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핸드폰이 함께한 하루.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오매불망 퇴근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눈도 흐리멍덩해져서는 기어코 화면 가득한 데이터를 블러(blur) 처리해 버린다. 쩍쩍 벌어지는 하품. 상사에게 들킬세라 얼굴을 비벼 슬쩍 눈물을 훔친다. 이내 오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피곤한 기세를 뿜는다. 모니터 오른쪽 아래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아, 지루하다.’ 혹 권태란 이런 것일까? 이상이 혹서에 장기를 두면서도 느꼈던 권태는 과연 이러했을지 짐작해 본다. 이상과 함께 늘어지게 얘기해보면 어떨까? 녹색지대가 즐비한 게 무서운지, 까만 0과 1이 내 눈앞에 도열된 게 무서운지 비견하고 싶다. 혹은 이상은 다양한 패키지에 감탄할까? 그렇지 않다면 무한한 데이터에 질려할까? 혹은 이 사담마저도 권태일까? 클릭클릭. 이건 녹색서식, 이건 True와 False.
그런 내 앞에 도착한 메일 한 통. 번쩍번쩍 점멸하는 보라색 엣지. 연락밥 받아먹은 게 꽤 오래만인지, 내 핸드폰이 좋은 소식이라도 가져왔다는 듯 신나게 점멸한다. '이거 봐봐!'. 이런 연락은 광고나 은행 카드값 같은 것이 아니란 소리다. 내 삶의 권태를 깨고 나를 각성케 하는 이 반가운 알림은 대체 무엇이지?
이윽고 한번 더 반짝이는 보라색 엣지 디스플레이. 카메라 홀 그 아래 드롭다운으로 뜨는 하얀색 바탕에 쩅한 녹색의 편지봉투. 그리고 이니셜 'N'과 발신자 ‘brunch’. 아아, 그 메일인가. 10월부터 한 달 동안 매번 받았던 그 메일. 그러나 그간 받았었던 메일과 사뭇 다른 제목. 나는 결국 받아냈나보다.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소식임에도, 나는 메일 제목때문에 마뜩잖아졌다.
‘그간 받았던 제목이 강력한 스포일러였구나.’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를 안내드립니다.’라는 제목은 항상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메일 내용 확인하기 전까진 모른다!’는 내 기대. 그게 하등 인지력 낭비라는 것을 브런치가 반증해 줬다. 무려 작가 신청씩이나 받는 브런치가 스포일러를 자행한다는 생각에 나는 매우 고까워졌다. 괜히 연락밥 맛있게 먹고 있는 핸드폰을 뱀눈으로 쏘아본다. 핸드폰은 이내 보라색 엣지를 감췄다.
전혀 다른 뜻을 지닌 두 문장. 그간 세 번이나 받았던 메일 제목과는 이 얼마나 다른 제목인가! 그래도 좋다. 이게 성과다. 이게 역(逆)권태다. 진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의 서막, 프렐류드, 디지몬 어드벤처의 오프닝곡이다.
그간 내 글은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무한히 써내려야 하는 내 글은 오직 중지의 축복만이 멈출 수 있으리라. 쓰고 탈락하고 쓰고. 돌을 올리고 굴려보내고 올리고. 글인지, 돌인지. 나는 내가 얼마나 굴렸는지 모르겠다. 퇴고 50번부터는 세지 않았다.
그간 굴려왔던 내 돌이 뾰족한 정상을 닳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번 돌이 정상과 딱 맞는 홈이 파져 있었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나는 내 돌을 꼭대기에 올렸다. 남의 돌이 아니라 내 돌을 올린 건 시시포스도 못한 일이다.
시시포스가 정상 위에 서버린 돌을 본다면 과연 이런 기분일까. 이제 이끼가 낀 돌은 구르지 않은 돌이란 걸 실감하게 될 시시포스다. 가만히 손을 떼 본다. 거기엔 브런치 작가 데뷔에 성공했다는 글귀가 써져 있다.
퇴근 시간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지금의 나는 권태롭지 않다. 핸드폰만 붙잡고 그 메일을 계속 되뇌었다. 나는 내 일에 일부러 집중하지 않았다. 옆에서 이상이 내 핸드폰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은 직장 동료가 얘가 지금 뭐하는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실로 권태로운 표정이다.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 서둘러 이 사실을 알렸다. 지인이라고 함은, 내가 작가의 꿈을 남몰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단 몇 사람이다. 아 행복해라.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을 줄이야. 그 사람도 내가 글 쓴다는 사실을 알 테다. 그래도 내 소식을 직접 전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쉽다. 하지만, 알려줄 방법이라야 있다. 이미 안다. 계속 내꺼 보고 있더라, 너.
퇴근길의 나는 스몸비 한마리가 되어있었다. 몇 백번의 같은 메일 탐독. Task 리더가 필히 못마땅히 여겼으리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 그래도 상관없다. 평생 있을지도 모르는 직장보다는, 나와 평생을 함께할 내 플랫폼, 내 글, 이상과 본격적 글로써 대담할 수 있으니. 이게 평행우주고, 이게 작가와의 만남이다. 내가 그 누구의 눈치를 보겠는가. 나는 회사 안에서 비로소 진정 '나'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거늘. 반갑다, 이상아!
