 현수막이, 활동가 구속과 폭력진압이, 일하다 죽는 사람과 차별로 죽는 사람이 있다. 이 계엄이 끝나지 않는 한 광장도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포스트-계엄 시대, 이 글은 기록되지 않는 계엄과 기억되지 않는 광장의 잔상을 남기기 위해 쓰였다. 그 잔상들이 내게 남긴 크고 작은 변화들까지도. 계엄과 탄핵 선고와 조기 대선이 지나간 후의 광장, 그 시공간 위에 여전히 투쟁 중인 이들을 목격하고 증언하고자 세 차례 현장을 방문했다.
혜화역을 자주 드나들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외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하철역 바깥에는 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자리 잡고 있지만, 정작 역사 안쪽에는 장애인의 이동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위협적으로 늘어서 있다.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민푸름, 박초현, 이학인이 탈시설권리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사흘째. 4월 20일, 역번호 420번 혜화역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전국집중결의대회가 있었다.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가 일어난 2001년 4월 20일부터 장장 24회째다.
일정을 마치고 16시 즈음 혜화역에 도착해 승강장을 빠져나오자, 본대회 중인 마로니에공원으로 진입하기 전부터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경찰들이 일제히 방패를 들고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2번 출구 앞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입구를 막는 듯한 대여섯 명의 경찰들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3번 출구 쪽에도 경찰들이 대기 중이었다. 어떤 현장인지 잘 알지 못한다면 관심을 가져보기도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어질 듯한 위협감이었다. 무대에선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이 다른 활동가들의 반주를 따라 투쟁가 ‘T4’를 불렀고, ‘이랜드 노동조합’,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대충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하는 젠더아픔이’, ‘(내향인)’, ‘인문학 붐은 온다’ 따위의 연대깃발들이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국가는 우리 삶 외면하고 수많은 죽음을 방치하네
방 밖으로 시설 밖으로 나와 우리는 이제 살고 싶습니다
투쟁가 ‘T4’의 가사와 제목은 ‘T4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1939년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장애인 학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병자나 기형아를 절멸”해 “건강한 인간들로만 세계를 채우”겠다는 나치의 우생학은 나치를 단죄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장애인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이동권을 온갖 장애물로 앗아가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이나 다름없음을 “39년 T4사회 대한민국”이라는 가사가 여실히 보여준다.
본대회 후 농성 중인 혜화동성당 종탑과 서울대병원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무수한 깃발과 단란하고 느린 걸음들 사이 ‘권리를 보장하라’, ‘차별을 철폐하라’ 구호 뒤에 ‘투쟁’을 잇달아 붙이는 대열에 소속 없이 끼어있었다. ‘진국 동지’(?)로 소개된 박경인 활동가는 말했다. “저는 시설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사는 삶이 너무 좋습니다.” 발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혜화동성당 정문에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대치가 벌어졌다. 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채증을 시작하겠다는 공지와 함께 무수한 카메라가 시위대를 향했다. 행진의 선두에 선 1호 트럭 주변은 깃발로 카메라를 가리고 현수막을 사수하려 뻗은 손들, 앞뒤로 주저앉아 연대의 목소리를 외치는 시민들로 혼잡했다. 모두가 함께 걷던 평화로운 행진이 순식간에 험악해진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시민 권리와 안전의 ‘수호’가 아니라, ‘잘못된 삶’들을 잘못된 삶이라는 틀 안에 영원히 가두려는 공권력의 구체적인 실체였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사지를 붙잡아 침대에 묶어놓”지 말라며 투쟁하자, 국가는 경찰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 정말로 장애인의 사지를 “‘붙잡고’, ‘입을 막고’, ‘눈을 가린다’”.[1][2]
농성 중인 혜화동성당 벽면, ‘천주교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가 적힌 붉은 현수막은 한쪽이 고정되지 못한 채 접혀 있다. 행진 현수막마저 경찰의 제지로 결국 펼칠 수 없었다. 대열을 빠져나와 건너편 도로로 넘어갔을 때, 경찰이 행진을 앞뒤양옆으로 둘러싼 바람에 시민의 형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4월 26일 오전 9시 20분,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다가 광화문으로 향했다. 구미 옵티칼 고공농성 희망버스 연대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2022년 10월 구미공장 화재 발생 후,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법인을 청산해 노동자 193명을 희망퇴직 권고로 내보내고, 거부한 노동자 17명을 정리해고했다. 니토덴코는 구미 물량을 평택공장으로 이전했으나 구미공장의 노동자는 승계하지 않았다. 2024년 1월 8일, 박정혜와 소현숙은 불탄 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재심판정 취소소송 1심에서도 법원은 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노동자 7명의 채용을 거부한 니토덴코에는 농성 후 80여 명의 신규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희망버스 바로 직후인 2025년 4월 27일 건강 이상으로 소현숙이 농성을 중단하고, 현재는 박정혜가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기존 출발장소였던 동화면세점 앞은 이미 극우 집회가 점유하고 있었다. 만남 장소는 곧 근방의 다른 곳으로 재공지되었고, 버스가 줄지어 선 곳에서 분홍색 스카프와 평등약속 인쇄물을 받아 평등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총 여섯 대였다. 기자회견에서 기획단은 “두 해고노동자가 두 번의 혹한, 또 다가오는 두 번의 폭염을 견디게 할 수는 없다”며 희망버스의 취지를 밝혔다. 버스 탑승 후,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짤막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어느 단체의 활동가라든지 학교 단체 등 소속을 밝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연대 시민’으로만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별이나 나이, 직업, 자격 같은 건 상관없었다. 그곳에선 누가 어떤 사람이든 그저 ‘연대 시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환대받을 수 있었다.
