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암담
또 암담
어제 저녁 면회 때 남편 얼굴은 병원 생활 중 가장 편해 보였다. 그래서 내 맘도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집으로 돌아와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면회 때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사람이 아주 지쳐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젯밤 발작이 왔다고 했다. 면회 시간에도 가벼운 발작이 오는지 몸을 비틀며 떠는 게 보였다. 다행히 깡마른 수척한 얼굴을 하고도 면회 온 사람은 알아봤다. 아내의 얼굴을 오랫동안 지그시 쳐다보다가 자기 곁을 지나가는 간호사나 다른 환자 보호자들은 경계를 했다.
남편의 기억에는 아이들이 없는 것일까. 그는 아이들을 찾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기억을 잃은 처지이니 그에게 아이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굴에 패인 고통이 깊어 보인다. 거기에는 두려움의 흔적이 역력하다. 죽음의 발자국을 들었겠지, 그 미지의 얼굴을 보았겠지. 그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목숨 앞에서 나는 암담하고 또 암담하다.
중환자실을 나와 비상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나는 기어코 통곡을 하고 만다. 꺼억꺼억 흐느끼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남들이 보든 말든 터져나오는 울음을 그대로 쏟아냈다. 부끄러울 게 없는 통곡이다. 지금 여기 있는 보호자들, 다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니.
중환자실 6층 복도 창가 쪽, 대로에 달리는 차를 내려다보면서 하염없이 추락하는 것이 나의 눈물인지 나의 몸뚱아리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눈물처럼 가볍고 사뿐히 떨어져 내리고 싶다. 무작정 뛰어내려 저 달리는 차들처럼 달리고 싶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이 사람을 보내기가 참 힘들구나. 얼마나 눈물을 쏟아내야 그를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와 함께 한 날들을 그리움으로 추억하며 보낼 수 있을까.(2011년 2월 9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