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술 Dec 03. 2023

자유와 치유의 땅,스페인을 향해

"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이렇게 돌아왔지만 제대로 된 여행기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지친 몸을 이끌고 카페로 와 노트북을 키게 했다. 분명히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보루와 같은 곳을 알게 된 기분이다.

사실 이번 스페인 행은 벌써 7번째 여행이다. 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 있거나, 삶의 크고 작은 절망감, 배신감, 회의감에 뾰루퉁한 얼굴로 갔다가 나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 짓는 얼굴로 돌아오게 만드는 곳.  일곱 번 갈 때마다 방문한 도시들은 달랐지만 늘 같은 것을 느낀다. 그것을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alegria de la vida(삶의 기쁨)!'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지만, 정말 살면서 가슴 깊이 기쁘고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고국의 무료한 일상을 떠나 전혀 다른 환경의 타국에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여행했던 전 세계 30여개국의 나라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어떤 분위기에 나는 완전히 젖어 들었고, 마음 깊이 충만한 따스함과 치유를 느꼈다.


태양은 한국에서도 빛이 나지만, 그곳의 태양은 웃는 표정이 달려 있다. 숨쉬는 공기에서도, 사람들과의 대화는 평면적이지 않고 살아 있다. 거짓되지 않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에서 너무 가식에 찌든 삶을 산 걸까. 물론 그곳에서도 상업주의가 있지만, 최소한의 humanism 이 살아있다 그리고 유머가 있다. 여행에서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대화, 해프닝, 에피소드들이 마치 하나의 영화장면 같았다. 길에서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거나 우연히 대화하게 된 무수한 스페인 시민들과의 만남이 일련의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곳에선, 내 인생에서 그 어떤 최악을 상상해도 삶이 나쁘지 않았다. 그곳에서 살 수 만 있다면... 물론 '여행'이 아닌 '삶'에서의 스페인은 또 다른 모습을 할지도 모른다. 과거 멕시코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만 좀더 나 답게 살 수 있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내 욕망에 충실하며 좀 더 행복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조금의 용기를 내고 무모한 계획을 한다면 언젠가 그곳에 날라가 살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스페인 한달 살기’는 것은 퇴사와 동시에 꿈꾸었던 소박한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퇴사 후에도 이어졌던 코로나로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 올해는 한 번 가볼까 했는데, 봄에 덥석 코로나에 확진 되어 버려 회복하는 데에 한달 여가 걸렸고 좀 살만 해지자 이사를 하게 되어 옮겨갈 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그 무렵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아주 조그만 소리나 자극에도 잠을 깨어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다. 잠을 충분히 못 자니,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는 혼잣말이 나왔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 인 것은 확실했다.


내가 갈 때마다, 늘 영혼의 충전을 받곤 했던 나라, 사랑하는 스페인.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출장을 합쳐 벌써 여러 번 다녀왔지만 여름휴가를 써도 최대 9일을 다녀오는 것이 최장이다. 지금 시점 다녀오면, 이사날짜와 겹쳐 15일정도 밖에 못 가지만, 이사 이후 까지 기다리려면 한달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모든 것은 타이밍이 있다는 생각에, 지금 내가 원할 때 저지르자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바로 인터넷에서 비행기표를 찾았다.. 17년 근속한 회사 퇴직기념으로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는 의미로 일단 쓰기로 했다. 그래도 네덜란드에서 24시간 스탑 오버를 하니 그래도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는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여행 일정을 짜느라 꼬박 며칠을 헤매고 가고 싶은 곳에 대한 나의 욕망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드디어 여행할 도시들을 정하고 일정을 완성하고는 그에 따른 현지 로컬 비행기, 기차, 호텔 등을 예약했다. 몇 년 전 다녀왔을 때보다 모든 것이 거의 두배 정도는 올라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즐기기로 했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지내다가 오자.

그렇게 나의 보름 간의 스페인행은 결정되었다.


Majadaonda-Barcelona-Tossa del Mar-Malaga-Mijas-Madrid-Amsterdam


내가 15일 동안 거쳐 갈 도시들이다.


▶ Majadaonda


마드리드 Barajas 공항에 도착한 날, 멕시코 연수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20년지기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친구는 대학 졸업 후부터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는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 버린 케이스다. 친구에게 전해야 할 물건도 있고 해서, 고맙게도 친구의 집에서 이틀 간 지내게 되었다. 그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항에서 우리는 유심을 사다가 길을 잃었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 내가 마주한 첫번째의 스페인 대화다. 안내판이 헷갈리게 되어 있다며 나도 모르게 유머 섞인 투정을 부리는 것을 받아주는 나이 지긋한 공항 직원의 모습에서 푸근함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첫번째 인상으로 내 가슴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여행 중 쌓여 있었던 긴장을 내려놓게 한다.

밖으로 나오니 스페인의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나를 감쌌다. 더운 날씨이지만 건조하면서도 따스하게 부유하는 무언가의 느낌이 있다. 20시간 가까운 비행에 잠도 거의 못 자 몸이 너덜너덜 해졌는데, 갑자기 마음 속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야호! 그래, 그토록 고대했던 스페인에 왔다구!’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러본다.


거의 한 시간 동안 Barajas 공항을 방황하는 동안, 지상에 주차되어 있던 친구의 차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랜만에 스페인어로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의 집인 Majadaonda 로 향한다. 마드리드 도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30~40분여를 차로 타고 가면 있는 근교도시이다. 


늘 북적대고 전형적인 여느 대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드리드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한적하고도 평화로운 작은 마을들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대견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일어났다.친구의 집은 녹지대가 무성한 주택가 아파트 단지 탑층 4층에 위치해 있었고 테라스 앞에는 사방에 오래 된 나무들와 햇살에 반짝이는 녹음의 전망을 하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곳은 마드리드 도심까지 접근성도 좋고 좋은 학교들도 밀집해 있어서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 현지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나가니 스페인 특유의 타파스 문화와 좁은 골목길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고 먹는 식문화의 여유로움이 전해져 온다. 우리는 오징어와 감자 brava 요리를 시켰다. 이 곳은 전형적인 스페인 주거지역이다 보니 관광객 보다는 근처 주민들이 주요 대상이다. 아주 번잡하지도 않고 적당한 활기가 있으면서도 평화롭고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Majadaonda 거리 풍경



Majadaonda 거리 풍경


언젠가는 내 친구네 집처럼 넓직한 테라스에 밖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한 풍경이 보이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Majadaonda에 있는 친구집 테라스



<El Escorial>(엘 에스꼬리알 수도원)

친구와 함께 집 근처에서 menu del dia(오늘의 메뉴) 식사를 맛있게 하고, El Escorial 에 방문했다. 마드리드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스페인 국왕 필립2세가 전쟁승리에 대한 감사로 수도원, 궁궐, 왕릉 대학 등을 포함한 건축물로 Velasquez 등 여러 유명화가들의 유화가 소장되어 있고, 필립2세 역대 스페인 국왕, 배우자, 왕자, 공주들이 안장되는 영묘로 사용 중이며, 유네스코 유산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고즈넉하면서도 무언가 성스러운 느낌의 중세 수도원을 둘러보면서 기분이 리프레쉬 되고 근처에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카페, 식당들이 많아 마드리드 근교에서 반나절 정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지도 않고, 적당하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활기가 있어서 좋았다.



El Escorial 수도원



                                    El Escorial 수도원


돌아오는 길에 맛집에서 친구 가족과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고 친구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제 내일부터는 드디어 나 홀로 여행 시작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