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27

# 열일곱 첫 학기(1)

by SayLI

아직은 겉옷을 벗기엔 살갗이 차가운 조금 이른 봄이었다. 반배치고사를 치르러 왔던 날 외에는 오늘이 첫 등교인 셈이다. 그렇기에 여기 고등학교에 조신하게 고교데뷔를 하는 중이다. 3년 동안 지겹게 입은 중학교 교복을 벗어던졌나 싶었더니 새로운 고등학교 죄수복으로 갈아입게 되어 언짢기는 했지만, 중학교 교복에 비해서 무난한 남색, 위아래 통일된 교복에 어두운 베이지색의 조끼는 그나마 촌스러운 색상 배치는 아니라 사실상 다행이었다. 빨간 넥타이가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좋게 말해서 궁극의 포인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난한 교복에 비해 1지망으로 온 학교 건물 모양은 어째서 ‘ㅁ’자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첫 날 지각이라는 상상의 나래에 오래가지 못했고, 곧 상상은 가야될 교실을 찾다가 길을 잃고 지각만 안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금세 가득해졌다. 일찍 출발했음에도 지금 시각에서 지각까지 15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반 배정 결과를 학교에서 안내문과 함께 긴 장문의 문자로 보냈었다. 행운의 숫자인 ‘7’이라서 자주 까먹는 나에게는 편하게 외우기 쉬워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중학교와 달리 학년이 낮을수록 계단을 덜 올라가도 되는 기쁨도 주어서 나의 맘에 들었다. 왜냐하면 힘든 아침부터 산을 등산하듯이 많은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동화에서 실내화로 바꿔 신었다.


“7반... 7반..이 어디야? 짜증나게. 아, 저기다.”


학교가 독특한 ‘ㅁ’자 구조인 탓에 층을 올라와서도 운동장 돌 듯이 몇 바퀴를 빙빙 돌다가 다섯 개의 교실 팻말이 늘어서 있는 복도 앞에 서게 되었다. 맨 끝까지는 아니었으나 그 가까이에 있었다. 오늘은 더 이상 교실을 향해 운동할 필요는 사라졌으나 나중에 지각하게 된다면 내 짧은 다리로 전력질주를 한다고 쳐도 지각은 확정이었다. 내 연약하고 짧은 다리에게 왜 긴 다리를 가지지 못해 이보다 더 빨리 걸어가지 못하냐고 슬픈 한탄을 하며 힘이 잔뜩 빠진 채 복도를 타박타박 걸어갔다.

교실 문으로 다가가는 힘 빠진 발걸음이 갑자기 올라오는 긴장감에 잠식 되어갔다. 나는 목구멍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 발은 점차 가까워지는 7반으로 최대한으로 실내화를 질질 끌어대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문이 뻑뻑한지 한 손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아 결국 두 손으로 낑낑대며 뒷문을 밀어 열었다. 드르륵 소리 너머로 열린 문으로 앞으로 매일 볼 7반의 풍경이 보였다. 같은 반 애들인지 아니면 다른 반에서 놀러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애들이 둘러 앉아 떠들면서 온갖 자세로 뒤쪽에 몰려있었다. 문소리에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에 ‘너무 쳐다보는데?’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다가 개의치 않고서 앉을 만한 자리를 스캔하듯이 탐색하며 걸어 들어갔다.

교탁 앞자리는 선생님들과 눈 맞추며 수업을 듣기에 부담되는 자리, 창가자리는 명당이지만 일명 노는 애들의 고유 지정석이었다. 학교에서의 서열상 나의 위치를 생각하며 부담스럽지 않고 선생님이 나를 찾지 않을 자리를 탐색한 결과로 2분단 3번째 자리가 나에게 적절한 자리라고 판단하였다. 이 자리라면 앞자리 애들로 나 정도는 가려지겠지. 빠르게 가방을 책상 옆 가방걸이에 걸고서 익숙해져버린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겉옷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자습시간에 읽으려고 가져온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로맨스 소설도 챙겨서 가져왔지만 벌써부터 꺼내 읽기엔 그만큼 착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자습은 하지 않고 한창 떠들고 있는데 굳이 벌써부터 읽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말이 자습이지 이거는 등교시간 지나 아침자습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 등교시간 지나면 알게 될 담임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엄지손가락 지문이 닳아버릴 정도로 핸드폰을 할 거다. 학교엔 잔소리할 엄마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하영, 넌 연락도 안 해? 그 학교가 좋아?]


