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룡이
해룡이, 김세현 그림, 권정생 글, 창비
해룡이
해: 해맑은 얼굴의 사람
룡: 용케 결혼했지만 병을 얻어
이: 이쁜 처자식 두고 집을 떠났네
고향을 떠나 그리는 마음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책은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했던 시인의 마음과 병을 얻고 식구들을 떠나 방랑했던 해룡의 그것이 다르지 않았을 테지요.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어른들이 말 안 듣는 아이에게 겁을 줄 때 써먹던 ‘문둥이’ 이야기도 같이 떠오릅니다. 병든 사람의 삶은 고통스럽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서럽지만, 해룡이처럼 그 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 했던 이는 그보다 더한 외로움 속에 살아야 했겠지요.
해룡이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에 꼴머슴으로 들어가 고단한 삶을 살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을 꾸리며 한때는 웃음이 오가는 평범한 일상을 누립니다. 그러나 삶은 그에게 천형과도 같은 병을 안겨줍니다. 마을에 그가 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해룡이는 가족이 겪게 될 불행을 막고자 조용히 집을 떠납니다. 마지막까지 설도 한참 남았건만 아이들 옷이며 아내의 신발까지 사다 두고, 병이 나으면 돌아오겠다는 짤막한 편지만 남긴 채 말입니다. 그 밤 해룡의 발걸음마다 눈물자국이 찍혔을 테지요.
권정생의 단편동화를 그림책으로 만나는 이번 작품은 해룡이의 비극적인 일생을 통해 병과 차별, 가족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을 묵직하게 담아냅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다시 집을 찾은 해룡이가 과연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요. 시린 이야기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간직한 듯, 시원하고 단단한 그림은 글의 정서를 더욱 깊이 있게 끌어안아 줍니다. '해룡이'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를 ‘떠남’과 ‘기다림’에 대한 가슴 시리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