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토벨로에서, 1750년으로 걷다
런던에서의 하루.그 시작은 영화 같았다.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내려오는 길이 조금은 설레었다.
거리가 멀어 하루 먼저 도착했고, 마음속에 오래 담아 두었던 곳을 찾기로 했다.
포토벨로 마켓.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 _노팅힐_로 잘 알려진 거리.
몇 번이고 ‘다음에 가야지’ 했던 그곳. 이번엔 반드시 걸어보기로 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런던의 햇살 아래, 이방인처럼 길을 따라 걷는다.
낯선 거리, 낮은 건물, 앤틱 소품들.
마치 인사동을 걷는 듯한 기시감 속에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서점은 예전 그 모습은 아니었지만,
“Notting Hill Bookshop”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나도 그 흐름에 조용히 섞여, 기념 가방 하나를 샀다.
그 순간, '나도 이제 노팅힐의 일부가 되었구나'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발견’
돌아오는 길, 한쪽 구석에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겉은 허름했지만 안에는 오래된 지도가 가득했다.
무심코 들어섰던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 여행’이 시작됐다.
조심스럽게 넘기던 지도 한 장. 그 속에서 1750년 조선의 지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옆엔 1745년의 아시아 지도. 'Sea of Korea'라는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건,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수백 년 전 그려진 세계 속의 조선. 그것도 지금 이국 땅 런던에서.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전율이 왔다.
그건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잊고 있던 '정체성'의 무게였다.
나는 그 지도를 샀다
지도를 파는 주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이런 지도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요?” 사적인 루트를 통해 수집한 것이라 구체적 설명은 어렵다 했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의 ‘동해 표기 분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는 프랑스 왕립 지리학자 Jacques Nicolas Bellin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모두 손으로 색을 입힌 원판 기반의 복사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사야 해. 이건 그냥 지도가 아니야.’
비싸다는 생각보다 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1750년 조선 지도를 손에 쥐고
다시 런던 거리를 걸었다.
대사관저의 밤
그날 저녁, 대사관저에 도착해 지도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200년 넘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된 기분이었어요.”
말끝에 농담을 덧붙였지만, 그 자부심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 지도를 한 번씩 들여다봤고,
“이런 보물은 잘 간직하셔야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작은 환호가 오갔다.
지금도 책상 한 켠에 그 지도가 조심스레 보관되어 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지도를 꺼내 보여줄 날이 오겠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이다.
“어느 날, 런던의 포토벨로 마켓에서
우연히 1750년 조선을 만났던 그날처럼.”
여행은 기록이 되고, 기억이 된다.
포토벨로에 간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오래된 지도 가게에 들러보세요.
‘Mer de Corée’, 분명하게 새겨진 그 이름이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다시금 일깨워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