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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Feb 25. 2022

갓 스물, 살 길을 찾습니다

전단지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으로

좁아지는 길
손에는 몇 장 남지 않은 카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
점점 줄어가는 의자
텅 빈 운동장
<가능성 - 브로콜리 너마저>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학창 시절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로 등이 떠밀려 성인이 되었다. 꿈뻑꿈뻑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니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간에 나는 무엇을 했을까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지만 브로콜리너마저와 김사월의 음악으로 하루하루를 조심스레 살아나가고 있다.


‘스무 살 기념 전국의 브루어리를 휩쓸고 다니며 술 여행을 할 거다’, ‘작년에 인턴 했던 곳에서 문화기획자로 취업할 거야’, ‘바텐더 알바로 투잡도 뛰어야지’ 등 거창한 목표를 여기저기 흩뿌리고 다녔지만 뭐 하나 달성한 것은 없는 두 달 여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분명했다. 1월 1일부터 얼떨결에 시작된 자취와 낭만과 현실 속을 분간하지 못하던 달콤하디 달콤한 연애.


그 속에서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아이에게 심각할 정도의 의존을 하고 있었다. 나의 과도한 기댐을 깨닫게 된 계기는 서로를 위해 먼저 거리 두기를 제안한 애인 덕분이었다. 애인은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나 또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두 달 여 기간 동안 함께 살다시피 한 애인의 부재에 일상이 텅 빈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헤어지면 대체 어떤 수준의 외로움을 느낄지 너무나 무서워졌다. 그때는 나 혼자 일어설 수 있을까. 불안과 혼란을 거듭하며 3일 동안 펑펑 울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사실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인정하기도 직면하기도 싫었으니까. 나와는 만나주지 않고 자신만의 일상을 살기 시작한 애인에게 느끼는 질투와 갖은 미움들은 오로지 애인의 탓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원인은 나였다.


나는 사실 너무도 약했다. 의지도, 꿈도, 목표도 없는 상태로 도망만 다녔다. 누군가 정답을 알려줘야만 움직였던 과거의 ‘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뤘고, 그 속에서 난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아이를 다독이는 심정으로 몰아붙이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 너그럽게 타일렀다.


‘다 괜찮아. 겁내지 마, 잠깐 길을 잃은 것뿐이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정답은 없어.’


그렇게 해서 오늘 첫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여전히 적막은 견디기 힘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닥친 월경통에 하기로 한 영어의 절반 분량도 채 공부하지 못했다. 한 발 한 발, 중학영어부터 나아가는 중이지만 회의적인 생각 탓에 자꾸만 목적을 잃는다. 목적이 없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에 가깝겠군.


길은 자꾸만 좁아지고 의자는 줄어드는데 내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학력도 돈도 부유한 부모도 없는 내가 나의 삶을 꾸릴 수 있을까. 손에 든 카드는 불안과 공포. 이걸로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주택청약은? 알바를 몇 탕을 뛰지? 사업을 해볼까?


이 사이클의 반복은 결국 무기력함을 낳았다. 아빠는 말했다. “돈에 쫓기지 마. 당장은 지원해 줄테니까. 너는 넉넉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길을 모색해 봐. 지금은 돈 벌 생각보다는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생각하고 배우는 게 먼저다.”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할 때 받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당장 독립하고 싶은 마음을 고수하고 겁나지만 일을 더 크게 벌려봐야 할 것인가. 결국 대학이냐 사회냐의 차이다. 둘 다 당장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진 못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는 의문.


내가 주체적인 나의 삶을 살아본 적이 있던가.


미성숙하고도 겁 많은 나의 이십 대는 이제야 시작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무섭다. 관계맺기도, 설득하기도 전부. 그러나 무서워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꿈은 나의 고향이자 내가 사랑하는 도시 진주에서 청년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로컬리티를 실현하는 펍을 만드는 거다. 지역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꿈꾸고 싶다.


김기종 사진가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인 ‘휴먼스 오브 진주’를 정독하며, 나 또한 진주의 청년들을 만나서 인터뷰 하고 그를 엮어 뉴스레터, 브런치, 인스타로 연재하거나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 당장 내일 알바가 끝나면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다원에 가서 칵테일을 주문하고 싶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야지.


사유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이 시간들이 분명 내게 커다란 힘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거창한 것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처럼, 나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 2주 후에는 이전보다는 주체적이고 자신있는 모습으로 데이트 신청을 해야지. 그래서 일단은 내 자취방 벽면에 크게 한 문구 써붙이려 한다.


갓 스물, 살 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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