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여름
태어날 땐 몰랐다
그 순간부터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걸
그저 살아 있으니
햇살 내려앉은 식탁 위에서
날개로 세상을 더듬었는데
손바닥이 번개처럼 내리쳤다
늘 도망치는 축에 속했으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자라고
꿈이 없었던 건 아니어서
세상 끝 어딘가
자기만의 바다를 찾아
여름휴가를 떠났다
눈앞에 펼쳐진
조개껍데기 속의 작은 바다
하얀 물결이 반짝였고
파리는 꿈결처럼 그 안으로 뛰어들어
여름의 물비린내를 맡으며
날개를 접고 수영을 했다
별안간 나타난 집주인
병든 금붕어를 쏟으며
“얘야, 잘 가렴”
덜컥 쏟아진 한 줌의 무게
타인의 죽음이 실려온 휴가지
또 다른 생명을 짓눌렀다
어이없게도
죽음의 구덩이에서 도망치며 살았는데
이번엔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쿠루륵 쿠루륵 소리를 들으며
좁고 어두운 관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죽음이 지나갔다
파리의 여름은 그렇게 휘발되었다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파리라는 곤충과 대변·똥을 소재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구스티의 그림책 <파리의 휴가>를 읽다가 구상하게 됐습니다. 한때 제가 길렀던 금붕어와 구피가 죽으면 변기통에 넣고 내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생명에게도 여름이 있고, 꿈이 있고, 그만의 바다가 있었을 테지요. 버림받은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