다른 학교로 도망간 조하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늘부터 배신자가 된 친구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애는 새로 간 고등학교가 좋은가 보다. 평소에는 빠르게 오는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로써 중학생의 절친생활을 청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선 금방 사라지던 말풍선 옆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 핸드폰 타자기를 치고 있는 손에서 머물고 있는 섭섭함은 숫자 ‘1’과 같은 처지였다.

뒷문과 달리 교실 앞문에서 매끄러운 소리가 나면서 담임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종치기 전 등장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미동도 없는 얼굴은 큰 보폭으로 교탁으로 직행하셨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걸음에 떠들고 시끄럽던 애들은 일사분란하게 각자에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교탁에 서신 선생님의 근엄한 얼굴을 유심히 보다 어디에서 본 듯 굉장히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 문득 생각하였다. 선생님은 교탁 앞에 서서 양손으로 교탁 양 끝을 잡고서 목을 빼시고는 첫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7반 담임이다.”


기강을 잡으려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는데, 숨은 듯 아득한 기억 속을 더듬어보니 낯익은 그의 얼굴이 중학교 1학년 이후 전근을 가셨던 나의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셨다. 밝은 피부톤에 동그란 얼굴형, 살짝 올라간 눈꼬리, 한국 남성 표준 키를 가지신 선생님이 중학교 근처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담임선생님과 제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이곳으로 선택하여 온 이유는 집에서 가깝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뿐인 1지망 학교였는데 운명이란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칠판 앞에서의 선생님은 뒤로 돌아서 마커펜을 앞뒤로 여러 번 딸깍 흔들어서 칠판에 자신의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를 칠판이 탁탁 소리를 내도록 펜촉을 사용해 적으셨다. 거기에 이메일은 덤이었다.


“내 이름은 박진석이다, 담임이 국어 담당이니 못하는 과목이 있어도 그게 국어가 되면 안 된다.”


중학교이 된 첫 날에 들었던 선생님의 말씀과 분위기를 똑같이 재현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로 신기했다. 뵙지 못했던 선생님은 중학교 담임선생님 때 그대로셨다. 그런데,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국어는 진짜로 못하면 골로 갈 수 있다. 뒷말은 농담 아닌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니까. 경험이란, 학교생활에 필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선생님을 처음 접한 다른 애들은 긴장한 상태지만, 반대로 선생님을 두 번째 경험하는 나로서는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적응하는데 있어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다른 애들은 핸드폰으로 칠판을 찍거나, 적고 또는 서로 친해진 애들끼리는 찍은 걸 나중에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소란스러운 교실과 달리 선생님은 능숙하게 물세척기 버튼 하나로 적혀있던 글씨를 지우시고는 곧바로 여러 개의 네모를 그리셨다. 손가락으로 직접 그리신 하얀 선 네모의 개수를 확인하신 선생님은 그리신 네모 안에 순서대로 각 숫자를 적어 넣으셨다.


“내가 우리반 이름을 외우기 전까지는 번호 순대로 앉고, 달에 한 번씩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할거야. 자기 번호는 앞으로 나와서 확인하고.”


어디에다가 적어 두셨는지 토씨 하나 다른 곳 없는 두 번째 1학년 때 들은 똑같은 대사에 선생님들은 각자 자신만의 대본의 존재여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1학년에도 이렇게 재탕하실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전달해야 할 안내사항은 모두 말씀하셨는지 팔짱을 꽉 끼시고 칠판에 기대 서 계셨다. 애들이 떼거리로 앞으로 몰려 나가는 모습에 나 또한 애들을 따라서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책상에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켜 쪼르르 따라갔다.

애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틈을 주지 않아 내 번호를 확인하는데 있어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내 번호가 21번인 것만은 잽싸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 남녀로 번호를 나눈 방식이 아닌, 그저 가나다순으로 번호 배정이 된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쏙 들었다.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들고 21번 자리인 3분단 세 번째 왼쪽자리로 가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앉았다.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 봐도 되나요?”