설레는 마음, 부푼 마음이 가득하다. 쏟아지는 축하들이 브런치 축하메일보다 반갑다. 이 삼낙사당(三落四當)이 내 우주에서 얼마나 큰 빅뱅인지 오로지 나만 안다. 남들은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다 싶다. 멀리서 보면 이만큼 참 별일 아닌게 없다. 재수까지 끝내고 들어간 입시 성공, 3년간 준비했던 취준 성공에 비할 바 못된다.
그 자체는 별거 아닌데, 가까이서 보면 이것만큼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이 2026 년에는 없었다. 장원급제요! 이 기억은 단연코, 올해 기억중에 1등이다. 물론 1개 뿐인 기억에 1등이다. 그래도 장원은 장원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 경우엔 반대로 말해야겠다.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낱 점에 불과한 비극이다. 이 성공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책 발행? 오프라인 독자와의 대담? 내 글이 간택받는 날? 공모전 당선? 그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기에 어두운 날이 암시되어있다. 권태로울 나날이 가득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권태롭지 않다. 행복하다. 이상도 똑같았을 테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분명 이런 역권태의 순간에 글 한 줄 썼을 것이다. 내 인생 어느 한 순간을 훑고간 권태가 결국 글로써 울고 웃는 이 순간을 만들었으니, 분명 소회를 밝혔으리라.
부푼 풍선이 되어버린 내 마음을 힘껏 알리고 싶다. 이발사의 고충을 알 것만 같다. 내가 섬기는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것도 알리고 싶어 죽겠는데, 하물며 내가 생각하는 성취를 발설하지 않기가 쉬운 일이 과연 쉬울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말에는 얼이 담겨 있다는 문장. 나는 내가 시도했던 모든 일을 쉽게 발설함으로서, 파국을 초래했었다. 구태여 떠벌리지 않아야겠다. 복수불반분을 가슴으로 새기며 이내 마음을 잠잠하게 앉혔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내 알동기가 축하해 준다. 그리고 묻는 말.
“그래서 어떤 게 좋은 거야?”
나는 작가들만의 커뮤니티에 이제 발을 담그게 됐고, 그곳은 나 같은 사람들이 만끽할 수 있는 중간역 같은 곳이라, 수많은 기회의 허브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렸다. 책 한 권에 내 토막글 한 구절을 실을 수 있는 기회가 가득하고, 독립서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있으며, 편집자들의 출간회와 매년 브런치 작품을 모아서 내는 책에 내 이름 석자도 새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점차 들떠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참 내 글을 좋아했고 이 플랫폼에 진심이었겠구나 싶다.
드디어 버스에 탄다. 보통 나는 퇴근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기 바쁘다. 짧은 쪽잠을 잔다. 다섯 시간 삼십 분 자고 하루를 버텨내는 내 몸에게 보내는 땡큐 레터다. 나는 내 몸에게도 보은하곤 한다. 은혜는 두배로, 원수는 열 배로. 잠을 자지 않으면 내 몸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 내 퇴근 계획을 여지없이 망가뜨리고 무력감을 선사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상관없겠다. 103일. 3전 4기. 10편의 글. 50번이 넘은 퇴고. 3권의 작법서. 2권의 수필집이라는 경험 아래 내가 이뤄 놓은 성과를 구경한다. ‘어이 내 몸, 한잔해.’ 오늘은 무수면의 축배다. 술보다는 수면에 취해보자. 오늘은 기분이다. 내 몸아, 오늘은 기쁜 날이니, 피곤한 몸 이끌고 오늘 한 껏 무리해 보자. 핸드폰아, 너도 와라. 너도 뭐가 그리 신나길래 밥 안 먹고 배터리를 깎아먹고 있느냐.
핸드폰 다리가 부러지도록 먹고 또 먹을 수 있는 메일 안주에 수면기로 내 기분 가득채웠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그제야 눈꺼풀을 들어올려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운동을 끝내고 밥을 먹는다. 발행을 기다리는 두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한 명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 지인. 이 사람은 ‘일간이슬아’를 소개해주며 내 작가 생활을 응원해 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직장동료. 내가 글의 진앙지 중 하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들은 브런치 플랫폼을 애독하고 그 이해도가 뛰어난 사람이다. 그 둘에게 모두 보여줬다.
우리 오래오래 같이 지내잔다. 내가 큰사람이 될 것 같다며. 문득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기 위해 읽었던 ‘강원국의 글쓰기’가 생각난다. 본인은 자기 글을 60점 짜리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80점짜리로 생각한다고. 으레 강원국 씨는 본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꿍꿍이로 평했는데, 나중에는 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아내를 보고 참 고마웠다고 느꼈단다. 그제야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그래, 우리 오래오래 봅시다.
여느 때와 같이, 침대는 오매불망 나를 기다린다. 흐리멍덩한 눈은 어디 가고 침대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쏘아본다. 가득 쌓인 작법서, 미처 발행하지 못한 습작들. 침대는 제 주인 빨리 오라고 침대 위 옷가지를 슬쩍 떨어뜨린다. 나는 이상이 찾아왔나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어느새 피곤한 기세가 찾아왔다는 걸 이제야 느낀다. 책상 위 나는 모니터 오른쪽 아래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자정이 넘었다.
‘아, 행복했다.’ 권태란 역권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구나. 이상과 함께 늘어지게 이야기하고 싶다. 역권태만이 있는 삶이 무료한 지, 권태만이 있는 삶이 무료한 지 또 하루 종일 얘기하고 싶다. 그래도 오늘은 꿈에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녹색지대, 시시포스, 핸드폰과 브런치. 꿈만 같았던 꿈에 오늘은 권태가 끼어들 틈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