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희망
목구멍에 삽입했던 튜브를 드디어 떼어냈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뜻이다. 얼굴에서 의료 장치를 치웠을 뿐인데, 사람이 전혀 달라 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흘러나온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또렷한 발음이었다. 오전 면회에서 본 남편은, 쓰러지기 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 기운이 솟았다. 암담하고 불길하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잔뜩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 호전이 장마 중 잠깐의 소강상태일 수도 있다. 곧 다시 쏟아질 비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대단한 생명수를 얻은 듯 기쁨으로 파닥거렸다.
남편의 상태가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그는 20일이 넘는 사투 끝에 살아남았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육체일지라도, 다 죽어가는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제 힘으로 숨을 쉬고, 또렷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여보. 이것은 당신의 승리예요. 생에 대한 당신의 의지가 모든 난관을 이겨낸 거예요.
저녁 면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득 깨달았다. 남편 입원 이후 처음으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울컥거려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응급실로 실려 온 후 살 가망성이 거의 없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남편은 이렇게 잘 버텨주었다. 그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기적이란 멀리 있지 않았다. 영영 헤어질 줄 알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영혼이 담긴 언어로 감정을 확인하고, 육체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당신은 참으로 당신답게, 통념을 뛰어넘는 기발한 방식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고마워요, 여보. 남은 시간, 단 한순간도 헛되이 쓰지 않을게요.
(대학 중환자실 2월 중순 어느 날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