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책 먹는 여우

책 먹는 여우

by 인상파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김경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책 먹는 여우


책: 책을 구워 먹고 삶아 먹어

먹: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는: 는개가 내리면

여: 여벌 옷을 만들어

우: 우산으로 쓰고 다니지.


읽는 존재에서 쓰는 존재로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가 떠오르지만, 이 그림책의 여우는 그보다 한결 더한 독서광입니다. 모름지기 작가가 되려면 이 여우처럼 책을 미치도록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거지요. 도서관의 책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던 여우는 끝내 서점에서 책을 훔치다 붙잡히고, 감옥에서 ‘독서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금지야말로 여우를 독자에서 작가로 건너가게 한 문이 됩니다. 읽을 수 없다면 쓰면 되지요. 종이와 연필을 얻은 여우는 읽어온 이야기를 자기 식으로 소화해 한 권의 책을 빚어냅니다. 첫 독자인 교도관이 그 가치를 알아본 것도 상징적입니다. 좋은 독자가 좋은 작가를 낳는다는 뜻이니까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말이 있지요. 책을 훔칠 만큼 갈증난 앎의 욕망을 존중한 표현이겠지요. 그러나 도둑은 도둑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필요한 책은 모자라지만, 불필요한 책은 넘칩니다. 공공도서관은 공간 부족으로 오래된 책을 파쇄하고, 전자책의 비중은 커집니다. 며칠 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누군가 버린 그림책을 수십 권 건져 들고 돌아오면서, ‘과잉 속의 결핍’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책의 형식과 유통이 달라진 시대일수록, 어떤 책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소화하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되지요.


‘책 먹는 여우’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독서는 일독을 넘어 다독으로, 수용을 넘어 소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여우가 책을 ‘먹는다’는 행위는 텍스트를 해체하고, 자기 언어화하고, 다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내놓는 과정의 은유이지 않을까 싶네요. 모든 책이 살과 피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책은 마음을 산란하게 하기도 하고, 읽지 않은 것만 못할 때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책을 가려 읽되, 편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맛보고 양념을 더해 자기만의 음식으로 내놓을 때, 독서는 비로소 생활이자 친구, 그리고 글쓰기의 부엌이 되겠지요. 작가를 꿈꾼다면 ‘책 먹는 여우’처럼 읽고, 먹고, 입고, 뒤집어쓰며 살아보아야겠습니다. 많이 먹되 잘 소화하는 법, 그것이 읽기에서 쓰기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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