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Cataluna Summer
#토사 델 마르 (Tossa del Mar)
늦지 않으려고 아직 관절염이 남아있는 무릎을 혹사하며 뛰면서까지 도착한 지로나 버스역. 작은 도시였기에 발권시스템은 자동화 되어 있지 않아 모두 수작업으로 직원이 일일이 처리하고 있었다. 이미 한 열 댓명이 줄을 길게 서있었고, 겨우 내 차례가 왔을 때, 출발이 임박한 다른 종착지행에 가려는 손님들을 부르며 그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어 표를 판매했다. 라틴권에서는 드문 풍경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나를 포함해 내 뒤에 토사 델 마르에 가는 대여섯명이 표를 발권했다. 원래 출발시간 30분이 지나서도 버스는 오지 않아 이제나 저제나 땀이 차오를 무렵,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지로나에서 1시간 반 여를 달리면 토사 델 마르 해변이다. 늘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은 유난히 꼬불꼬불한 길이 많다. 길의 커브가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더 아름다운 절경을 만난다. 협곡 밑에 그림처럼 코발트 블루 빛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멀미에 취약한 나는 급경사를 돌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천천히 서행해 주는 버스 기사님 덕에 조금씩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금새 도착이다!
숙소는 버스역에서 5분 컷 도보거리였고 체크인을 하고는 점심도 먹을겸 바로 해안가로 나왔다. 호텔에서 5분을 채 안되어 걷자마자 펼쳐진 해안가 풍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어쩌면 이렇게 짙은 파란 색을 한 바다가! 학창시절 여행하면서 보았단 중남미의 카리브 해변이 해저가 보일정도로 투명한 맑고 하늘색의 크리스털 블루 바다라면 이 곳 까딸루냐 해변의 코스타 브라바 해변은 코발트블루의 짙고 너무나 선명한 파랗디 파랗고 청명한 색을 하고 있었다. 해변이라 그런지 내륙의 지로나보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이쪽은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 건너온 관광객들이 주를 이루는 듯 했다.
토사델마르(Tossa del mar)는 바르셀로나서 북쪽에 위치해 있고 코스타 브라바(Costa Brava-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국경까지의 해안을 통칭함) 라는 까딸루냐 지방자치 단체 중 하나로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휴양지로 유명하다.
예약한 호텔에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구글에서 봐 두었던 평점이 좋은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왠 걸 시간이 벌써 3시가 되어 휴식 시간이라고 한다. 그 식당 웨이터가 알려 준 바로 옆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나 배가 고팠기에 메뉴판에서 먼저 내 눈에 들어온 오징어 구이를 시켰다. 올리브유에 소금으로 간을 해 구운 오징어에 먹물크림 소스를 찍어 먹으니 꿀맛이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먹물크림소스, 너무 청량하다. 오징어 요리를 순식간에 뚝딱하고 배가 완전히 차지는 않았지만 이 곳의 살인적인 물가에 차마 더 오더하지는 못하고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식당에 나오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다리만 먼저 바다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물이 차다.
이 곳 사람들과 더불어 물놀이를 하고 싶지만, 지금 들어갈 수 없는 몸의 상태라 운동화를 벗어 놓고 발만 담궈 놓고 있어도 시원하다. 소리를 지르며 물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들을 구경한다.
마음이 뻥 뚫리며 일종의 해방감과 자유로움, 동시에 혼자 있음에 대한 외로움의 감정이 동시에 지나갔다. 그래도 혼자라도 이 시간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들며, 나중에 가족이 더 생기면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고작해야 십분 여를 머물러 있다가 뜨거운 모래바닥을 맨발로 겨우 걸어 나와 씻고 나왔다.
이제 본격적인 탐방의 시간이다. 투어 인포메이션 데스크도 문을 닫고 지도는 못구했지만, 일단 해변에서 보이는 저 성같이 보이는 성벽을 올라가야 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어 그 곳을 따라간다. 올라갈수록 내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눈이 향하는 곳곳마다 마음안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 멀리 물감을 뿌려놓은 듯 새파란 바다와 대비되는 흰색의 거품을 내며 배가 떠다닌다. 정말 한 폭의 그림이다!
정상 가까이 올라오자 벤치에 앉았다가 인적이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친 몸을 누웠다. 따스한 햇살 아래 내 안방인 마냥 잠이 들려 하는 눈을 마스크로 가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났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분간이 안되는 이 청량한 풍경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의 음습했던 감정들이 절로 말라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내던져진 채, 이곳에 나를 완전히 맡긴다. 조금씩 인기척이 들리며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 절경 앞에서는 모두가 천사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눈인사를 한다. 한여름, 스페인의 강한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저 멀리 보이는 청명한 푸른색의 바다와 바다위에 하얀 거품을 내며 드나드는 요트 선박들, 해변가에서 일광욕과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 이것이 진짜 까딸루냐 서머(Cataluna Summer)의 정취일까. 걷다가 올라올 때 찜해 두었던 전망 좋은 카페로 들어가 쥬스를 주문했다.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앉았지만 태양의 직사광선이 쏟아져 결국은 구석자리로 몸을 피신해 다시 자리를 잡고 잊을 수 없는 풍경 앞에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갖는다.