“그래, 궁금한 건 뭐니?”


“세자리가 비어 있는데요. 그대로 앉으면 되나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꼭 나서서 물어보는 애가 한 명씩은 있다더니 우리 반은 쟤였다. 선생님은 질문을 한 애에게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다.


“빈자리는 파란반 아이들 자리고 가끔 반으로 수업 들으러 올 거야. 알겠지 지훈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고로 지훈이 네가 임시반장이다.”


빈자리에 대한 저 아이의 궁금증은 임시반장이라는 직책을 떠안게 만들었다. 첫 날부터 튀는 행동을 했다는 건, 선생님의 눈에선 선량한 먹잇감으로 딱이기는 했다. 안쓰럽다고 아주 조금 연민을 느꼈지만 나만 아니면 됐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빈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실은 궁금하면서도 신경이 좀 쓰였기에 막힌 부분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앞장서준 지훈이라는 저 애가 해결해 준 셈이었다.

선생님은 지훈이 강제로 맡게 된 임시반장이라는 임무에 당황스러워 입을 차마 떼지 모습을 반 애들이 웃는 소리에 숨어 보지 못한 척하셨다. 그리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을 눈빛과 말 한마디로 단번에 침묵 시키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가방 속에 있는 두꺼운 책을 소중히 꺼내 지성인인 척하며 종이를 넘겼다. 덜 정리된 자습시간에 책을 펼친 순간부터는 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판타지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이었다.


***


머리, 배, 다리. 온 몸에 골고루 분포되어 저장된 내 살은 뜯고, 뽑고, 태우고 싶을 심정이지만 남의 살은 아주 맛있어서 살짝 설렜다. 곧 영접하는 삼겹살님께서는 집에서는 냄새가 골칫거리고, 노동의 값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밖에서 혼자서 사먹기에는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처럼 보일까 봐 혼자서는 삼겹살님의 그림자까지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언제부터 사람들 시선을 신경을 쓰고 사는 어른이 되었을까? 어딘가 슬퍼지는 택시 안에서 보내고 있는 20대의 삶이었다.

택시를 타고 수빈이가 보낸 주소로 맛있을 설렘을 안고서 도로의 차들을 지나쳐 가고 있는 길에 잘 울리지 않는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진동 울렸다. 주머니에서 꺼내 본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서는 망설이기보다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 독촉하려고 전화했지? 너가 고등어야?


- 아니, 받자마자 성질이야. 죽을래? 어디쯤 왔는데?


발신자는 두 여자들 중 또 다른 한 명인 소현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기까지 아슬아슬하겠지만 여유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녀의 머리에서 내가 약속에 늦는다고 판단한 듯 그새를 못 참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는 게 그녀를 올해까지 10년 이상을 본 내가 내린 추리였다.


- 나? 여기 근처 다 왔어. 곧 도착 예정. 그런데 왜?


- 고기 올릴 타이밍 재려고. 너만 안 왔어.


- 곧 택시 내려. 고기 절대 태우지 말고. 끊어!


전화를 걸은 건 소현이지만 빨리 끊어내기 위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질도 급한 애가 힘들어 죽겠는데 뛰어 오라고 닦달할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뻔히 꿰고 있기도 했고, 마음만 더욱 급해지기에 이것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도착만 한다면 바로 젓가락을 들 수 있다는 행복한 소식을 전해 들어서 너무 기뻤다. 이게 별거 아닌 사소한 행복인가 보다.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에서 내려서 본 삼겹살집 앞에는 사람들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난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크지 않은 가게에는 바깥과 맞먹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다. 무슨 개미떼를 개미굴이 아닌 이 곳에서 마주한 줄 알았다.

주위를 살펴 그 두 여자가 어느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는지 눈알을 열심히 굴려가며 찾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휘황찬란한 염색을 한 수빈이가 눈에 꽂혔다. 탈색해야 나오는 주황색 머리는 넥타이를 풀고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신은 자유를 만끽하는 프리랜서라고 광고를 했다. 그래도 그덕에 굉장히 쉽게 그녀들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로 인해 좁아진 통로를 힘겹게 뚫고 나서야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에 안전하게 착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앉은 자리에서는 가게 입구로 시선이 갈 정도로 너무 잘 보였다.


