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 감천(感天), 그리고 당신
1) 작가일기
- 수필가의 출항: 수필가가 되기로 결심까지 지난 32년을 돌아보며.
- 책 발행 과정: 책을 발행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건네는 출판 메뉴얼.
- 글공부 과정의 낙사(樂事): 작법서 소개, 수필책 리뷰
<브런치 작가신청 내용 中>
최부는 스물아홉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다. 추쇄경차관, 소위 추노를 잡는 관직에 임명되어 제주도로 발령된다. 그리고 그다음 해 1488년(성종 19년) 1월, 그는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고서는 나주를 향한 뱃길에 오른다.
최부는 효심만으로 미지로 가득한 바다에 자신을 던졌다. 항해술, 항로랄 것도 없다. 그래도 항구는 시끄럽다. 갑판 위도 북적북적하다. 그러나 최부는 고독했다. 누구와 같이 있어도 그의 마음 아는 이가 하나 없었다.
5리. 최부는 5리를 겨우 지났다. 그는 어두운 바다와 세찬 비를 마주했다. 출항한 지 6리. 우박이 떨어지고 대풍이 분다. 바다 위에서 뱅글뱅글 몇 리를 돈 건지, 성난 파도는 도무지 잠잠해지지 않는다. 바람은 배를 비껴 이윽고 바다를 내리친다. 부서진 부분으로는 물이 새어 들어온다. 돛자리는 남김없이 파손되고, 큰 돛대는 더욱 기울어지며 구부러진다. 결국 도끼로 돛대를 제거한다. 무거운 짐을 배밖으로 내버린다. 최부는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를 향한 제 효심이 감천(感天)했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맞았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육지. 그들을 반긴 건 다름 아니라 도적들이다. 낯선 땅에서의 금의환향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사휴의를 바란 건 아니었다.
*만사휴의(萬事休矣) :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어찌해 볼 수 없음
감천은 육지에도 닿았다. 최부와 일행 일부는 목적지에 생환한다. 그리고 몇 날 후, 표해록을 기록한다. 늦은 밤, 고적한 초가집 그 사랑방 안에서 촛불 하나에 의존해 붓을 든다. 생사를 넘나들며 겪었던 풍파, 우리가 지나온 경로, 갑판 위에서 몸이 헤맸던 자취, 소용돌이와 같은 해류를 상기한다. 그날 별이 되었던 일행과 육지에서 마주한 모든 인연을 지묵(紙墨)으로 써내린다.
먼 훗날, 결국 이 2권 3책은 계절풍의 변화, 해양지리서 그리고 해양문학으로서 그 가치를 증명한다.
내 '수필가의 출항'은 최부의 표해록과 닮았다. 브런치 작가 데뷔라는 작은 벼슬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목적지를 향해 돛을 폈다. 목적지는 관조를 위한 자리, 네버랜드다. 구전은 그곳엔 누군가 닿았다고 말한다. 글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무릉. 나는 믿고, 닻을 거뒀다.
내 앞에 펼쳐진 바다, 그것은 망망대해다. 길도 없고 항로도 없다. 바다는 침잠한다. 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무섭다. 무서움이 내 안의 파도를 만든다. 최부는 5리도 못 가서 풍랑을 맞았다. 나는 몇 리를 왔는지 알지 못했다.
최부의 고독은 파도를 불렀다면, 나의 파도는 고독을 불렀다. 다만 내 고독은 바다 위 최부보다 또는 표류하던 내 삶보다 길 것을 내게 속삭였다.
바다 위엔 이정표가 없다. 내겐 가늠자도 망원경도 만져지지 않는다. 내 항해술도 미천하다. 어떻게 항해할까? 떠오르는 건 그저 감천. 감천밖에 없다. 나는 있는 힘껏 지성(至誠)해본다. 나 혼자로 무리일 듯하여 갑판 위로 기라성같은 선원을 모은다.
필사 담당 피천득 시인, 박완서 소설가를 소집한다. 마지막 선비이자 내 배의 참모, 조지훈 교수를 모신다. 강원국 작가 그리고 이태준 소설가와 함께 합심한다. 최부는 효심으로 감천케 하려 했다면, 나는 작가들과의 지성(至誠)으로 감천케 하려 한다.
