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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5. 2025

자유글 09

토요일

토요일. 아들 녀석이 점심시간 때쯤 집에 들어섰다. 전날 막차를 타고 오겠다고 했는데 몸이 안 좋아 내리 자취방에서 자고 말았나 보았다. 과외가 3시부터 있는 날이라 신촌에서 오는 좌석버스를 탔는데 도로가 막히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좋아했다. 그러지 않아도 올해부터는 신촌 자취를 접고 집에서 통학하기로 하여 시간 관리를 잘해야하는데 이렇게 대낮에도 교통편이 빠르다면 그리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계절학기를 듣고 있는 아이는 감기에 걸려서 잠을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둥하고 머리가 둔탁한지 그리 얼굴빛이 밝지는 않았다. 내리 굶은 아이에게 뭘 먹겠냐고 했더니 맛있는 걸 찾기에 내 식으로 맛있는 거라며 점심으로 미역국에 계란찜과 김치를 내놓았다. 아이가 밥을 먹는 사이에 나는 동네 슈퍼에서 주말 할인이라고 4900원에 파는 계란 두 판과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값 세일하는 꼬막 두 팩을 사왔다. 


4시 넘어서는 아파트 헬쓰장에 갔다. 토요일이라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헬쓰장에 가면 우선 다리와 팔 중심의 근력 운동을 하고 한 시간 정도 워킹을 한다. 그리고 꼭 거꾸리를 하는데 그걸 하고 나면 아픈 허리가 펴져서 그런지 시원한 느낌이 있다. 힘을 들이지 않고 몸만 갖다대면 저절로 운동이 되는 것처럼 착각을 준 맛사지 벨트를 가장 오래 한다. 운동이 끝나면 샤워장에 들러 물세례를 받고 나온다. 운동을 해도 남들처럼 땀이 나지 않은 편이라 가끔은 샤워장을 들리지 않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운동을 했다는 개운함이 덜하다.


집에 오니 아들이 글쓰기 강좌 과제를 하고 있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막히는지 장난으로 엄마가 써주면 안되냐고 물어왔다. 그럴 때는 기꺼이 엄마가 써보마 하면서 장난을 쳐봐도 좋을 텐데 사실대로 실토하고 만다. 엄마가 쓰면 받고 싶은 학점 못 받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아이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과제를 엄마에게 부탁한 적이 없이 제 힘으로 해결했다. 거실 불이 새벽녘까지 켜져 있는 걸로 봐서 아이는 그때까지 과제를 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맛있는 것 노래를 부를 때 피자 먹을 거냐고 물었었는데 그때는 입맛이 없어 먹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헬쓰 끝나고 집에 돌아왔더니 피자를 먹겠다고 한다. 도미노 피자 알아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과제 하느라 시간이 없으니 내게 알아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도미노 피자 회원 가입을 했는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시간을 들여 아이디와 비번을 찾아 로그인을 했더니 휴먼 상태에 있었다. 그걸 해제를 하라고 떠 해제를 했더니 웰컴 쿠폰이라고 40% 쿠폰을 줘서 피자를 시켰다. 피자가 밀렸는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어머니가 다니는 센터에서 전화가 와 어머니를 모셔왔다. 어머니를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센터에서 저녁을 드시고 오신 어머니는 집에 오시면 그냥 주무시게 한다. 거동을 못하신 어머니는 주로 앉아있거나 누워 계시기에 음식물이 위에서 올라오는지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실 때가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문을 닫고 아들과 둘이서만 피자를 먹었는데 왠지 미안했다. 문을 닫아도 어머니 코끝에서 피자 냄새는 풍겼을 것이다. 당신은 주지 않고 지그들만 먹는다고 어머니는 서운해하셨겠지. 


피자를 먹고 아들은 글쓰기에 다시 도전했다. 글쓰기가 잘 풀리지 않는지 글쓰기가 제일 싫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시간 내에 제출해야 한다고 노트북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8시경에 먹은 피자가 목까지 차오른 것 같아서 포구의 산책로를 돌고 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아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내게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엄마를 못 믿는 눈치였다. 아이가 엄마를 못 믿기는 할 거다. 아이와 담배를 안 피우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해놓고 줄곧 그것을 깨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 아이와 약속을 지켜보려고 나도 내심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와 약속한 그날 이후 한 번도 피우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담배를 끊고 있다. 아이가 심각하게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 호강 시켜줄 때쯤 엄마가 아파서 없으면 어떡하냐고 제발 담배를 끊으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엄마가 돼 그것도 못해주랴 싶어 나도 진짜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더욱이 아이는 계절학기를 듣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계절학기 동안만이라도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엄마의 금연을 실행보겠노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입이 자꾸 심심해져 먹을 것을 찾게 돼 하리보 젤리며 새우깡을 달고 살고 있는 요즘이다. 오늘로 열흘은 넘겼다. 아직은 견딜만하다. 아이는 내게 왜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더니 담배를 피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건강에 안 좋은 담배를 끊은 것이 나은지를 물었다.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말에 그냥 피우라는 얘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고 담배를 안 피우는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어쨌든 담배를 한 번 끊어보겠다고 아들과 약속하고 오늘까지 왔다. (2025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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