“여기 유명한 집이야? 밖에도 사람들 줄 길게 서있더라?”


"맛집으로 소문났잖아. 그런데, 늦게 와서는 혀가 길다?”


소현은 나를 보자마자 늦었다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는 수영 후 먹먹한 물이 빠져 나오는 것처럼 흘려 빼 버리면서 수빈에게로 말을 돌렸다.


“수빈아, 너 오늘 마감 아니야? 멀쩡하게 왔네.”


“센스 없게 마감이란 단어 꺼내지 마아! PTSD 올 것 같아!”


심기를 건드렸는지 투정을 부리듯 수빈이 나에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 이후 곧바로 웹툰작가로 데뷔하고부터 수빈은 예민해진 구석이 몇 군데 생겼다. 마감에 쫓길 때에는 마치 사람이 아닌 영혼을 뺏긴 좀비처럼 행동하기도 했기에 마감 때는 어지간하면 만나지 말자는 암묵적인 규칙도 생겼다. 그 이유는 궁지에 몰린 좀비에게 직접 물려보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는 일도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수빈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끼었다. 분명히 마감 때의 수빈은 일을 위해 무언인가에게 그림과 자신의 인간성을 맞바꾼 것이 틀림없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니니깐.


“마감 직전까지 피디님한테 쪼였대. 너무 불쌍하지 않니?”


상추 위에 고기와 파채를 얹고 있던 소현이 수빈을 한껏 놀려보겠다는 심보가 누구나 알 만큼 티를 내며 나에게 맞장구를 치라는 압박적인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그 눈빛을 읽기도 전에 수빈이 한 발 먼저 반격했다.


“너는 어제 회식 기름졌다며! 그 정도면 동족포식이야!”


“야, 고기님 듣는다. 그 입 닫고, 먹기나 해.”


소현은 복수심에 날아온 일격을 예상보다 아주 손쉽게 방어하고서는 완성된 쌈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수빈은 단단한 방패를 가진 소현을 쓰러트리기에는 항상 역부족이었다. 이 둘을 비유하자면 미국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가 바로 떠오른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형식이 꽤나 비슷했다. 그 모습에 난 고개를 살짝 돌리고서 목구멍에 낑겨 있던 웃음보를 참지 못하고 한꺼번에 터트렸다.

이들과도 벌써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10년을 넘긴 오랜 친구이기에 말로 투닥거린다고는 해도 진심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눈치였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이 또한 가능한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보를 열심히 터트리고 있는 사이에 고기를 하이에나처럼 집어 먹는 저 둘에게 자칫하면 밀릴까봐 나도 얼른 젓가락을 집어 들고서 경쟁적으로 고기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새삼스럽기는 한데, 우리 친해진 것도 신기하지 않아?”


먹음직하게 구워져 갈색 빛을 띈 고기를 어금니로 무자비하게 씹으면서 내가 물었다.


“쟤가 말 걸었잖아! 학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서!”


“벌써 10년이나 됐네. 우리 이제 절교해도 이상하지 않을 연차다. 이거 먹고 서로 빠이빠이해?”


수빈으로 만족이 안됐는지 고기 굽던 집게로 고기 한 점을 집어 들고는 나까지 놀리려고 했다. 그런 장난스러운 소현의 말에 수빈이 ‘콜’을 외치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박이 터지도록 웃어 재꼈다. 배까지 잡고 웃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 둘은 나와 웃음코드가 조금 다를 수도 있으니 그렇구나 하기로 했다. 한술 더 떠서 수빈은 너무 웃어서 숨이 부족했는지 팔락거리는 손짓까지 풀세트로 이어서 했다. 숨을 쉬고 있는지는 나로선 잘 모르겠다.

웃을 건 다 웃은 소현은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가다듬고서 이제는 진정이 된 모양이지 다시 하던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본론에 대해서 잠시 골똘히 생각해 주었다. 그런데, 옆에서 숨 쉬는 걸 깜빡 잊고 터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수빈이 어느새 한 발 먼저 목을 가다듬었던 소현보다 먼저 떠올리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 반 단체사진 찍은 날, 동산에서 얘가 말 걸었어.”