14시, 장장 4시간 30분 만에 구미에 도착했을 때 서울은 물론, 충북, 전북, 경남, 경주, 심지어 제주까지 전국 20개 지역에서 1,000여 명의 연대자가 공장 앞에 와 있었다. 니토덴코 간판이 달린 멀쩡한 전면부가 거대한 현수막과 형형색색의 깃발로 화려하게 단장되어 있었지만, 조금만 건물 옆으로 가면 곧장 그을리고 훼손된 화재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장 주변에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벽이 뚫려 시커멓게 파괴된 내부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방문 당시, 이 위험하고 열악한 공장 옥상에서는 두 사람이 475일째 농성 중이었다.
도착 직후 공장 앞의 노조 사무실에서 우리밥연대가 준비한 묵밥을 먹었다. 시험 이틀 전인데다 혼자 온 탓에 초반에는 조금 어색하게 앉아 태블릿을 켜고 수업 교안 몇 장을 깨작대기도 했고 공장 주변을 정처없이 배회하기도 했다.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가 뜨거웠는데 다른 동지가 방석을 빌려주어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전대회를 마친 15시, 지난 2월 진행했던 희망뚜벅이 영상 상연 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연대발언으로 본대회가 시작됐다. 인형탈과 음성변조로 신상을 감춘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공연과 시민발언, 밴드 공연이 잇달았다.
봄은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스물 몇 살, 생전 처음 당하는 무참한 폭력. 몸과 마음을 짓밟던 구사대의 발길질과 찢긴 상처 위에도 봄햇살은 따사로웠는가.
(...)
성당에 종탑에서 흔드는 장애인 동지들의 깃발 위에도 봄은 아름다운가.
십 년을 일한 공장에서 퇴직금과 수당을 요구하다 강제추방 당하는 이주노동자의 수갑 위에도 봄은 빛났는가.
종로구청 용역의 칼에 찔린 마트노동자의 선혈 위에도 봄볕은 찬란했는가.
한 번도 맘 편히 잠든 적 없었고, 하루도 맘 놓고 웃어보지 못했던, 박정혜, 소현숙의 475일.
어느 하루라도 태양은, 바람은, 비는, 겨울은 자비로웠는가.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발언 中
문화제 마지막에는 ‘불탄 공장에 희망의 꽃 스티커 붙이기’ 상징의식이 진행됐다.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붉은 꽃 모양 스티커로 공장 전면부를 채워 넣었다. 그 아래로 색색깔의 깃발들이 휘날렸는데, 고공에도 와야 할 봄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연대버스와 뜨거운 햇볕 아래서 여러 사람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즈음에는 낯설고 어색한 감각도 거의 사라져 있었다. 처음 만난 동료와 친근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진행중이거나 예비된 또다른 광장에 대한 소식도 여럿 들을 수 있었다. 구미로 가는 길의 생경함, 도착하고 떠나갈 때의 슬픔이 자국처럼 남았다. 연대가 “만인에게 평등”한 봄을 위해, 즐겁고 슬프고 끈질기게 서로를 부여잡는 일이라는 걸 몸소 느꼈던 순간이다.
17시 50분, 한바탕 문화제가 지나간 자리에는 해가 내려앉고 있었다. 푸른 빛의 노을 너머로 박정혜와 소현숙이 여전히 고공에 있었다.
6월 14일, 남대문로와 우정국로 일대에서 제26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개최되었다. 퀴어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인 6월을 맞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1일부터 22일까지 레인보우 굿즈전, 퀴어퍼레이드, 25주년 기념 포럼 ‘퀴어문화축제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변화의 지도’(6.19(목)), 한국퀴어영화제(6.20(금)-6.22(일))로 이어지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10시 30분경, 부스행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행사장 근방은 교통 체증이 심했다. 입구 부근에는 동성애 혐오 세력이 소규모의 집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Homosexuality is sin’이라는 혐오세력의 현수막과 ‘Homosexuality is 신!’이라는 장난기 있는 퀴어퍼레이드의 현수막이 함께 걸렸다. 탄핵의 여파인지 매년 퍼레이드 근방에서 벌어지던 혐오 시위는 기세가 죽어 규모가 작았고, 무대 위 몇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만 어렴풋이 드러났다. ‘동성애/동성혼 반대!’라고 적힌 팻말은 ‘반대!’ 부분이 구조물에 교묘하게 가려져 ‘동성애’만 보였다.
