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27

# 프롤로그

by SayLI

월화수목금요일. 지겨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입 밖으로 뱉어내는 뜨거운 이산화탄소가 가깟으로 숨을 들이 마시는 내 폐 속으로 반복되어 주입되고, 찌그러진 동그라미 마냥 본인은 원치 않은 몸들의 교집합이 가차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사회로 내던져지면서 매번 겪었기에 익숙해야 될 직장인의 적응력도 지하철 출근길에서 만들어진 사회인란 소속의 덩어리 속에서 한사코 거부했다. 어릴 때 상상하던 사회인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몸소 고생이란 고생은 전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다니는 나의 월급에 달려있는 쥐꼬리가 그 증거일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출근길에서 생각 끝에서 험난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가자 얼굴에서 짜증을 말했다. 언젠가는 1등 복권에 당첨되어 토요일의 기쁨으로 꼭 퇴사하고 말지리.

그래도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내리는 역 앞 가까이에 위치했다는 딱 한 가지 장점으로 인해 발걸음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이러한 장점조차 없었다면 아마도 욕쟁이할머니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욕설을 20대 후반의 나이를 꾸역꾸역 먹어서까지 소지하고 있을 게 뻔했으니까. 진즉에 10대 시절 입에 가득 물었던 걸레를 빨고 삶아서 새하얗게 해놓길 참 잘했다고 내 자신을 칭찬했다. 이젠 과거가 된 10대에는 욕설이 생활화였지만 세월이 지나 20대인 지금은 사회생활에 찌들어버린 한량한 직장인만 남았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마음에는 절대로 없는 말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터득한 거짓된 미소와 함께 날렸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층 성숙해진다는데, 나는 먹고 살아가기 위한 고도의 잔머리만 점차 늘어갔다. 사실은 ‘어제와 같이 너무나도 힘든 아침입니다.’라고 말한 뒤에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퉷!’하고 뱉어야 나의 현재 기분 상태와 상당히 맞아 떨어지겠지만. 현재 홀로 자신을 책임지는 1인 가구에게 처해져 있는 여러 현실들과 억지로 타협했다.


“오, 평소보다 목소리가 좋은데? 좋은 일 있나봐?”


“아니요 좋은 일은요. 평소랑 같아요.”


사람 속도 모르면서 눈치를 아침밥과 함께 꼭꼭 씹어 먹어버린 듯 양쪽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묻는 박주임이었다. 입사동기지만 나보다 2살 많은 이 남자는, 평소에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해서 회사 내 여자직원들의 기피대상 1순위란 위치를 지키는 것과 다르게 자신의 몫은 누구보다 잘 해내는 사람이다. 제일 골칫거리인 눈치를 일처리 능력과 등과교환을 했는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도 없지만. 그런데, 하필 또 이 남자가 바로 내 옆자리인지 난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행운을 위해 네잎클로버도 찾아둔 노력에 비해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는 아주 구슬픈 생각이 키보드에 닿는 손가락 끝에서도 느껴졌다.

켜진 바탕화면에 대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흩어져있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뜬 메신저창에는 예상치 못한 ‘2’라는 숫자가 띄어져 있었다. 아직 업무시간이 아닌 출근시간대임에도 벌써부터 쌓여있는 업무가 있는가 싶은 생각에 침을 꼴깍 삼키며 마우스의 왼쪽을 손가락에 힘을 실어 눌렀다.


[얘들아, 오늘 맥주 마시자!]


[싫어. 난 어제 회식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혼자 마셔.]


메신저창 속 내용을 읽자 온몸에 잔뜩 실려 있던 긴장이 근육이완과 함께 쭉 빠져나갔다.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바닥에 붙은 껌딱지처럼 붙어먹은 두 여자들이었다. 아침부터 술 얘기를 할 정도라니 어지간히 이 둘도 나처럼 일하기 싫은 모양새였다. 칼 같은 답장이 아주 잘 나타냈으니까. 나는 이들의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업무를 처리할 때보다도 키보드 자판 위에 올린 손가락을 더욱 성심껏 움직였다.


[금요일이잖아. 맥주보다는 삼겹살에 소주 먹자.]


[역시, 먹는 거에는 뇌가 빨리 돈다! 나는 소주도 좋아.]


[야, 배수진.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어제 회식도 엄청 기름졌다고!]


[그냥 먹어! 다른 것도 아니고 고기인데?]


키보드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메신저들 사이에서 잊혀져버린 난 크게 불난 집 구경하는 사람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불난 건 멀리서 지켜봐야 재밌는 법이다. 그렇게 출근시간은 한참 전에 지나고 업무를 시작해야 된다는 사실조차 까먹었을 정도로 이 두여자들의 저녁메뉴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에 집중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에서는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그만 소리로 실실거렸다. 질세라 치고 올라오는 메시지도 겉포장지만 어른이었지 열일곱 고등학생 때와 다를 바 없이 그대로였다. 철들라면 아직 멀었나 보다.

주의한다고 노력한 작은 동작들이 무색해지게 실실거리며 웃은 소리가 파티션 담벼락을 언제 넘어갔는지 옆자리에서 일하고 있던 박주임이 내 어깨를 두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지레 놀라 움찛 하고서는 앉아있는 의자에서 삐걱거린 소리가 날만큼 어깨를 들썩거리다 고개를 휙 돌렸다. 놀란 나머지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몸동작을 한 나를 의심의 가는 눈초리로 뚫어져라 본 박주임이 말했다.


“뭐 그렇게 놀래? 어제 요청한 자료.”


얼떨결에 직장생활 메뉴얼대로 입이 ‘네’라고 대답해 버렸다. 딱딱한 대답 후 찾아온 창피함은 나의 몫이었다. 박주임은 뭔가 수상하다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자료를 천천히 건네주고는 느리게 자신의 모니터 쪽으로 의자를 고쳐 앉았다. 놀란 가슴이 박주임을 곁눈질하고서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자 손바닥으로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에 당연한 반응처럼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지금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는 별개로 눈동자의 초점은 재빨리 모니터를 향해갔다.

박주임에게 자료를 건네받고 있던 그 찰나의 시간에 이 두 여자가 스크롤바를 힘을 주고 끌어내려야할 정도로 메신저창에서 꼬리를 물고 늘어놓기까지 했다. 중간에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말 궁금했으나 이걸 다 읽을 정신이 지금은 없어서 마우스로 창 스크롤바를 잡고 맨 끝으로 쭉 끌어내려 내려 가장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만 찔끔 확인했다.


[늦지 마!]


말풍선 가장 마지막에 남은 해맑은 느낌표가 마무리 했기에 굳이 답장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그들과의 아침 댓바람 메신저 대화 때문일까? 이제는 일을 시작해야하는 시간이라는 걸 생체리듬을 저장한 몸이 알아서 준비자세를 취했음에도, 뭘 해도 항상 즐겁고 재밌게 재잘거린 10년 전, 신나는 일, 거침없는 말할 수 있던 열일곱살 소녀가 27살 어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메시지의 위력은 참으로 컸다. 아니라면 일하기 싫은 장기집중력이 저하된 거라든가 말이다.

사무실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처럼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자료에 집중하는 것조차 이 시간을 살고있는 나에겐 어려웠다. 열일곱살 때처럼 들떠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에 출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서 빨리 퇴근이 하고 싶다. 지금이 오후 6시가 아니라는 현실이 야속할 뿐. 오늘도 어른은 못 되는 그 아이가 어떻게 해서라도 초단위로 밀려들고 있는 업무를 손에 받아 들게 된 자료대로 일처리를 해야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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