“3년 내내 똑같은 배경으로 단체사진 찍어다가 복도에 걸어놨잖아.”


잊고 있었던 단체사진의 배경을 소현과 수빈이 말에 물꼬가 트인 모양인지 젓가락을 들고서 그 얘기로 재잘거렸다. 벚나무로만 채우듯이 심어 놓아서 학교가 온통 연한 분홍색으로 채워진 그 장소를 말이다. 정확하게는 하얀색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온 은은한 연분홍색이였다. 소현이 말한 '배경'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금세 볼빨간 열일곱살 고등학생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운 말로 절교라는 말이 나왔으나 서로가 그 날, 벚나무 밑을 떠올렸다면 빠이빠이하는 절교는 힘들 것이다. 분홍색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 장소. 둘이서 얘기하던 걸 주의 어른들의 소리. 그리고 어른의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있었던 우리반의 단체사진은 갓 뽑아내 천천히 드러나고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마냥 현대 사회 밖으로 서서히 드러나게 했다. 27살 안에 살고 있을 열일곱살이었다.


***


“사고치지 말고, 질서 유지해서 내려가라. 부르면 모이는 걸로. 해산!”


쉬는 시간, 선생님께서 익숙해져 가는 반에 걸어둘 단체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 반 아이들에게 본론만 말씀하시고는 발의 방향을 교무실로 바꾸셨다. 적극적이지 못한 나는 다른 애들과 조금 이야기만 해봤을 뿐이지 아직까지도 친구라고 말할 애들이 없었는데, 같은 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애들은 벌써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그 모습에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면서도 한켠으로는 씁쓸했다. 어쨌든 사진을 찍으러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애들 사이로 나 또한 사진 찍는 장소로 가기 위해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3월 말을 지나 4월 첫 주를 지나가는 시점이라서 그런지는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내려온 학교 내 동산이라 불리는 조그만 장소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교실 창문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던 벚꽃과 다르게 위로 쳐다본 벚나무는 연한 분홍색 구름이 가득했다. 연한 구름같은 벛나무 밑에서는 꽃을 꺾어서 손에 들거나 귀에 꽂기도 하면서 핸드폰으로 친구들 끼리 사진 찍는 애들이 보였다. 하지만 혼자인 난 벚꽃 구경이랍시고 세렝게티의 사자처럼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꽃은 예쁘네.”


“그치? 같이 사진 찍을래?”


언제서부터 가까이에 있었는지 모를 애가 내가 한 혼잣말에 원래 대화했다는 듯 대꾸했다. 일자 앞머리에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어 귀신인 줄 알고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서 대답까지 몇 초의 침묵이 있었지만,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이 아이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내 말 끝나기 무섭게 손목이 잡고 훅 끌고 갔다. 그렇게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몸은 생각했다. 손목 멍들 것이다, 백퍼센트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끌려가는 중에 지금 이 얘가 나와 같은 반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실 친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으면 남의 얼굴을 잘 외우지 않아서 얘가 같은 반인지 몰랐다. 같이 잡혀 끌려가던 발뒤꿈치로 걸음을 멈추고 내가 손목을 잡고 있는 긴 생머리 여자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 몇 반이야?”


“너랑 같은반인데? 설마, 나 몰라?”


자신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누군지 모르겠다는 물음에 미세하게 찌푸려진 미간과 당황한 걸 티내지 않으려한 것과는 다르게 당황한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음이탈이 났다.


“내가 얼굴을 잘 기억 못해서...”


관심이 없어서 얼굴을 기억 못한 일을 인지문제로 얼버무렸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모른다는 말이니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싶어서 하던 말을 빨리 덧붙였다. 덕분에 다행이도 입을 열려던 저 얘보다 먼저 말을 가로챌 수 있었다.


“친하지 않으면 기억을 잘 못해서.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아니야, 같은 반이라고 알거라 생각한 내 잘못이지. 난 윤소현.”


“은지, 신은지...”


