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는 온기

^^

by 감성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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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이유 없이 마음이 먼저 들떴다.

달력을 보며 “며칠 남았다” 하고 세어보던 기억. 학교에서도 괜히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명절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었다.
아이였던 나에게는 한 해 중 가장 큰 행사였다. 까치까치 설날 같은 노랫말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건 세뱃돈이었다.

고개를 몇 번 더 숙이면 주머니가 조금 더 묵직해졌다.
어른들 앞에서 또박또박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말하는 동안
이미 머릿속에는 세뱃돈으로 무엇을 살지 계산이 끝나 있었다.

새 옷도 사주셨다. 빳빳한 옷감이 피부에 닿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평소엔 쉽게 입지 못하던 색깔의 옷이 명절엔 허락되었다.

그리고 음식. 부엌에서는 하루 종일 지글지글 기름 튀는 소리가 났고

전 부치는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평소엔 귀하던 고기 반찬이 그날만큼은 넉넉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배가 부르도록 먹던 시간.
그것만으로도 명절은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그 설렘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절차가 하나 있었다.

목욕탕.

지금처럼 집에서 온수를 마음껏 쓸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명절 전 목욕탕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김이 가득 찬 탕 안에서 엄마 손에 이끌려 앉으면

본격적인 ‘때 밀기’가 시작되었다.

간지럼을 유독 많이 타던 나는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가만히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울리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몸을 비틀었다.

그날만큼은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엄마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야무지게 때를 밀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하루는 정말로 체중이 조금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온몸이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명절의 설렘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떼를 썼던 기억도 있다.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싶었다.

파마를 하면 금방이라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에 힘이 생기고 나도 언니들처럼 성숙해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단호했다.
“머리카락 상한다. 어른 돼서 해.”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명절날, 새 옷 입고, 눈물 물 다 흘리며 울던 아이.

지금 생각하면 참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그땐 그게 세상의 전부였다.

명절이면 큰집과 친척집을 오가며 인사를 드렸다.
마흔 명이 훌쩍 넘는 대가족이 한 집에 모였다.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했고 마루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어른들 웃음소리와 아이들 까르르 소리가 집을 흔들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흩어놓는다. 이제는 그렇게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

목욕탕에서 울던 아이도 파마를 걱정하던 엄마도 모두 시간을 지나왔다.

그래서일까.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가 들리면 괜히 마음이 젖는다.

명절은 그저 명절이 아니었다. 가족이 가장 많이 모였던 날, 내가 가장 많이 웃고 울던 날,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

나의 살던 고향은 명절이 오면 사람 냄새와 전 냄새, 그리고 따뜻한 손길이 함께 떠오르는 곳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감성멘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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