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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술 Dec 03. 2023

몇 년만에 다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고딕지구,바르셀로네따, 그라시아 지구

마드리드 Atocha 역에서 렌페를 타고 3시간여를 정신없이 갔더니, 벌써 바르셀로나 도착이다.


사실 나는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신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분주함과 다이너믹하고 각종 세련되고 멋진 고층 빌딩들이 주는 에너지는 지금까지 지난 20년 가까이 여의도 한복판의 직장생활과 주로 대도시를 방문했던 해외 출장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해외 여행지를 갈 때면 늘 대도시 보다는 조금 더 느리게 흘러가는 소도시에서 더 많은 힐링과 충전을 받곤 했다. 


그런 내가 왜 바르셀로나를 무려 6일이나 여행지로 선택했는지는 아이러니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사실 바르셀로나는 벌써 두 번 다녀왔지만 제대로 여행한 적은 없다. 처음 방문했던 2004년 타이트한 일정 탓에 고작 하루 반을 머물렀고, 두 번째 방문은 출장으로 갔었기에 관광지를 둘러 볼 만한 시간은 없었다. 처음 여행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창의적인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까사 밀라, 까사 바티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그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건축 디자인을 벗어난 그들의 자유로움을 닮은 도시의 분위기와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출장으로 왔을 때 타이트한 일정 탓에, 타 국가 법인 직장동료들이 업무 일정이 끝나고 근교 도시였던 지로나,시체스 등을 여행하는 것을 부러워만 하고 귀국해야 했던 여한이 남아 다시 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는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Girona 와 Tossa del mar 라는 해변 휴양 도시에서의 1박을 각각 추가했다.


막상 다시 방문한 바르셀로나는 너무 도시 도시했다. 어디를 가던지 인파들로 넘쳐났고, 관광객, 플래쉬 세례가 터져 나오고, 어떤 순간들은 의무감으로 이 장소들을 구경하고 보러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스페인 사람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 인파 때문에 스페인만의 본연의 authentic 한 분위기가 약간은 퇴색되는 것 같기도 했다.

온갖 명품 브랜드가 멋스럽게 서있는 건물들은 화려했고, 까딸루냐 광장 근처 Ingles Cortes안에 들어가 쇼핑할까 생각도 몇 초 정도 들었다가, 또 쇼핑한다고 고민할 스트레스를 받을 생각을 하니 접었다. 결론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첫날 묵은 람블라스 거리 옆에 있는 고딕지구는 스페인 역사와 중세의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장소였지만, 그 곳의 사람들 중 최소한 70%는 외국인 같았다. 에어비엔비로 건축한지100년이 넘었다는 건물에서 묵었는데 실로 겉에서 보더라도 오래된 역사가 묻어나는 투박한 벽과 계단을 가지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방음시설은 꽝이었다. 그 건물 1층에는 Bar가 있었는데 새벽2시까지 영업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까지 음악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2시경엔 의자를 끌고 고철로 되어 보이는 영업장 문을 닫는 소리가 약간 크게 들리고 이후 아침까지는 고요가 찾아왔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는 아침 6시부터 15~30분 간격으로 종소리가 들려, 마치 기상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직이 있었다. 간밤에 각종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행스럽게도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는 무엇인가 보안에 대한 불안감,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이틀을 보냈다. 그 집의 실질적인 호스트, 우크라이나 출신의 Tatiana는 왜 에어비엔비 어플에 보이는 주소와 실제의 주소가 일치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tu haces muchas preguntas (질문이 많네요) 로 응수했고, 내 숙박이 다 끝난 후 나는 그에 걸맞는 평점과 후기를 남겼다. 역시 숙박 전 대화에서 전형적인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첫날 숙소에서 가까운 tapateria(타파스 식당)에서 gambas al ajillo(마늘소스,올리브유로 요리한 새우) 와 pimientos del padron(말린 고추를 소금으로 간을 해 튀긴 음식) 소금과 그리고 레드와인 한잔을 했다. 스페인에 왔으니, 내 favorite음식을 먹어야겠고 바르셀로나의 최대 고딕지구에서 감바스를 파는 곳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레스토랑의 주인장은 별로 친절하지 않았고 혼자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동양인 여자라서 홀대하는 것 같아 나가버릴까 망설이다가 참았다. 드디어 서빙된 음식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는데, 맛은 기가 막혔다. 그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다

올리브유와 마늘소스에 잔뜩 절여진 새우를 혀에 넣었을 때 맛이란...레드 와인 또한 기가 막혔다. Ribera del Duero(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해발 고도가 높아 산미가 좋고 풍미가 뛰어남) 와인은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첫날 저녁 식사>-Gambas(올리브유 새우요리)와 Pimenton al padron(피망구이)


고딕지구에 머물면서 구엘저택, 까딸루냐 광장의 소문난 맛집탐방(그 유명하다는 Ciutat comtal 레스토랑)을 갔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대기는 엄청났다. 베스트셀러인 꿀대구를 시켰는데 기대보다 맛은 있었다. 그런데 배가 부글거리는 것 같아, gambas까지는 못 먹을거 같아 취소하고 꿀대구로만 만족했다



꿀대구 요리

#그라시아 지구, 바르셀로네따 해변 


미리 예약 없이 구엘 공원에 갔다가 입장 가능한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와야만 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한 후에 방문해야 하는 최근의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하고 먼저  몸이 움직인 무모함이 불러온 참사이다. 현장에서 표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스마트폰으로 구매했는데 다운이 되어 구엘 공원 측 스텝에게 나의 핸드폰 오류 화면을 보여주면서 문의를 했다.