세탁소에서 오른쪽 가슴에 깔끔하게 박은 초록색 명찰을 가리키며 이름을 얘기했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알려주는 간단한 자기소개 후에 맞대고 있는 서로의 얼굴을 향해 웃고 말았다. 소현은 웃음이 마무리 되어가는 나에게 가볍게 물었다.


“저쪽에 배수빈이라는 애도 있는데, 재랑도 같이 찍자. 괜찮지?”


저돌적인 대쉬에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멋있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런 나에게 소현은 저쪽이라는 손짓을 하고서 수빈이라는 애가 있다는 벚나무 앞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아까 전에 손목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뼈가 으스러진 것만큼 아파왔다. 이거 백이십퍼센트로 멍들 것이다.

몇 걸음, 두 세걸음 더 걸어가자 자신을 소현이라고 소개한 동그란 입에서는 ‘배수빈!’이란 이름을 크게 소리치며 한 손은 위로 공기를 휘저어댔다. 손을 휘저은 방향으로 보이는 곳에는 핸드폰으로 자신의 얼굴에 귀엽고자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표정을 곁들여 연신 찍어대다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손을 번쩍 들고 좌우로 흔드는 단발머리 여자애가 있었다.


“야, 네가 토끼같이 예쁘다고 했던 걔. 사냥 성공했어.”


나를 마치 한 마리의 사냥감, 자신을 그걸 잡은 위대한 사냥꾼마냥 수빈이라는 애에게 말했다. 멋지다고 잠깐이나마 생각한 거는 취소다. 하지만, 토끼같이 예쁘다는 말은 내 어깨에 뽕을 넣은 만큼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긴 했다. ‘예쁘다’는 말 한마디는 언제 들어도 만족스럽고, 기분이 좋고, 짜릿했다. 비유된 동물이 귀여운 토끼임에 좋은 애들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지었다. 칭찬하는 애들 중에서 나쁜애들은 없으니까 말이다.


“신은지래, 은지.”


“토끼 같은 애가 이름이라도 별로여야지! 이건 설정과다야!”


“이건 좀 인정. 심지어 피부도 하얗고 좋아.”


이렇게 둘이서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다면 사진은 고사하고 끝이라곤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은 어디서 찍으려고?”


“여기에서도 꽃은 다 찍혀. 그리고 어차피 포토샵 할거야.”

소현은 내가 돌린 주제에 주저하지 않고 쿨하게 답했다. 이 대답에서 할 말을 다 하는 스타일임을 파악했다. 하긴 ‘ㅁ’ 건물 가운데 있는 빈 공간에 만들어둔 작은 정원 같아서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 간에 별 차이는 없었다. 벚꽃은 이쁘지만. 물론 배경에 딴 애들이 같이 나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혼자 쓰는 곳이 아니기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핸드폰 카메라 앵글 안으로 셋이서 귀에 벚꽃 뭉치를 하나씩을 꽂고서 바짝 모였다. 여러 가지 컨셉으로 다양하게 포즈를 취하고서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여러 장을 찍다가 마지막엔 서로 얼굴에 손으로 꽃받침을 해주고서는 핸드폰 카메라 셔터소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사진 잘 나왔다. 필터가 좋은 거야 핸드폰이 좋은 거야?”


“필터는 사랑이라고 내가 아까 말했잖아! 포토샵 한다고 필터 무시하더니!”

“야, 내 포토샵 능력도 필요하거든? 이게 끝이 아니야.”


둘이서 자신의 공이 사진에 더 들어갔다며 서로간 공의 우열을 겨루었다. 의도치 않게 그걸 구경하게 된 나는 웃음이 너무 웃어 배가 아프다고 느껴지도록 나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둘의 입씨름이 톰과 제리를 연상시킨 것도 한 몫을 했다. 고등학교에 온 기간 중 처음으로 크게 웃어 본 순간이었다.

소현과 수빈은 자신들을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보면서 ‘왜 저래?’가 담긴 눈으로 나와 서로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하지만 서로의 행동을 자신이 바라보는 건 불가능하니 나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귀로 들려 온 소리에 내 웃음소리가 순간 끊겼다.


“애들이 떠드는 거랑은 다른데? 허당끼가 있어.”


