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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7. 2025

자유글 10

음식에 대한 취향

어머니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일어났다. 무슨 냄새냐고 묻는 말에 잔뜩 성이 나 있는 것을 보니 불쾌한 냄새 때문에 깼나 보다. 동치미 국물 특유의 묵은 냄새와 구운 굴비 냄새다. 비린 냄새라면 질색 팔색하는 아들이라 아침 식탁에 잘 안 올리려고 하는데 비린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머니라 모처럼 생선을 준비했는데 그게 아들 비위를 건드렸나 보다.


녀석이 공기청정기를 틀어대며 못 먹을 것을 먹고 있는 사람 취급을 해서 갑자기 밥맛을 잃었다. 기분이 좀 잡친 것이다. 수저질을 그만 두고 반찬을 정리했다. 어머니도 입맛이 없는지 밥알 많은 식혜를 조금 드시고 말았다. 아무리 불쾌한 냄새가 나더라도 먹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앞에서 저렇게 티를 내야하는가. 그렇게 사람을정신사납게 하더니 녀석이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린다. 어머니를 센터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녀석이 얄미워 아무 말도 안하고 말까 하다가 시험기간이라 그래도 깨워서 밥을 먹이고 스터디카페에 가는 것까지 보았다.


전라도 음식 중에 팥 칼국수가 있다. 어릴 적 여름이면 우리집은 팥 칼국수를 자주 쒀 먹었다. 주로 저녁으로 해먹었는데 그 담당은 주로 언니들이었다. 둘째 언니는 팥을 삶아 절구에 찧어 물을 섞어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셋째 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고 널찍하게 방망이로 밀어 면발을 썰었다. 팥물이 팔팔 끓으면 면발을 넣어 식구들 수대로 그릇에 담아 2그릇이고 3그릇이고 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남은 것은 다음날 아침에 먹었는데 또 그것이 별미였다. 팥국물에 불어 떡처럼 돼 있는 면발이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저녁으로 쒀먹은 팥칼국수가 질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팥칼국수 말고 보양식으로 가끔 팥낙지 죽도 쒀 먹었다.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팥낙지 죽을 무서워서 못 먹는다고 입에 대지 않았다. 나도 최근에는 팥낙지 죽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푹 고아져 뭉개진 낙지의 형태도 가히 보기 좋지 않았고 입맛이 바뀌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먹기가 불편했다. 


20년 전쯤일까. 도시의 일반 칼국수집에서 팥칼국수 메뉴가 추가되더니 팥칼국수 전문점도 생기기 시작했다. 옛날 먹던 생각이 나 팥칼국수를 시켰더니 그걸 어떻게 먹느냐고 남편은 팥칼국수를 먹는 나를 아주 이상한 인종 취급했다. 그렇게 반응하는 남편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기분도 나빴다. 칼국수는 시원한 맛에 먹는다고 생각하여 바지락 칼국수만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달콤하고 고소한 팥 칼국수 맛을 어찌 알리.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고 난 다음 식사 시간에 주로 죽을 먹고 있다. 호박죽이나 팥죽, 전복죽을 쑤는데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달고 고소해서 그런지, 아니면 예전에 자주 드셔서 그런지 팥죽을 제일 좋아하신다. 다른 죽에는 수저질을 잘 안 하시려고 하는데 팥죽은 곧잘 드신다. 가끔은 팥칼국수도 쑤는데 예전과 달리 식은 팥칼국수 맛은 밀가루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별로다.


지방마다 음식이 달라서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다를 것이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홍어 삭힌 것을 모두 잘 먹는지 알겠지만 나는 홍어 삭힌 것을 못 먹는다. 나 역시 그 역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그걸 어떻게 먹느냐고 그걸 아주 맛나게 먹는 형제들에게 물었다. 형제들은 그걸 못 먹은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냐고 되물었다.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이 다르니 존중해주는 것이 맞지만 때로는 후각이 먼저 강력하게 거부반응을 보일 경우 실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아들 녀석도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보인 아들의 불손한 태도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 공부를 하다가 점심, 저녁을 먹겠다고 집으로 오는 녀석에게 밥을 차리고 후식으로 다들 좋아하는 삶은 옥수수며 수박을 먹었다. 아침의 언짢았던 감정들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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