여기저기 순간을 놓칠 수 없는 사진을 찍으며 성곽을 다시 내려갔다. 이 순간을 눈과 가슴에 꼭꼭 눌러 담는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서는 온갖 shop 들과 기념품가게,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인가 싶은 고즈넉한 입구가 보여 들어섰더니, 와인과 올리브유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였다. 입구에 서 있던 아저씨 (아마 사장님으로 보임) 가 올리브유를 한 번 맛보라고 한다. 평소 올리브유라면 좋아하는 나이기에 시음을 해 보았다. 향이 굉장히 독특하고 약간은 매운 맛이 코끝으로 강하게 올라오는 맛이었다.
어떠하냐는 그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 puedo sentir como esta pasando por mi garganta.” (내 목구멍을 어떻게 지나느냐가 느껴질 정도의 신선한 맛이네요) 라고 얘기했다. Te escucho (네 말을 듣고 있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맛을 모두 다양하게 달리 표현한다며, 와인도 시음을 권했다. 본인은 토사델마르 근교에서 와이너리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이너리 지역은 Rioja 와 Ribera del duero 정도로 알고 있던 나에게, 이 곳이야말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에 최적인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포도를 경작하고 와인을 제조하는 비용보다, 관광업이 훨씬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다 보니 모두들 와이너리를 포기하고 관광업쪽으로만 눈을 돌린다고 했다. 안타까운 현실에 대화를 나누며, 내가 여행객이라 하자 가지고 있던 지도를 펼쳐 들더니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속사포처럼 빠르게 설명해준다.
당장 내일 오전까지밖에 시간이 없어 떠나야 하는 현실, 그는 시간이 너무 없다고 한다. 추천 여행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몇 군데를 얘기해 주었는데 도보로 몇 시간을 가야하는 코스라 표정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고, "아직 당신은 젊잖아요. 여행은 걸으려고 하는 거에요" 라며 나의 여행 전투 의식에 자극을 가한다. 아저씨가 한 말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말,
“A veces, vas a perder el camino sin duda. pero vas a encontrar los caminos mas bonitos." (분명히 당신은 길을 잃을 겁니다. 그러나 길을 잃으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될 거에요)
시간이 조금 지나 이 말을 곱씹어보니, 마치 "너의 인생에서 길을 잃어도 좋아, 왜냐하면 더 너에게 맞고 행복한 삶을 만날 거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본인이 말해 준 여정을 여행하고 돌아가기 전에 자신을 만나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가 체크해 준 지도를 가지고 헤어진 후,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잃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고, 용기이다. 그 누구도 길을 잃기 위해 발걸음을 떼지는 않겠지만, 생면 부지 이 낯선 땅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의도했던 목적지에서 잠시 멀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여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추억을 쌓고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 모든 불확실한 여정은 의도치 않은 선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표했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 있더라도,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작은 일상, 사람들과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것이 더 나은 방식으로 풀려나가거나 더 의미가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기도 한다. 어짜피 삶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길의 작은 여정의 총합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는다는 것에 불안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날 저녁은 까딸루냐에서만 대대로 식당을 해왔다는 곳에서 먹물 빠에야를 먹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까를 고대하며. 대대로 가업으로 내려 받아 하고 있다는 말처럼, 맛은 훌륭했다.
마침 스페인 바야돌리드라는 곳에서 자리를 잡아 살고 있는 예전 학생시절 친구와도 연락이 되어 SNS로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동안, 진심으로 스페인에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만약 스페인에 산다면, 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진짜의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 삶, 무용의 삶을 살 수 있는 이곳.
한국과 스페인을 반 반씩 오가는 삶을 살고 싶다. 겨울 봄에는 스페인에, 여름과 가을 에는 힌국에 살면 어떨까. 이렇게 담대하고도 희망에 찬 꿈을 꾸어본다. 아직도 가지 않은 인생의 여정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당시 나 자신에게 썼던 스페인어로 된 문구가 있었는데, 그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Vas a encontrar una manera, sin falta!
Si lo deseas realmente desde corazon profundo, siempre lo has logrado.
Lo vas a conseguir,tambien.
Todavia tienes la vida que nunca has ido.
(가슴 속에서 정말 절실하게 원해 왔다면, 항상 그것을 얻어 왔다.
이번에도 그것을 얻을 것이다.
아직도 인생에서 가지 않은 길이 남아 있다)
스페인어로 생각할때는 더 본질적이고 대담한 말을 하게 된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을 해야 겠으니, 이것은 돌아간 후에 채워 나가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