귀를 타고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소현의 한 마디에 나는 온 몸에서 물음표가 뜨는 경험을 했다. 애들이 뭘 얘기 했다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왜? 나에 대해서 뭐가 있어?”


내가 궁금해하자 수빈은 티 없이 해맑게 말했다.


“순하게 생긴 애가 생각보다 기가 세다고 지들끼리 얘기하던데?”


“내가? 기가 세다고 했다고?”


“담임이랑 면담하고 나온 애들 다 겁먹었는데, 너만 웃었잖아!”


“다른 애들은 귀신 본 것처럼 마냥 파랗게 질렸었잖아. 그래서 나온 얘긴가 봐.”


이건 담임선생님의 학생 면담을 했을 때 이야기였다. 반 애들은 번호 순서대로 선생님과 개인 면담을 위해서 차례대로 불려나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애들 얼굴이 비장하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과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선생님과 ‘쌤이 또 담임이 되실 줄은 몰랐어요.’와 같은 말을 순서대로 나열해 가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과 고등학교에서의 첫 면담을 했다. 선생님 또한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별다른 사항들에 대해 묻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동안 나의 안부를 묻고는 오래 잡아두지도 않으셨기 순조로웠던 면담은 더욱 빨리 끝이 났다. 그런데 일상적인 내용을 알리 없는 입에서 입을 타고서는 진실과는 전혀 멀고도 다른 내용으로 와전되어 버린 것이다.

선생님의 상담이 어떤지는 중학교 1학년에 겪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네용이 되었는지는 대충이지만 이해했다. 하지만 얘깃거리가 됐다는 사실은 기분이 별로였다. 창작의 소질을 가진 애가 누군지 찾아다닐 성의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기 쎈 애로 만 든 사실은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만일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전부 부셔버리겠어.


“그래도 너한테 말 걸어보길 잘했어.”


“내가 먼저 말했잖아! 내 선경지명이 힘을 발휘한 거야!”


수빈의 얼굴에는 뿌듯해하면서도 의기양양함을 여과 없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의견이라는 사실을 피력했다. 그런 얼굴을 바로 옆에서 본 소현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그럼 뭐해? 너는 말도 못 걸었는데, 겁쟁이는 그 입 닫아.”


또다시 톰과 제리가 연상되는 대화 속에서 이들과 친해진다면 학교생활이 지루할 일이 생길 틈은 존재하지 않겠다고 확신했다. 지금만하더라도 상상조차 안 한 재미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지경인데, 앞으로는 신박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개그들이 펼쳐질지 굉장히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얘네랑 같이 다닌다면 아마 지루함을 못 느끼겠지.

마무리를 짓지 못한 둘을 구경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벚꽃이 만개한 동산이 떠나가라 크게 소리치시며 7반 모두를 부르셨다. 선생님의 부름에 결국 둘은 강제적 휴전상태에 들어갔고, 내가 턱짓으로 소현에게 누구의 승리인지를 묻는 신호를 보내자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선생님이 정하신 벚나무 아래에서 남녀로 나눠 키가 작은 순서대로 앞부터 자리에 앉거나 서게 되었다. 나는 중간 정도의 164cm의 키의 소유자여서 2번째 줄에 서게 되었는데, 키가 작은 수빈은 첫 번째 줄에서 쭈구려 앉아야만 했다. 내 옆에 나란히 있던 소현은 수빈이의 뒤에서 ‘작은 키가 더 작아져서 어떡해?’와 같은 말장난으로 계속 놀려댔다. 수빈은 지기 싫어 받아치며 얼굴로 씩씩거렸다.


“자, 찍을게요. 하나. 둘. 셋. 김치~”


사진을 찍어 주시는 다른 반 선생님께서 한 박자 늦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흩날리는 벚꽃잎들 그리고 사진을 위해 미소지은 선생님과 즐거워하는 학생들이 모여 32명의 7반 단체사진이 한 장이 바람을 탄 순간을 포착해 찍었다. 그렇게 우리 세 명과 함께 7반의 단체사진은 선생님이 정한 급훈과 같이 한 액자에 넣어졌다. 그 뒤로는 1년 동안 내가 속한 7반 교실 앞에서 움직일 일은 아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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