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선 Aug 24. 2021

그림에 공감하기

<그림공부,사람공부>(조정육)을읽고


 올 1월 청주에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창 밖 풍경을 봤다. 얇은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바깥에는 안개와 습기가 부옇게 흐려있었다. 아무래도 기차는 사람들이 안 사는 외곽 지역으로 달리니까 창 밖으로 아파트나 건물보다는 산이 더 많았다. 그러다 야트막한 산에 안개가 끼어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풍경을 보자마자 동시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는 산수화가 하나 떠올랐다. 내가 떠올린 그 산수화와 방금 눈앞에 지나간 풍경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산수화에 "공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주 가는 기차 안에서 본 사진은 아니지만 이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풍경이다. 이 사진은 여수 여행 갔을 때 찍었다.

 나는 동양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눈에 더 익숙한 그림은 서양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미술사보다는 서양 미술사를 먼저 접했고, 미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다빈치의 모나리자라던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던가 이런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양 미술 강의를 듣거나 서양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면 왠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책에서는 뭐 뒤러의 자화상의 구도를 보고 경이롭다 하는데 사실 나는 경이롭지 않았다. 치밀하게 짜인 삼각형의 구도가 신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양화는 눈에 익숙하니 책이라도 찾아봤지. 동양화는 이제까지 그렇게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2학기 때 아시아 근현대 미술의 이해라는 강의를 듣고 조금 관심을 가진 정도였을 뿐이다. 이 강의를 듣고 있을 때도 동양화는 다 똑같이 생겨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이런 와중에 기차에서 저 풍경을 보았다. 저 경험을 하고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읽게 된 책이 <그림공부, 사람 공부>라는 책이다. '옛 그림에서 인생의 오랜 해답을 얻다."라는 부제목을 단 걸 보니 동양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읽어도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화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책에서 경이롭다 하면 나도 경이로웠고, 책에서 아름답다 하면 나도 아름다움을 느꼈다. 작가님이 풀어놓은 감상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 건 아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나만의 새로운 감정도 솟아올랐다. 화면 모퉁이에서 시원하게 뻗어 내린 두 개의 희고 굵은 선이 폭포가 된다는 것이 경이로웠고, (이경윤, 관폭도, 16세기 말) 누런 종이에 뻑뻑하게 올라 있는 초록색의 꽃과 꽃잎이 독특하다 싶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가져갔다.(오가타 코린, 연자 화도 병풍, 에도시대) 괜히 복잡해서 몇 번 들춰 보다 만 서양화의 인물 군상화와 달리 조금 더 고개를 숙이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표정과 손짓을 보게 된 그림도 있었다. (장조화, 유민도, 1943)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고 작게나마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책을 덮었을 때, 기차 안에서 느낀 그 "공감"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이 같은 맥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경윤, <관폭도>, 16세기 말


오가타 코린, <연자화도병풍>, 에도시대
장조화, <유민도>, 1943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동양에서 나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산과 하늘과 강과 바다를 봐왔다. 내가 늘 마주 보던 것은 높고 직선적인 콧대가 아니라 낮고 둥근 콧대였다. 내가 익숙하게 봐 왔던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때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은 더 커진다. 서양화를 보면서 경이로움이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옆에서 경이롭다 한들, 아름답다 한들 내 가슴에 와닿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 반면 익숙한 동양의 모습을 담은 동양화는 자연스럽게 내 가슴으로 와닿았다. 


 동양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 동양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이 "공감"인 것 같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이전에 작품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그럼으로써 감상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