입장하자마자 2025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공식 슬로건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가 적힌 피켓과 부채, 손수건과 홍보 포스터를 한가득 받았다. 무대 쪽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국적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각양각색의 색깔로 꾸민 시민들이 행사장 일대를 무지개색으로 꽉 채웠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장 중앙에는 성중립화장실과 장애인화장실이 구비되어 있고, 주최 측은 아웃팅 방지를 위해 언론인에 프레스 카드를 발급하고 촬영·취재 가이드라인을 고지했다. 11시경, 제21대 대선에 5번 후보로 출마했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퀴어퍼레이드에 연대 차 방문하며 주변이 붐볐다.
금년 퍼레이드에서는 총 77개 단위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부스로 참여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트랜스해방전선, 비온뒤무지개재단 등의 소수자 인권단체는 물론 부산대, 가톨릭대, 성균관대 등의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대한불교조계종과 로뎀나무그늘교회와 같은 종교 단체, 10여 국 이상의 주한대사관, 4개 정당과 각종 기업이 참여했다. 이전 광장에서 만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금속노동조합도 부스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옵티칼 고용승계를 위한 청원을 독려하고 있던 금속노조에 희망버스 손수건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나눴다. 광장에 여럿 참여할수록 다른 곳에서 보았던 동지를 또 마주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축제 현장은 즐거운 생기로 가득했다. 퍼레이드를 오가는 시민이 끝없이 불어나 16시에는 거의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주최 측 추산으로 약 17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역대 퀴어퍼레이드 중 최고 인원이다. 누군가 눈앞에서 고성을 지르고 혐오 발언을 뱉을 때면 퀴어와 앨라이[6]들은 분노로 맞받는 대신 박수와 환호로 응답했다. 온몸에 대변을 바른 채 달려오거나 악을 쓰며 회개하라고 괴롭게 울부짖는 사람들을 건너, “다름을 축복하고 존재를 드러내며” 자긍심과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는’ 평화로운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의 중심을 크게 돌아 종각역에서 을지로입구역으로 돌아오는 약 3km의 행진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최인훈의 『광장』 속 명준은 ‘밀실’과 ‘광장’을 구분하면서도 어떤 현실의 장소도 ‘밀실’이라 명명하지 않는다. 명준에게 ‘밀실’의 반대말은 “서로 만날 수 있는 광장”이자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더불어 쓰는 광장”,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광장”이다. 그런 광장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 각자가 각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요컨대 삶이 이루어진다면 어느 곳이든 ‘광장’이며, 광장이라면 어떤 모습의 누구든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차별을 금지하자는 말조차 머뭇거리게 되는 세태에 이런 ‘광장’은 발생만으로도 일정한 정치적 의미를 획득해 버리고 만다.
취재차 방문한 집회와 축제 현장은,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와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한 누구든 간에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장이었다. 광장 아닌 개인들이 광장으로 모이는 게 아니다. 소수자의 ‘걸어 다님’은, 그저 걸어 다녔을 뿐인데도 종종 ‘행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어디서든 광장이 ‘된다’.
계엄의 밤 국회에 있었던 시민들을 인터뷰한 KBS의 다큐멘터리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에서 유하영, 최희윤, 박용진 등은 하나같이 “광주에 다녀왔었던 기억”, “전 주에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일, “30년 전”이 떠올랐다고 진술한다. 광주를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여러 사진, 영상, 글을 통해 ‘지나쳤을’ 뿐인 이른바 ‘광주 2세대’들이 광주를 생각하며 국회로 달려간 것이다. 이처럼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도 5.18은 12.3과 종적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남태령과 구미와 명동 일대로,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135쪽) 벌어지는 광주로까지 횡적으로도 품을 벌린다. 광장으로 모인 시민들은 광주를 안팎으로 종횡하며 윤리적 주체가 된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타자에 연대할 때, 그것은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지는 자욱한 안개의 강 위에 나도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광장이 규탄하는 것은 모든 개개인이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 겪을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정 때문에 광화문광장을 급히 걸어가던 길에 10명 남짓이 모인 기자회견 현장을 지나쳤다. 그보다 배는 많은 수의 경찰이 그들을 둘러싸고 ‘불법집회’에 대한 법적조치를 예고하더니 채증 카메라를 들던 모습이 기억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 도록에 실릴 글이 계엄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록하지 않으려다 검열 논란을 빚었고, 6월 28일에는 이에 저항하는 전시 참여 작가들의 항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곳에서 본 깃발이 저곳에도 있고, 저곳에서 본 폭력이 이곳에서도 벌어질 때의 기시감. 아직 그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절망과 조급함이 나를 채웠다. 표층의 상처를 조금 도려낼 수는 있더라도 뿌리 깊은 감염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계엄과 광장은 죽지 않은 몸으로 여전히 걸어 다니고, 생성되고, 불어나면서 서로와 대치한다. 안개는 여전히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1]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사계절, 2018, 221쪽.
[2] 위의 책, 239쪽.
[6] 성적소수자를 지지하고,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 (2016.9.19., 「[나는 ALLY입니다] 거리캠페인을 나갑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방문일: 2025.8.13., 출처: https://rainbowfoundation.co.kr/posts/WLt5p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