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는
왠지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은 식민지 역사 때문인지 감정적으로 불편했고,
중국은 요즘 한국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 보니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영국에 와서 살아보니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그냥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금세 가까워지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중에 친한 중국인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이름은 아밀리아.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랍니다 �
얼마 전, 코로나 이후로 오랜만에 아밀리아를 만났어요.
예전처럼 카페에서 앉아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 이야기가 시작됐죠.
지난번에 내가 추천해준 ‘미스터 션샤인’을 봤다며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하던 그녀.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 남자친구랑은 어떻게 됐어?”
그랬더니 갑자기
“우리, 봄에 결혼했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헉!
“와~ 축하해!”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녀의 다음 말이 저를 멈칫하게 했어요.
“근데 우리 모든 걸 반반씩 내.
카운슬 텍스, 장보기, 생활비, 심지어 이번에 가는 여행 경비까지 다 반반.”
정말 놀랐어요.
“결혼한 부부가… 모든 걸 반반씩 낸다고?”
이게 당연한 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죠.
“옷은 사줘?” 하고 물어봤더니
“아니, 각자 필요한 거 사.”
“남편은 옷도 안 사주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카메라에는 돈 팍팍 써.”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함이 묻어나는 표정이었어요.
저는 좀 충격이었어요.
“그럴 거면 동거를 하지, 왜 굳이 결혼을?”
“결혼의 의미가 뭐지?”
너무 궁금해서 집에 돌아온 뒤
결혼의 정의를 찾아봤어요.
“결혼은 사회적 제도로,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제도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역할이 일반적이다.”
물론 요즘 시대에 꼭 이런 틀로 결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부라면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공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이웃인 이사벨에게 이 얘기를 꺼내봤어요.
그랬더니 이사벨은
“우린 남편이 대부분 부담하고, 나는 기념일에만 뭘 사줘.”
“그렇게 철저하게 반반하는 커플은 나도 처음 들어봐.”
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아, 아밀리아네 부부가 좀 특이한가 보다’ 하고
나름 마음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는 정말 쿨하게 말하더라고요.
“그게 일반적인데?”
“각자 통장 따로 쓰고, 필요한 만큼만 부담하는 거지.”
“그럼 결혼했어?”
“아니, 우리는 그냥 동거 중이야.
굳이 결혼할 필요를 못 느껴.”
심지어 이렇게 말했어요.
“결혼을 굳이 하는 경우는… 아이 생겼을 때 정도?”
그 말을 듣고 너무 다른 문화에 또 한 번 놀랐죠.
며칠 후, 아밀리아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어요.
솔직히 속으로는
‘그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약간의 선입견도 있었죠.
그런데 웬걸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저를 위해 직접 피자를 만들어주고, 커피까지 내려주며 너무 따뜻하게 환영해주는 거예요.
식탁에 앉아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남편이 아밀리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사랑이 가득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돈을 반반 낸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건 아니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남편이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
‘결혼하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찾아보니 2019년 영국 통계에 따르면
16~29세 커플 중 69.2%가 결혼보다 동거를 선택한다고 해요.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선택의 시대가 된 거죠.
예전에는 "여자는 결혼 잘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죠.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아밀리아 부부를 보면서, 저도 저만의 결혼과 사랑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