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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02

요양보호사

by 인상파

요양보호사


작년 이맘때인 8월에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나중에 가족 요양을 하려는 목적이 컸다. 한여름인데도 어머니가 아프지 않고 어르신 유치원에 잘 다녀 주신 덕에 학원을 다니고 실습을 나가고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그 자격증은 아직 어머니를 위해 써먹지 못하고 있다. 대신 방문 요양을 소개해주는 센터에 등록하여 다른 어르신의 요양보호사로서 일을 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일은 4월부터 하게 되었다. 센터장과 함께 방문한 집의 어르신은 6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두 무릎 연골이 닳아 걷기가 불편했고 심장이 안 좋고 고혈압, 당뇨를 앓고 있는 노인이었다. 몸이 어찌나 났던지 거구의 몸을 보니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치매를 앓는 기저귀 환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일할 의사가 있었다. 노인네도 내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와서 일을 하라고 했다. 센터장의 말로는 일주일에 3일 방문을 요구해서 요양보호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노인네는 등급을 받은 지 1년도 안 되는 그 사이에 세 명의 요양보호사를 갈아치운 전력을 갖고 있었다.


어르신의 말을 빌리자면 첫 번째 사람은 노인네와 같은 나이로 일은 잘했는데 말이 거칠어 나중에는 노인네를 부려먹게 생겨서 잘랐다고 한다. 사람이 무섭게 느껴졌다고 한다. 두 번째는 물건을 자꾸 빼돌려서 잘랐고, 세 번째는 고분고분하지 않아 잘랐다. 노인네의 일방적인 말이니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를 길들이기 위한 얕은 수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이유를 들이밀며 자를지 그것도 궁금해졌다. 그때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등급을 받은 대상자는 심신이 병약하여 혼자 생활할 수 없어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약자라고 여겼는데 와서 보니 요양보호사의 갑이다. 요양보호사의 일이라는 것이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밑바닥 사람이니 마구 부려먹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노인네는 한동안 잘린 요양보호사들을 자주 내 앞에 호출하여 험담을 늘어놓았다. 남의 집일을 하려면 사람이 고분고분해야하는데 전에 요양보호사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인은 젊어서 집나간 며느리 대신 손녀 셋을 키우며 건물 청소부로, 막노동판의 잡역부로 일을 해서 그런지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사람을 쓸 줄도 잘 알았다. 그녀는 자주 나의 일하는 방식에 토를 달았다. 설거지에서 화장실 청소, 음식 만드는 것에까지 전방위적으로. 그럼에도 그녀가 나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자기 말에 순종적이고 착해서란다. 노인의 인생관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말에 노인네 앞에서 사람 좋게 웃었지만 뒤끝은 썼다. 노인은 칭찬이라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내게는 욕으로 들렸다.


노인네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12년 넘게 살고 있다. 방 세 개 중 두 개는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혈액암을 앓고 있는 남편의 침대는 거실에 있고 그녀는 안방에서 잠을 잤다. 식구가 둘인 이 집에 무슨 짐이 그리 많이 쌓여있는지. 냉장고가 1개 있는데 김치 냉장고가 세 개나 있다. 벼 도정 기계부터 약탕기 등 숱한 물건들이 쌓여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젊었을 때 약장사한테서 사들인 거라고 했다. 지금은 쓰지도 못할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안고 살고 있었다. 고가를 주고 산 물건들이라고 하는데 돈의 가치를 하고 있는 물건은 거의 없어 보였다.


사람이 오는 것을 싫어해서 3일만 요양보호사를 쓴다고 하더니 달이 바뀌니 다시 5일을 쓰고 싶다고 하여 나는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닷새를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8월 들어 사정이 또 달라졌다. 일주일에 3일만 방문요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더위에 집에 있으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니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주야간보호센터를 이틀 가 있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전기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집으로 사람을 자주 불러들였다. 어느 날은 개떡을 쪄서, 어느 날은 감자전을 해서, 어느 날은 계란후라이를 해서 그것들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주로 오가는 대화는 젊었을 때 사귀었던 남자 얘기나 집안 식구들 얘기, 반찬거리, 다육 식물 등 다양했다. 막걸리는 거의 어르신 집에서 마셨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 집에는 잘 드나들지 않으려 한다. 더욱이 암환자가 있는 집은 더더욱. 암이 전염되는 병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불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을 막걸리를 핑계로, 음식을 핑계로 불러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그런데 어울려 술 먹는 사람들의 판도 깨지고 말았다. 애써서 안주 만들어 사람을 불러 정성을 들였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어르신을 괄시하는 말을 했다는 게 그 이유다. 어르신은 동네에서 같이 술 마신 사람들이(해봐야 둘이지만) 진저리가 나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서 잠수를 타기 위해 주야간 보호 센터를 다닌다는 것이다. 그녀가 잠수를 잘 타고 있냐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양반이라 하루종일 주야간보호 센터에 머물러 있을 성격이 못 되는 것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일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내게는 식당이나 요양보호사가 그 중 하나다. 식당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하고 나면 끙끙 앓는다. 가방끈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학교며 도서관으로 독서 수업을 하러 다니고 집에서 독서논술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었던 시절은 끝이 났다. 정부가 바뀌고 독서 수업은 끊어졌다. 독서논술 수업도 사양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내가 못할 일은 없다. 방문 요양보호사 일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자주 자괴감이 든다. 남의 집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사람을 쓰는 주인의 행태가 그렇다. 스스로를 존중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가 그렇다.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살기도 했는데 하등 식모와 다를 바 없는 일들을 하면서 또한 그런 사람이라고 여기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곤두박질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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