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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옥 Nov 26. 2021

엄마는 계모니까

콩장 김밥


차가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파닥인다. 차 시트에 깊숙이 구겨진 엄마는 속 빈 나무들 같다. 날이 차가워지니 온 몸이 시리고 바람이 들어간다고 다. 이럴 때 따뜻한 온천이 생각난다기에 내친김에 가자고 나섰다. 요즘 딸 없는 어른들은 불쌍해 보인다며 불쑥 이야기를 꺼낸다.

“나도 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겠나?” 겸연쩍게 웃으신다. 그 말을 비집고 쏘아붙이듯

“엄마는 아들밖에 모르잖아”라고 했다.

“옛 날에는 왜 아들아 들 했는지 모르겠다.” 미안해하며 둘러대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육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 졌다. 언니도 동생도 다 냈는데 나만 엄마가 주지 않았다.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갔다. 아버지는 출장을 가고 자리에 안 계셨다. 빈손으로 학교에 돌아온 나는 벌칙으로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다른 아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동네 어귀에서 모이기로 되어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가려는 내게 엄마의 날카로운 소리가 뒤 꼭지를 낚아챘다. 엄마가 채찍 같은 소리로 내 이름 끝 자를 내동댕이치면 나는 엄마의 얼굴이 무서웠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등에 포대기를 띠고 업혀주던 막냇 동생이 얼마나 미웠던지 발등을 엄마 몰래 수 없이 꼬집어 비틀었다. 울어대는 동생이 내 발목을 묶어 놓는 사슬처럼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계모인가?’ 계모가 아니고서는 유독 내게만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내 친엄마가 맞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너도 알았구나!

사실은 다리 밑에 울고 있는 너를 데려왔는데 누구한테 들은 거니? “

그랬었구나! 그때부터 내 가슴 구석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친엄마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혼자 끙끙대고 말 수가 줄어드는 날이 이어졌다. 항상 내 등에는 막냇 동생이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었고 동생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 번도 투정 부리지 않았다. 엄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오셨다. 아버지의 손에는 여전히 큰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알파벳 모양의 비스킷이었다. 매일 아침 엄마는 그 비스킷을 숫자를 헤아려 20개씩 동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엄마의 지론에 의하면 여자는 그런 거 먹으면 입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그럴 때마다 서러웠지만 일찍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다. 엄마는 계모니까.


5학년 봄 소풍날이었다. 엄마는 김천에 있는 외가집에 가고 없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김밥을 파는 곳이 없었다. 일 년 중 가장 기다리고 즐거워해야 할 소풍날 나는 갈등이 생겼다. 엄마는 왜 하필 이럴 때 외갓집에 가셨는지 화가 났다.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을 해야 하나 걱정에  밤 새 뜬눈으로  새웠다. 아침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어도 모든 걸 꾹꾹 눌러 참았다. 나는 도시락을 못 싸서 소풍을 가지 않겠다고 새초롬하게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는 걱정 말라며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내미셨다. 참으로 의외였다. 언제 시장을 봐서 김밥을 싸셨는지 아버지의 도시락으로 엄마를 원망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졌다. 마음이 바빴다.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시락을 가방에 받아 넣고 그제야 들뜬 마음으로 주섬주섬 챙겨서 뛰었다.


운동장은 아이들 소리로 잔치 집처럼 시끄러웠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운동장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은 내 머리카락 가닥가닥을 헤집고 다녔다. 봉화에서 풍기 희방사 까지는 멀기도 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김밥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김밥을 제대로 싸셨을까? 김밥 거리를 사러 나가시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궁금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앞에 펼쳐놓으면 창피당하지 않을지 염려되었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구석진 곳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싶었다. 주춤주춤 하는 사이 친구들이 하나씩 팔짱을 끼고 모여들었다. 좋은 자리를 봐 놓았다고 그리로 가자며 손을 잡아끈다. 집에서 먼저 도시락을 한 번 열어보고 올 걸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어쩔 수도 없다. 마음이 왜 이렇게 콩닥거리는지, 친구들에게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내가 생각해도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도시락 보자기를 풀었다. 뚜껑을 열기가 두려웠다. 친구들은 벌써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내 도시락 뚜껑을 열어젖혔다. 친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 김밥으로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김밥이 이상했다. 분명 김밥 속에 들어 있어야 할 단무지와 시금치 계란 등은 하나도 없었다. 그 속에는 엉뚱하게도 까만 콩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콩장의 간물이 흰밥에 거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내 친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때까지 참았던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지려 했다. 안간힘을 쓰고 동공에 매달려 있는 눈물이 콩장 간물을 더 크게 번져 보이게 했다. 억지로 태연한 척 애를 쓰고 있을 때 한 친구가 하나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말을 하면 매달려있는 눈물방울이 터질 것 같아 고개만 끄덕였다. 그 친구가 너무 맛있다고 선수를 친다. 그러자 너도 나도 하나씩, 하며 집어먹었다. 나도 하나를 먹었다. 콩장의 간이 짭조름하니 잘 어우러져 맛있었다. 다행이었다.


며칠 후 엄마가 외가댁에서 돌아오셨다. 이때껏 내게 보이지 않던 다정한 얼굴로 다가오셨다. 낯설기까지 했다. 갑자기 웃으며 앉아보라고 하신다. 엄마의 행동에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다소곳이 앞에 앉았다. 네가 나를 계모라 한다며 하고 또 웃으신다. 며칠 전 친구 동숙이에게 처음으로 엄마가 계모라고 비밀을 이야기했었다. 동숙이가 자기 엄마한테 비밀을 폭로한 것이 엄마에게 전해진 것 같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어른들이 농담으로 쓰는 말이라고 하며 이제 동생도 덜 보게 하겠다고 이야기하신다.


나는 오 남매의 둘째 딸이다. 위로는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언니가 있고 밑으로는 금쪽같은 남동생이 줄줄이 셋이나 있다. 이리저리 봐도 대우받을 수 있는 순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가 계모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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