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오소리네 집 꽃밭

오소리네 집 꽃밭

by 인상파

오소리네 집 꽃밭,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오소리네 집 꽃밭


오: 오랑캐꽃이 소복이

소: 소리 소문 없이 내려앉은 봄

리: 리기다소나무 솔방울 수북이

네: 네댓 아이들 옹기종기 웃음꽃

집: 집게벌레는 꽁무닐 빼고

꽃: 꽃밭 사이로 나비가 날아들자

밭: 밭은 숨을 죽인 고요가 찾아든다


꽃을 알아보는 마음


봄이면 여기저기 작은 꽃들이 피어났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송이가 크고 화려한 꽃만 꽃으로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밭 언덕이며 풀숲에 지천으로 피어난 제비꽃, 민들레, 개망초 같은 것들은 꽃이면서도 그저 뽑아야 할 잡초로 여겼지요. 시골학교였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환경미화’를 위해 화분을 사올 아이를 정했는데 그 화분 안에는 팬지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팬지꽃에 물을 주고 살리려 애써도 마당이나 들에 핀 꽃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꽃을 달고 있으면 다 꽃인데, 이상하게도 돈을 들인 것에만 정성을 들이며 ‘꽃’으로 여겼던 것이지요.


<오소리네 집 꽃밭>을 읽다 보니, 오래전 동네 어귀에 있던 이발소 화단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에는 마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국적인 꽃들이 심겨 있었지요. 해바라기보다 작지만 꽃잎이 숱한 노란 꽃송이들이 한 길 높이에서 바람에 한들거리고, 칸나며 다알리아 같은 꽃들이 원색의 색감을 원초적으로 뽐내며 서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서면, 마치 비밀의 문이 스르르 열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오소리 아줌마도 그런 꽃에 이끌려 집 근처에 꽃밭을 가꿔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알고 보니 이미 그녀의 삶 한가운데 패랭이꽃이며 용담꽃, 도라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던 겁니다. 꽃밭은 이미 그녀의 발밑에 있었던 것이지요.


이야기는 50년 묵은 밤나무가 회오리바람에 뿌리째 뽑히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 거대한 쓰러짐은 오히려 바람에도 끄떡없는 들꽃의 생존력과 대비되며, 작고 볼품없는 것들의 강인함을 더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길섶이나 공터, 산과 들에 피고 지던 제비꽃, 광대나물, 자운영 같은 들꽃들은 어느 봄날 내 마음을 흔들며 쓸쓸한 현실을 잊게 해주곤 했습니다. 널린 게 꽃이었는데, 그 꽃을 알아보는 마음이 없던 시절, 삶은 유독 서럽고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꽃을 알아보는 마음, 그게 있어야 비로소 꽃도 사람도 제 자리를 얻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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