키도 크고 훈훈하게 잘생긴 직원이 무선 전화기로 결제 부서측과 확인하면서 내 상황을 알려주는데, 결국에는 표가 매진이 되어 입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엄청난 대기줄에도 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 주려고 하는 친절함과 미소에 감동했다. 그래, 삶에서 벌어지는 것은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소모와 에너지때문에 우리에게 희비가 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입장하지는 못해 헛걸음 하게 된 상황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문이 닫힌 채 직원 몇몇과 얘기하면서, 구엘 공원 인근 여행하기에 좋은 장소를 추천 받았다. 그것은 바로 벙커. 일몰을 바라보기에 좋다 하니 오늘 저녁에 다시 돌아오리라.  지금 내가 가야 할 다른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기. 어렵지만 내 인생에 늘 주어지는 숙제다.


 벙커를 보러가기 전에 구엘 공원 인근에 있는 그라시아 지구를 탐방키로 했다. 구엘공원 올라가는 길목에서 갈라지는 그라시아 길. 너무 인상적이다. 그 길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자유! 그리고 낭만. 해가 정면으로 부서지고 조그만 길목이 삼각형으로 좁아지는 구도였는데, 그 길을 오갈때마다 내 영혼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설레었다.

지금 그 사진을 보니 별게 없는데, 사진이 내 마음을 못 따라갔다.

그라시아 지구


그라시아 길을 지나 가우디가 최초로 일반 가정집을 지었다는 곳에 갔다. 해가 너무 뜨겁고 목이 말라 바로 앞의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자리를 잡았다. 동네 사람들과 주인 아저씨과의 소소한 대화들을 듣기만 해도 행복하다.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숟가락을 넣어 입에 한입 넣었을 때 엄청 행복했다. 장 시간 걸어 무더위에 지친 나에게 선물해 준 달콤함이다. 세상의 모든 기쁨이 나에게 오는 맛.^^ 쉬면서 연락 온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새 핸드폰이 방전이 되어 버렸다. 다시 로그인을 하려했을 때 pukuk번호를 넣으라고 했으나, 그것이 여권지갑에 있어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야 하는데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핸드폰이 맛이 갔으니 생면부지의 이 낯선 곳에서 지도도 폰도 없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젋은 아가씨가 지나간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을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자기도 가는 길이라면서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가면서 내가 왜 스페인에 왔고, 바르셀로나에 대한 인상을 얘기하기도 하면서, 무언가 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바르셀로나 현지사람들의 친절을 느낄 수 있는 그라시아 지구였다. 쇼핑도 관광도 하나도 못했지만, 어떨 땐 우연히 대화하고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다시 호텔로 돌아가 긴장속에 pukuk 번호를 넣고 다시 로그인 성공! 8시가 가까워오는 저녁시간이건만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므로, 바르셀로네따 해변으로 향하기로 한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나섰다. 구글 지도에 의하면 환승을 위해 내린 Urquiona 역에서 바로 버스가 있어야 하는데 8차선으로 달리는 큰 대로변에서 대체 방향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청년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해당 버스 정보를 찾아보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그래서 네가 가는 곳이 Barceloneta잖아? 그러면 그냥 전철을 타고 가. 여기서 노선변경없이 쭉 가면 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그의 말대로 전철로 갔다. 역을 나오자 마자 마주친 경찰에게 길을 다시 확인하며 물어봤을 때, 이미 땀으로 젖은 나에게 10분을 또 걸어야 한다는 말에 절망하는 내 표정을 보고, ‘ pero el camino es muy bonito’(그렇지만 가는 길 풍경이 아름다워) 라고 말해주니, 절로 힘이 났다. 이것이, 단순히 정보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방식이다. 


바르셀로네따 해변


바르셀로네따 해변


길에서 알려준 경찰의 말처럼 바르셀로네타로 향하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파라다이스를 갈구하며 찾아 헤매는 기대감으로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을까. 해변에서 물놀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이들의 젖은 옷에서 느껴지는 해변의 환상에 대한 설레임, 근처 바와 레스토랑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들의 맛있는 냄새와 음악들이 어우러져 조금씩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바르셀로네따 해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광활한 해변, 그와 채도와 색이 너무나 비슷한 하늘의 색이 어우러져 숨통이 탁 트이는 것과 같은 해방감이 일었다. 편상처럼 길게 펼쳐진 바닥에 앉아 바다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멍하니 앉아 , 이 순간 내 눈에 펼쳐진 풍경을 저장한다. 카메라에서도 담아지지 않는 순간의 소유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여유와 한적함, 즐거움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기어코 내 눈 앞의 풍경을 찍다가 핸드폰을 2미터는 됨직한 모래사장으로 떨어뜨렸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친절하게도 핸드폰을 주워 전달해 주었다. 세계적으로 소매치기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한가운데에서 내내 소지품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긴장했던 것이 무색했던 순간이었다.

해변에도 발을 담그니 의외로 물의 온도는 약간 선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는 벌써 중천에서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앗, 이제 해가 지기 시작할 때다. 오늘 보기로 한 일몰은 벙커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쉽지만, 벙커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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