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

by diletantism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과거의 사실’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묻는 일이다.


나는 역사를 말하기 전에 반드시 ‘문(文)’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알아야 사를 볼 수 있다.
글이란 기록이며, 기록이란 해석이다.
따라서 글을 다루지 못한 채 역사를 논하는 것은,
남이 쓴 각본 위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문(文)을 거쳐야만 비로소 사(史),

즉, 역사의 층위와 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사’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서사의 구조 속에서
누가 쓰고, 누가 지워졌는가를 보는 시선이다.

결국 사를 넘어 철(哲)에 닿는다는 것은,
그 모든 기록과 해석 위에 놓인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는 일이다.
이 순서 없이 철학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문을 모르면 사를 오독하고,
사를 모르면 철은 뜬구름이 된다.


그래서 나는 ‘문사철’이라는 오래된 말이 단순한 학문 구분이 아니라
사유의 단계라고 믿는다.
글을 통해 세계를 읽고,
역사를 통해 인간을 보고,
철학을 통해 스스로를 본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 구조를 가장 적절히 보여준다.
그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한 문장을 더 덧붙이고 싶다.


“그 대화는 글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결국 ‘승리자의 역사’를 아무 의심 없이 객관의 이름으로 숭배하는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기록을 해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기록 속에서 자기 입장만을 숨긴 자들이다.


그들은 경전을 연구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이미 권력의 신학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셈이다.


진짜 역사는 말하지 않는다. 진실된 역사라고 울부짖으며 역사학자가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히드라처럼 침을 튀겨도 아닌건 아닌것이다. 항상 사료들의 비교 검정만이 비로소 진실된 역사에 '가까워'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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