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리뷰)스틸 앨리스

★★★★☆(별점 4개)

by 빵집아들

★★

1. 들여다 보기


영화 스틸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콜럼비아 대학 교수로서 설정되어 있다. 세 아이의 엄마, 능력있는 남편의 사랑스러운 아내,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수. 단 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셋째 딸 라디아 이다. 의대와 로스쿨에 진학한 언니들과는 달리 대학에 입학하라는 앨리스의 의견에 반대하며 배우의 길을 가고자 한다. 이로 인해 모녀는 서로 이야기만 시작하면 다툰다.


그러던 그녀는 신경외과에서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진단받게 되고 이는 곧 그녀가 인생에 걸쳐 이룬 커리어를 그녀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신이 존경받는 대학 교수였다는 사실, 세 아이의 엄마였다는 사실, 남편과의 사랑스러운 추억 모두를 잊어버리게 되고 이는 곧 그녀에게 인생의 상실을 의미했다.


남편과 첫째, 둘째딸은 그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를 원했으나, 셋째 딸 라디아가 간병인과 함께 집에 머물며 그녀를 돌보게 되고, 둘 사이에는 알츠하이머가 미움만을 삭제시킨 채 사랑만을 남긴다.



2. 자세히 보기


1) 상실의 의미

알츠하이머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점차 상실시키는 병이다. 친구와의 추억, 가족과 함께 먹은 식사,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 남편과의 사랑, 자신의 직업을 통해 이룬 업적 등은 모두 기억이라는 형태로 저장된다. 따라서 기억의 상실은 환자의 인생 자체를 상실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주인공 앨리스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커리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의 상실로 인해 자기 스스로 이룬 업적과 경험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게 된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지워지고, 딸들과의 관계에서 엄마였다는 사실이 지워지고, 대학 교수라는 직업 또한 지워지게 된다. 다만 이 영화 속에서 주목할 점은 셋째 딸 라디아와의 관계다. 이야기 전반부에서 나타나는 갈등 요소는 라디아와 앨리스 관계에 존재한다. 앨리스는 라디아에게 대학에 입할 것을 원하나 라디아는 이를 거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배우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러던 중 앨리스가 라디아의 일기를 보게 되는 사건으로 인해 둘 사이 큰 다툼이 발생하나, 그 다음 날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인해 어제 일을 잊어 버리고 되고, 도리어 라디아에게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 말을 들은 라디아 또한 엄마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발생하며 스스로도 엄마에게 미안함을 표현한다.


이 후로 앨리스의 증상이 심해지자, 남편과 언니들은 라디아를 힘들어 하지만 라디아만은 노트북 화상채팅을 통해 앨리스와 자주 연락을 하게 되고 나중에 앨리스 곁으로 돌아와 간병까지 맡게 된다.

남편, 언니와의 관계에서 알츠하이머는 사랑을 지우개로 지워냈지만, 라디아와의 관계에서는 미움을 지워낸 것이다. 미움을 깨끗이 지워내니 그 밑에 존재하던 사랑이 보이게 되었다.


라디아 또한 엄마인 앨리스로부터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2) 안락사의 의미

앨리스의 증상이 아직 심하지 않을 때 앨리스는 자신의 노트북에 셀프 영상을 찍는다. 그 영상의 내용은 자신이 추후에 증상이 심해졌을 때를 대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 안내하는 것이었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연장하고자 노력해 왔으나 이제는 양보다 질을 원하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지만 죽음 만은 스스로가 원하는 형태로, 스스로가 원하는 시점에 죽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인 신체의 자유에 포함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아직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자살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다만 스스로가 동의 및 전문의의 진단 등 엄격한 요건 하에 연명치료를 중단할 권리는 일부 인정되고 있다.


이제 앨리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알츠하이머 진단받기 전의 앨리스는 무엇보다 깔끔하고 품위 있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이러한 앨리스의 품위와 깔끔함을 무너뜨렸다. 권위있는 언어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어 잊어버리기는 기본이며 학생들로부터 교수 평가에서 악평을 받고, 화장실을 못 찾아 바지에 오줌을 쌌다. 인간으로서, 교수로서, 한 여자로서의 품위와 깔끔함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쩌면 앨리스는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하고자 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하는, 즉 자살하는 방법과 능력마저 삭제시켰다.


안락사 및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지속될 것이다. 상상을 더해 보자면 어쩌면 미래에는 자살 보험 상품이 등장하거나, 자살을 하는 방법과 장소를 안내하고 선택하는 회사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3. 나가기

이 영화의 제목은 Still Alice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알츠하이머에 걸릴 지라고 여전히 앨리스는 앨리스라는 점. 인간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앨리스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해 보자. 앨리스는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어린 아기 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을 통해 커리어, 가족 등이 생겨나며 이는 기억으로 저장되고, 알츠하이머를 통해 이러한 기억이 삭제됨으로써 앨리스는 다시 어린 아이와 같이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갓난 애기였을 때, 앨리스의 부모가 그녀에게 Alic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꼭 알츠하이머가 아니였더라도 인간이라면 모두 죽음을 맞이 한다는 점에서...인생은 다 부질없다 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부정적인 해석일까?

다만 앨리스의 기억은 삭제되었을지라도 그와 관계맺었던 사람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Alice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자의 해석이 더욱 마음에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