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생신날
어머니 생신날
그들은 모두 떠나갔다. 어머니를 모시고 횟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카페에 모여 차 한잔씩을 마시고서. 어머니의 생신이라 모인 자리였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어머니에게 자신들이 누구인 줄 물어댔다. 어머니는 그들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했다. 어머니가 우리 아들 아들했던 큰아들은 알아봤고 딸들은 알아보지를 못했다. 그러면 큰딸이네 둘째딸이네 하며 그들은 어머니의 기억을 상기시키려 애를 썼다. 평소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 어머니의 기억을 깨워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계절이 바뀌면서 어머니는 세상사에 더 무관심해지셨다. 말씀은 전혀 없으시고 표정은 돌덩이처럼 딱딱해지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생신에 자식들이 모인 것도 모르고 셋째 언니가 입가로 가져다주는 생선 회며 새우를 드시면서도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소주 대여섯 잔을 마시면서 이 불편한 자리에서 어떻게든 기분을 내보려고 했다. 알콜이 들어가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먹는 즐거움은 있었으나 어머니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보다 못하게 앉아계시는 것이 이상하게 기분을 자극했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면서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셔갔다. 어머니의 볼일을 당연히 내가 챙겨야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어머니는 빨대에 꽂아주는 음료를 드시다 말다하면서 내리 눈을 감고 계셨다.
자리가 파하자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떠나갔다.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우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 두 손을 잡고 안방으로 걷는 어머니의 다리가 휘청거리고 허리는 땅으로 꺾어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리누르는 무게에 내 어깨에도 무리가 왔다. 덩달아 나도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전기장판을 켜고 어머니를 침대에 눕혔다. 숨을 돌리며 침대에 한참을 걸쳐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알콜은 사람의 기분을 사납게 했다. 담배가 땡겼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몹시 기분이 울적했고 화가 나 있었다. 어머니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게 부쩍 부담이 되고 있다.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허공 중으로 날아가는 담배연기에 잡친 기분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속만 더 답답했다.
일요일 가장 힘든 행사가 하나 남았다. 어머니를 목욕시키는 일이다. 언니들조차도 어머니 목욕을 시키는데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그들은 그것을 동생 일이라고만 여기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갈수록 치매가 심해져가고 있는데 그들은 갈수록 더 나몰라라 하고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못마땅하고 속상한 것이다. 식사자리를 만들어 밥이나 먹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모였다가 떠나가는 그들이 야속했다.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셔갔다. 틀니에는 음식물이 잔뜩 끼었다. 이제 어머니는 틀니를 닦을 줄 모른다. 윗몸에 상처가 나 가글을 시키고 목욕의자에 앉혀 때를 벗기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길 때는 귀와 얼굴로 물이 들어간다고 욕지거리를 뱉어낸다. 한여름이 아니라 그나마 내 몸에서 땀이 흐르지 않는다. 어머니를 목욕시켜 물기를 닦이고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입히고 나니 숨이 차 올랐다. 기진맥진이다. 약을 드시고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의 얼굴은 해사했다. 아직 나에게는 남는 일이 있다. 사방으로 물이 튄 화장실로 들어가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머니 생신날이라고 형제들이 모인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사납던 마음이 어머니를 씻기면서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잠재워졌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계시니 형제들끼리 식사자리라도 마련되는 게 아니냐. 모두들 바쁜 사람들인데 식사자리라도 나와주는 게 또 고마운 일 아닌가. 밤이 깊어가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도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