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에서 처음 영어 이름을 정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다른 분들은 이미 ‘에밀리’, ‘제이슨’, ‘소피’ 같은 이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영어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오래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 영화에서 멕 라이언은 나에게 천사처럼 다가왔다.
사랑스럽고, 생기 넘치고, 가끔은 엉뚱하지만 따뜻한 매력을 가진 인물.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샐리(Sally). 제 영어 이름은 샐리예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원에서는 모두가 나를 샐리라고 불렀고,
특히 캐나다에서 온 멋진 영어 선생님이 “Sally~”라고 부를 때면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곧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볼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대답한다는 건 나에게는 여전히 큰 용기였다.
입을 열기 전의 그 짧은 침묵,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머릿속에서 엉켜버리는 단어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도, 나는 매일 학원에 나갔다.
수업은 아침에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집안일을 하기 전
나만의 고요한 여유가 시작되는 시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영어 수업은
어쩌면 그 시절 내 하루 중 가장 ‘나다운’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골프 치러 가자~ 날씨 끝내줘!”
그 친구는 골프 회원권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필드로 나갈 수 있는, 조금은 부러운 삶.
나는 학원 수업이 있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머리 아프게 무슨 영어를 해~ 얼마나 가나 보자~ 그냥 나랑 골프나 치자~”
솔직히 흔들렸다.
햇살 아래 펼쳐진 초록 필드,
바람, 그리고 시원한 드라이버 샷.
그 모든 유혹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샐리’라는 이름이 속삭였다.
나는 단순히 영어를 배우러 간 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샐리’라는 이름으로
내가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내딛는 그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의 말이 마음에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영어 학원으로 향하는 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직은 영어가 어렵고,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지만,
‘Sally’라고 불리는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 이름 안에는 나의 작은 용기, 새로운 도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영어 이름,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나만의 공부,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조용한 성장.
오늘도 나는 ‘샐리’로 살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당당하게, 조금 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