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편지 봉투는 책상 위에 있다. 머뭇거리는 손을 이기지 못하고, 편지지를 손으로 만진다. 다듬어 지지 않아 표면은 거칠어도, 묘한 살구색으로 받는이의 긴장을 덜어주는 형태. 이윽고, 손바닥 크기 편지에 내 코를 대본다. 학창시절 숱하게 맡아왔던 종이 냄새 보다는 여름 총기 가득한 숲의 피톤치드가 느껴지는 우디한 향기가 풍겨온다. 짙은 갈색의 실링 왁스, 그리고 그 안에는 장미가 새겨져 있다.
정성 가득한 편지는 생일 케이크 처럼 건드리기 무섭다. 풀어 헤치기 망설여지지만 헤치지 않고서는 다음 내용을 기약할 수 없다. 나는 편지의 실링왁스를 기어코 벗겨낸다. 두 장의 편지지. 실링왁스 부터 편지봉투, 편지지를 따라 옅어지는 채도가 눈에 띄인다. 편지지는 거의 하얀색이나 다름없는 갈색이다.
앞장이 먼저 보인다. 맨 윗줄에는 넘버링도 되어있다. 나는 조심스레 읽는다.
내 비밀 친구. 반갑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의 마니또입니다.
먼저 고맙습니다. 편지를 써본 지 한참 지났었는데, 독특한 기회 덕분에 나는 펜을 들어 편지를 써봅니다. 오랜만에 나는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즐겁게 고민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 내 작업실은 한기가 돕니다. 내 차가운 손은 두시간 째 펜을 들고 있습니다. 내 손 옆으로 키보드, 뽀모도로 시계 그리고 작업용 안경이 보입니다. 키보드는 모노크롬 단색 작업옷 입은 채로 플리스틱 뚜껑을 이불 삼아 자고 있고, 그 앞 가죽 케이스 앞의 은색 금테 안경이 숨어있네요. 한참을 쓰는데 뚜껑이 덜컹입니다. 옆을 봤더니, 창문이 실바람을 싣고 있었습니다. 내 손을 차게 한 틈새를 닫고 나서 편지를 이어나갑니다.
두 시간. 이토록 공을 들여서 하고 싶은 말은 ‘그대가 잘 지냈으면’ 입니다. ‘잘 지낸다’는 것은 성공가도를 달리라는 말은 아니겠습니다. 우린 성공보다 시련을 숱히 겪으니까요. 정리된 연인 관계, 반복되는 직장 고민, 엉겨붙고 떨어지는 만남의 연속… 당신은 이미 삶에 싫증 나기 시작했을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가 잘 지내길’ 바랍니다. 삶이 지루하다 못해 의뭉스러울 때, 그 시기에 걸맞은 지혜가 당신에게 깃들기를 바랍니다. 의지할 곳이 없음을 깨닫고나서도 다시 도약하는 용기가 나길 소망합니다. 방황하지 말고, 지금 거니는 시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여기엔 책갈피가 같이 있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좋은 영감을 받거나 글을 펴낼 때 마다, 나는 책갈피를 삽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진 책갈피는 다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갈피의 뜻은 ‘낯’ 입니다. ‘낯’은 베트남 어느 촌락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갈피 중 하나입니다. 일면식 없는 당신에게 ‘낯’을 줍니다. 낯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의 낯으로 거닐고 있는 세상을 비추세요.
이제 가겠습니다. 덕분에 쓰고 고치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 내 말을 내가 받은 기분이네요. 추위가 기승입니다. 분명 내일 돌아가는 길에도 한기가 서릴테니, 부디 살펴가시고…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작은 인연을 위해, 선물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다음 편지’입니다. 두 편지가 윤문을 거쳐, 정식 글로 발행될겁니다. 그대가 주인공인 또 다른 편지가 궁금할 적엔, 아래와 같이 장막을 스스로 걷어주십시오. 남은 단편을 드리겠습니다.
- 행사 중에 보게 된다면, ‘낯’을 많이 언급하십시오.
- 행사 후에 보게 된다면, qewasd@naver.com 으로 연락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