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왜 내 몫일까?
처제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편의점 4개를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한국 성형외과에 적립해 둔 포인트를 쓰고자 방문했다. 처제로서는 오랜만에 갖는 휴가였으며 쉼이었다. 처제는 중국인이고 이제 막 30대가 되었다.
온갖 성형외과가 즐비한 논현에서 시술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자 젊음의 거리인 홍대로 갔다. 주말 18시의 홍대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한국을 느끼느라 상당히 분주했다.
지하철에서 연남동으로 올라가는 3번 출구를 향해 걷던 중 반가운 고향 사투리가 들려왔다. 20대 남자들 두 명이었고 둘은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둘 중 키가 조금 더 작고 피부가 까만 20대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너 집 얼마에 내놨어?"
키가 조금 더 크고 눈이 좌우로 심하게 찢어진 20대가 대답을 했다.
"6억 5천만 원, 근데 보러 오는 사람이 없네"
신기했다. 40이 넘어서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대화가 더 궁금해졌다. 20대에 자수성가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풍모인데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다시 찢어진 눈이
"근데 6억에 내놓은들 팔리겠냐? 대출 규제 때문에 현금 4억이 필요한데 팔리겠냐고. 서민이 그런 돈이 어디 있냐"
까만 피부가 "이 정부 진짜 웃기다니까. 서민들은 집 사지 말라는 거야 뭐야. 그래놓고 지네들은 주식도 하지마래. 양도소득세도 부과하고."
"그거 발표한 새끼는 자기 자식들 다 유학 보내놓고 자기는 강남 산다며?"
머리가 아팠다. 이들이 얘기하는 건 대부분이 거짓이었고 그 내용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현 정부를 폄훼하기 위한 가짜뉴스들이었다. 고향사투리에서 느껴지던 정감이 날 선 반감으로 변해버렸다.
눈을 감듯이 귀도 닫아지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과 걸음 속도를 조절하며 멀리 떨어져 걸었다. 한숨이 나왔다.
처제가 한국에 오면 주로 먹었던 삼겹살을 먹으며 편의점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그들의 대화는 곧 잊혔다. 자매 간에도 오랜만에 만난 여흥을 푸느라 웃음꽃이 오갔다. 저녁을 먹고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어느 정도 채운 후 우리 셋은 홍대 거리를 좀 더 걸었다.
어느 정도 배가 꺼지고 스마트워치에선 오늘의 목표인 만보를 채웠다고 알림이 올 무렵 저 멀리서 메가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울이었고 주말이라 곳곳에서 집회가 있던 요즘이었다. 대형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앞세운 그들은 점점 우리와 가까워졌다.
"꺼져라 중국인, 중국 무비자 반대, 한국인이라면 동참하라"
처제는 백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그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 장면을 천천히 주시했다. 다행히 그들은 한국말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서 처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왜 미국 국기와 한국 국기를 같이 들고 행진을 하는지 처제는 내게 물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든 그들은 주말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가득한 홍대 거리를 빽빽 소리치며 경찰의 통제 아래 지나가고 있었다.
슬픈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