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위(共而慰)

공감 그리고 위로.

by 삼지창

반가운 분께 알립니다.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제 글은 앞으로 매주 일요일 07시에 발행하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전할 소식은 매주 글 서두에서 전하겠습니다.

2) 제 글에 관심을 보인 모든 분께 하나하나 찾아가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이킷과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께 인사 드리고 소회를 나누는 게 제 낙입니다. 제 둥지에 한번 오셨다면, 저는 항상 작가님들의 독자 임을 알아주십시오.

3) 다음주는 공모를 위한 작품 선정 및 퇴고로 한 주 쉬어갑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슬픔은 깊어진다.


발산역 9번 출구는 하얗게 덮인다. 출구계단을 오르는 모두가 동장군 호령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그 위세 앞 손속에 자비는 없는지, 풍겨오는 붕어빵 내음이 이제는 온데간데없다. 과연 춘궁(春窮)이 비로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인가. 아무리 민초가 가난해도 보리 한 소끔은 나오기 마련인데, 요즈음은 그 보리보다 붕어빵이 더 귀하다. 피천득은 춘궁이란 말을 싫어한다. 근데 어째서 세상은 춘궁에 어울려만 가는지. 싸늘해지는 주변을 소상히 둘러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어, 형. 여기야.”


우람한 상체에 어울리는 듬직한 어깨, 멋을 물씬 더해주는 머리 기장과 반 곱슬 머리를 가진 사내. 오늘, 내 친구다.


“무슨 남자 만나는데 멋을 그렇게 내고 왔든?”


듬직한 체형과 그 윤곽을 단단히 잡아주는 아이보리색 니트. 미니멀한 브라운 자켓과 살짝 워싱된 청바지로 저만의 멋를 뽐낸다. 마무리는 하얀색 운동화.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내 직장 동료이자 친한 동생이다. 낙관적인 태도와 어울리는 풋풋한 느낌. 나는 그가 참 본인답게 입었다지만, 과연 오늘의 안주는 무엇이길래 이리 유난할까 라는 생각이 못내 들었다.


보글보글 어묵탕이 끓는다. 어스름한 조명아래 몇 번을 부딪힌 글라스. 짠, 짠, 짠. 녹색 거탑이 갈라파고스 위 두 개쯤 세워진다. 형. 응? 나 있잖아. 이제서야 안주가 나온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이윽고 제 얘기를 토해낸다. 여행, 릴스, 유튜버, 그의 행복 철학. 나는 이 이야기를 열 번째 듣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세지 않았다. 그 동생은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공감한다. 좋아하는 일이 해야만 하는 일로 변모해가는 것은 야장(冶匠)과 다름없다. 내 심장이 무언가를 달군 다는 사실은 이미 그 열로 성질이 변했음을 뜻하는 것이거늘. 이는 사랑이 설렘으로 타올라 의지로 부화함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야속한 인심(人心)을 같이 탓해주진 못했다. 단지 슬펐다. 그가 겪는 비련이 분명 내게도 찾아왔었기에.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오는 비극에 맞서, 우리는 소리 죽여 오열하고 있음을 나는 알기에, 침묵을 지켰다. 나는 위로에 소질이 없다.


어묵탕에 가뭄이 찾아오고, 황혼 빛 갈라파고스 위 탑이 기어코 세 개가 세워졌다. 옆 이웃들이 하나 둘 바뀔 때 즈음, 나는 물었다. 네가 타인에게 가장 공감했던 순간을 기억하니? 그때는 언제였니? 나는 작가의 소양을 내 동생에게서 찾고자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아이보리색 니트의 사내 왈.


“형, 나는 공감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 해. 사람은 그 상황이 아니면 100퍼센트 공감할 수 없어. 그렇게 공감하면 나도 피곤하잖아. 대신 나는 위로에 탤런트가 있어. 그 친구에게 정확히 도움되는 말을 알거든.”


나는 더 없이 비통해졌다. 춘궁이 여기까지 왔구나. 춘궁은 결국 한파를 넘어 내 마음속까지 들이닥쳤다. 어째서 위로는 해야만 하는 게 됐고, 공감은 뒷전이 됐을까. 긴밀했던 둘은 언제부터 서로에게 격벽이 되었을까.


내 침묵은 결국 아픔을 낳았고, 네 위로는 결국 정답을 낳았구나. 어느 새 공감과 위로는 만날 수 없는 평면에 놓였네. 위로는 이제 콩 한쪽 나눠 먹는 사이에서 찾을 수 없고, 오고 가는 금전(金錢)에서야 찾을 수 있겠구나.

“…그 둘은 예전에는 긴밀했을텐데, 지금은 아니겠다.”


나는 한 껏 멋낸 사내와 잔을 부딪혔다. 머지않아, 나도 누군가의 옆 이웃으로 그 자리를 마쳤다.


붕어빵이 먹고 싶다. 내게 들고 있는 신열에 따땃히 굽고 싶다. 포슬한 밀가루를 푹 쪄내고 고소한 팥앙금을 양껏 담을테다. 천 원에 한 봉지에 능히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손에 가득, 가득. 날이 찰수록 붕어빵은 달테니까, 집 가는 추운 길도 짧을 테니까.


하지만 없다. 머리부터 먹을 나도, 꼬리부터 먹을 누군가도. 그리고 붕어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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