파도는 잠잠해지지 않는다. 안이 밖을 흔드는 건지, 밖이 안을 뒤섞는 건지. 하늘은 지성(至誠)이 더 요구한다. 아니 내 마음이 그래야 할 성싶다. 단 한명이라도 함께 있는 게 내게 더 긴요하다.
그래서 당신을 모신다. 내 브런치라는 갑판 위로 초대한다. 당신이 나와 부디 감천하게 해주었으면 해서. 망망대해를 함께 헤쳐나가는 동료가 돼주었으면 싶다. 비록 내가 같은 길을 뱅뱅 돌지언정, 당신이 그저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파도를 잠잠케 하기 위해, 내 항해를 위해 그저 동료로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나는 무슨 글을 보여주어야 할까. 보름동안 고뇌했다. 내 서투른 항해술을 당신께 보이는 과연 맞는가? 망망대해에서 극진히 진대할 수 없을지라도, 내 미숙한 항해가 관조하는 맛이라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감천을 위한 지성이 아닐까. 그래야 파도가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완의 글을 동료에게 보이는 것으로 감천케 하리라 생각하는 건 오만이 아닐까. 다시 파도가 친다.
내게 브런치는 바다 위 갑판, 전쟁터다. 네버랜드가 아니다. 네버랜드에 딛기 위해서 하선해야 하는 널빤지다. 그렇다면 이 널빤지는 땀과 짠내로 덮여 있어야 한다. 배는 파도에 닳아 당연 녹슬어야 하고, 도착했을 때 어디 하나 성한 데 없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동료도 꾀죄죄할 것이다. 곱상한 얼굴 온데간데없고 덥수룩한 수염이 있을 것이다. 찰랑였던 머릿결은 소금기 가득 머금어 비짜락과 다름 없을 것이다. 물방울 하나 튀지 않은 하얀 카라 셔츠가 아니라 고무장화에 남색 멜빵바지 입고 있을 것이며, 밥과 고기를 제 때 먹지 못해 앙상할 것이다.
네버랜드에 다다른 나와 당신. 그런 당신은 어떠할까. 꾀죄죄한 당신은 풍파와 싸운 내 모습을 이미 봤다. 더러운 밑바닥 성격도 게워냈던 토사물도 당신은 이미 봤다.
그런 당신이 내 습작을 보지 않았을 리 없다. 이미 봤다. 내 미천한 항해술을 응원했고 조롱했으며, 흑역사조차 낙사롭다며 우린 술잔을 나눴다. 당신은 이미 내 부끄러운 작법 실력을 봤고 그리고 성장하는 모습도 봤다. 표해록도 (훌륭한 글이지만)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글이다. 그것도 홧김에 쓰고, 고쳐가며 다듬고, 다시 엮으며 빛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 것도 빛날 것이다.
나는 수필가임을 다짐한다. 시인처럼 삶을 향유할 것이다. 너와 나의 가치를 견줘 팽팽해진 우리 사이를, 나는 오직 낭만과 사랑이라는 단어로 노래하며 느슨하게 하리라. 내 낭만과 사랑의 외침은 마모될 인간관계에서 기름 부으며 부드럽게 풀어주리라. 나는 수필가, 시인. 낭만을 노래하고 사랑을 외치기로 정했다.
그렇다면,
내게 브런치는 파도와 싸우는 전쟁터이나, 언젠가 기꺼이 내려야 할 갑판이다.
내게 브런치는 가부좌로 정진하는 석굴이나, 비로소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할 수행처다.
내게 브런치는 간절한 목적지였으나, 마침내 소홀해져도 좋을 아름다운 매개다.
그리고 나와 내 옆의 당신은 내 습작을 같이 보는 게 맞다. 내가 네버랜드에 닿기 위해서. 내가 내 글을 읽을 모두에게 낭만과 인연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는 습작할 테다. 오늘은 강원국 작가, 다음 주는 피천득 시인. 다음 달은 조지훈 교수. 내년엔 청록파 박목월.
네버랜드에 닿는 날, 나는 목놓아 외치리라.
"좋은 글과 따스한 사람만으로도, 기어이 더운밥은 나오더이다."
망망대해를 지나는 오늘, 나는 나직이 말하리라.
"이 외롭고도 지극한 항해에, 비로소 당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